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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은혜] 42눅 2;1-14 하늘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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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2;1-14 하늘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_1



2010.12.19. 주일오전,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이 이제 6일 정도가 남아있습니다. 정확히 12월 25일이 성탄절이 된 이유는 초대교회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로마시대에는 12월 25일이 원래 태양신을 섬기는 축일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12월 25일을 기점으로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태양의 기운이 약동한다고 해서 그 시기를 지정해서 축제의 휴일로 정해놓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원래는 이교도의 휴일이었지만 초대교회에서는 바로 그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하고 성탄절을 지켜왔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의 뜻도 그리스도를 보내신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서양의 대부분의 나라가 이 성탄절을 공휴일로 지정해 놓았습니다. 세상의 문화가 기독교의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날짜가 이러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날짜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1년 그 어느 날엔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정확히 12월 25일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더 큰 의미는 날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있습니다. 성탄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는 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그 때에 있었던 일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매우 슬픈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임신하여 불편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그들이 살고 있던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에 도착한 이유는 가이사가 명령을 내려서 모든 유대인들로 자기 고향에 가서 호적을 등록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해야 했는데 베들레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여행객이 머무를 방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발길을 돌려서 머무를 곳을 찾아 정처없이 헤매야 했는데 요셉과 마리아도 역시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결국 찾다 찾다 못찾고 우여곡절끝에 마지막으로 가게 된 곳이 마굿간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님을 낳았고 요셉은 그 마리아를 지키면서 옆에서 간호를 하였고 두 부부는 그렇게 처량맞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메시야로 그리스도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왕으로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영광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려고 지금 동방박사들은 먼 길을 찾아 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세상에 왕으로 오신 분의 출생은 이렇게도 박복할 수 있을까요? 왕궁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귀족의 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냥 보통 집도 아니고 하물며 마굿간에서 태어날 수가 있을까요? 그 위생상태며 주변환경이며 심리적인 불편함은 도저히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한 상태가 아닙니까? 왜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예비하셔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날 방 하나 마련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깨끗하고 단정되고 잘 정리된 방 한칸 마련해서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왜 소나 말이나 양이 거하는 마굿간에서 그 동물들이 먹는 여물을 담는 구유통에 그 귀하신 아기 예수님을 뉘어 놓았을까요? 왜 고급 비단도 아니고 정결한 면도 아니고 그냥 허름한 강보에 아기를 싸서 내려 놓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이처럼 우리의 상식과 이해를 뛰어넘는 예수님의 탄생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모든 일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계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이어지는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때 그 지역에 밖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있었는데 그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가 나타났고 주님의 영광의 빛이 저희를 두루 비추었습니다. 어두운 데서 조명이 켜지고 그 가운데 주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는 말하기를 모든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이란 모든 백성을 위하여 구주가 나셨는데 그는 곧 그리스도 주시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속에서 모든 백성을 위한 구주시라는 것이 중요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모든 백성을 위한 구세주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상류층을 위한 구세주가 아닙니다. 주님은 중산층을 위한 구세주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하류층을 위한 구세주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 계층을 위한 구세주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중에서 가장 낮은 자들을 위해 스스로를 낮추셨습니다. 거할 곳이 없어서 마굿간과 같은 곳에서 살아야 하는 자들을 위해서 주님은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세계의 각지를 배낭여행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나라를 여행할 수 있으면 다른 세계 모든 곳을 여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마치 성지를 순례하는 것처럼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이 된다고 합니다. 그곳이 어디일까요? 그 나라는 인도입니다.
저는 텔레비젼에서 잠깐 보았을 뿐이었지만 인도를 여행하는 것은 보기에도 정말 힘들게 느껴집니다. 천막에서 잠을 자고 소량의 물로 세수를 하고 먹기 힘든 음식물을 먹어야 하고 걷고 또 걷고…. 열악한 환경을 체험하면서 그 속에서 달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속에서 여행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뭔가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편리함과 깨끗함이 사라지고 모든 지저분함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말 도를 닦을 수 있게 되겠지요.

