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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긍휼] 45롬11;29-36 자녀를 통해 긍휼을 알고 베풀게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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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1;29-36 자녀를 통해 긍휼을 알고 베풀게 하심_1

 

 2014.5.4..주일오전.

 

*개요:    65긍휼, 1적용, 6서신서,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이번 주일을 어린이 날로 지키면서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자녀의 관계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주시면서 부모로서의 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자녀를 통해서 부모는 진실한 사랑이 무엇이며 지극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그런 사랑의 마음을 통해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부모 자녀의 관계가 더이상 무한한 사랑과 끝없는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녀에 대해서 부모님들은 걱정과 근심이 있습니다. 미움과 절망이 있습니다. 좋을 때에는 좋지만 나쁠 때에는 한없이 나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듣는 말중에 미운 네살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세살까지는 예쁘다가 네살부터는 떼를 쓰고 고집부리고 말을 안들어서 생긴 말입니다. 그러나 미운 네살은 양반입니다. 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말도 있습니다. ‘죽이고 싶은 일곱살 너무 심하다 싶은 표현이지만 실제로 양육의 현장에서 부모님들은 이런 죄성의 충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괜찮아지는 것일까요? 물론 괜찮아지는 아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자녀들의 마음은 지뢰밭과 같습니다. 어느 순간 다시 폭발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사춘기를 거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그런 시기를 지내다 보면 부모님과 자녀들은 지칠대로 지치고 상심할 대로 상심합니다. 예전의 그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되바라지고 자기중심적이고 어떤 때에는 예의를 갖추지도 않아서 무례하기까지 한 안좋은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런 시기에 부모들은 절망합니다. 그리고 자녀교육에 대해서 자포자기하게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들과 자녀들의 관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한번 그런 상태에서 주님께 의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갈등속에서 주님이 주신 자녀들을 주님의 뜻하시는 대로 키울 수 있을지를 주님께 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자녀와의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려는 목표를 갖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좋은 부모가 되려는 것, 좋은 자녀를 만드려는 것, 그 이상의 것이 무엇인가를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뜻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본 말씀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방인으로서 얻는 구원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속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긍휼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긍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녀를 통해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바로 긍휼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를 통해서 긍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또한 부모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린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대하는 마음이 긍휼이고, 어른이 어린이에게 대하는 마음이 바로 긍휼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린이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가져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 긍휼일까요? 부모 자녀 사이에는 사랑이 아닙니까? 물론 사랑이 해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긍휼을 생각하는 때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안좋을 때이거나 혹은 아주 나쁠 때입니다. 그럴 때 사랑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 어떤 관계보다도 가장 숭고해야할 부모 자녀의 관계가 서로 질시와 반목과 갈등과 거부로 얼룩져 있을 때, 그때 다시 사랑을 강조한다는 것은 다 쓴 나무젓가락을 다시 사용하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오늘 말씀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왜 자녀들을 긍휼히 여겨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11: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로마에 있는 교인들, 즉 이방인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구약시대 내내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선민,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순종한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있어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순종하지 않은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이스라엘이 자기들에게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림으로써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에 그들은 더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써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때 이방인들은 원래부터 순종하지 않았던 자녀들이었는데 하나님의 순종한 자녀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그들은 도리어 긍휼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 긍휼히 여기심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하나님과 이방인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신 이유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긍휼히 여기심은 애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었으나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이방인들을 불쌍하게 여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같은 불순종한 자녀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그 이방인에 속한 우리도 역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와 불순종한 자녀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마음은 바로 긍휼히 여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이라는 역사적인 관점으로만 이러한 긍휼을 생각한다면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누가 이방인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 시대에 이방인은 누구였습니까? 그는 롯과 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 자녀들이 모압과 암몬자손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치하는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이삭의 시대에 이방인은 누구였습니까? 그는 이스마엘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서자였지만 어머니 하갈과 함께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예는 아랍민족의 뿌리를 이루었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는 이방인은 누구였을까요? 그는 에서입니다. 에서는 이삭의 장자였지만 그 장자권을 동생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나안 민족과 결혼하였고 그의 후손은 에돔자손이 되었습니다. 에돔자손은 후에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자손에 대비되는 이방인이란 같은 형제이고 자손이었으나 하나님께 대해서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그 이외에 다른 이방인들은 그 선조에서부터 갈라진 아담의 자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방인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란 여러 자녀들 중 말 안듣고 속썩이고 불순종한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자녀들이 있습니다. 다섯 명의 자녀 중에 한 명이 말썽을 피우지 않습니까? 네 명 중에는 한 명, 세 명 중에 한 명, 두 명 중에서 한 명이 부모의 속을 태우게 하지 않습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반지를 끼워주는 손가락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는 점점 더 비뚤어지며 더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자는 더욱 순종하지만 순종하지 않는 자도 마찬가지로 더욱 순종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긍휼하심을 받는 자의 모습에 조건지어진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의 마음에 결정되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가 긍휼히 여길 만 해서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긍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하나님은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이방인들이 순종치 않음으로 인해서 긍휼을 얻은 것처럼 이스라엘도 순종치 않음으로 인해서 오히려 긍휼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아있게 하시고 그로 인해서 순종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게 되려면 죽는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으로는 긍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순종하지만 살아있는 자들에게 주님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 긍휼로 인해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이지 순종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지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나 동일하게 긍휼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가 바로