물론 어느 나라나 상류층과 중산층, 그리고 하류층이 있습니다. 인도도 상류층은 잘 살기 때문에 모든 지역이 그렇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류층의 삶을 경험해 보면서 그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상류층의 삶만 본다면 그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북한도 그렇지 않습니까? 평양만 보면 얼마나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 있습니까? 사람들은 또 얼마나 자유스러워 보입니까? 그러나 평양 이외의 곳을 가보면 그 실체를 알게 될 것입니다. 탈북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증언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정말 모든 인간의 구세주로 오신 것일까요? 주님은 그냥 상류층, 혹은 최소한 중산층만의 구세주가 아니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자리로 오셨습니다. 바로 모든 인간들을 위해서 입니다. 그렇게 내려오신 것이니 더 내려가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집도 절도 없는 마굿간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누추한 구유에 뉘이셨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다 헤아리시는 낮아지심인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괴로움이 크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나심이 어떠하였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과 마리아도 역시 되는 것이 하나 없었습니다. 멀리 호적을 등록하려 갔지만 그곳엔 방이 없었고 전전하다가 결국 얻은 곳은 그저 마굿간 하나 뿐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으로 방 하나 얻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일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때 주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도 그렇게 어려움을 겪으셔야만 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이 다 예비되고 준비되고 넉넉한 삶을 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뭔가 부족하고 뭔가 없으며 뭔가 빠진 그런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괴로움을 아십니다. 우리의 답답함을 아십니다. 우리의 우울함과 절망을 아십니다. 주님도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님이 우리와 같은 험난한 인생을 시작하셨다는 것만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그러한 삶 속에서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준비되지 않고 엉망이고 뒤죽박죽이고 무엇 하나 넉넉하지 않은 삶이지만 바로 그러한 삶이 사실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포하십니다. 그것은 천사를 통해 우리들에게 선포되어지고 있습니다. 12절부터 14절입니다.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목자들이 가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게 될 텐데 그것이 그들에게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강보에 싸여 구유에 아기가 놓여 있다는 것이 바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의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보통의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구유에 아기가 놓여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첫 번째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두 번째로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 아기를 구유에 뉘어 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함이 나타남으로 영광이 되고, 비로소 온 백성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방법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영광이 되고, 겸손히 가장 누추한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이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가장 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처를 돌아보고 그들의 아픔을 기억합니다. 그것이 대통령의 영광이 됩니다. 한 나라의 국방장관이 직접 군대를 시찰하고 장병을 격려하고 그것이 장관의 영광이 됩니다. 한 나라의 수상이 가장 어려운 재난이 일어난 곳에 직접 도착하여 그곳의 상황을 살펴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짐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그 수상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이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시고 인간처럼 낮아지시되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 삶을 시작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과 누추함과 열악함을 견디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낮아지신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놀라운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이 헤롯왕의 아들로 태어나시지 않은 것이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이 상류층의 자제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평화입니다. 예수님이 중산층의 아담하고 깨끗한 곳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평화입니다. 예수님이 하류층의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신 것이 그리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마굿간에서 구유에 뉘어져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평화가 됩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굿간의 구유에 누워자는 것처럼 평안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마가복음 4장에서 배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모습 속에서 발견합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는데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게를 베시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주님이 원체 잠이 많으신 것인가요?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잠이 옵니까? 38절에서 제자들이 두려워떨면서 주님을 깨우며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보여주신 모습은 주님이 얼마나 큰 평화가운데 거하시는가를 보여줍니다. 스스로 그 자신이 잔잔하고 고요하시니까 그분이 바람에게 바다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하실 때 바다가 잠잠해지고 고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분의 온전한 평화가 모든 평화롭지 못한 것들을 평화롭게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왜 평화하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요셉과 마리아처럼 방을 얻지 못해서 입니까? 해산할 장소를 찾지 못해서 입니까? 마굿간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까? 어쩔 수 없이 구유에 아기를 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까? 또는 타고 있던 배가 바람과 파도에 흔들리기 때문입니까? 이러다가는 죽을 것 같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오늘 성경말씀에서 천사가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십시오. 그것이 모든 되어진 일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임을 보여주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그 아기를 붙드십시오. 그것이 모든 일 속에서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평화가 이루어지는 힘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그 아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었습니다. 그렇게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전에는 도저히 못할 것 같고 도저히 못견딜 것 같고 도저히 못참을 것 같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니까 구유에 놓인 아기예수님을 바라보니까 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가 자신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자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다가 아니고 모든 어려움을 다 견디어 낼 수 있다가 된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속에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행하는 모든 고생과 어려움이 바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됨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행하는 모든 인내와 수고가 바로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됨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을 의지하며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생각하며 더욱 사람들에게 평화를 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다가오는 성탄절에 정말 구유에 누인 아기를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 속에서 진정한 영광과 평화를 경험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요 {4서신서} <1적용> <3분석> [3감정-절망]~[0복음-창조]
1.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에서는 왕이 태어났지만 구유에 놓이는 모순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2.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지만 그 은혜가 참담한 현실 속에 숨겨지는 모순이 계속 일어납니다.
3. 하나님께서 이것을 감추시는 이유는 그 영광은 오직 하늘에서만 나타나고 땅에서는 평화로만 나타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4.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기 위해서 오직 하늘을 바라보며 나타내심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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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22; 7-8 두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음성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0-15 21 7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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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엡 5; 28-30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0-15 17 8576
54 5은혜
49엡 5; 25-27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0-15 24 9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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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마10; 5-13 제자들을 내어 보내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0-01 21 8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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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11; 42 신앙의 균형을 이룸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0-01 32 1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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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12; 13-16 문을 열어보고 놀라는 사람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26 19 8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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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13; 1-3 끝까지 사랑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26 28 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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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롬 1; 32 악한 자를 옳다 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15 18 8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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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22; 7-13 어디서 예비하리이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15 28 9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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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고전10; 7-14 우상숭배를 피하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08 14 9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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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롬 1; 28 마음에 하나님을 두는 것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08 22 9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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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 8; 26-31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25 19 8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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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고전 3; 4-9 하나님의 동역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11-16 25 9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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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갈 4; 4-7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들 담임목사이름으로 검색 05-10-20 17 8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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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 3; 13-19 새로운 일을 위한 조직 담임목사이름으로 검색 05-10-19 28 7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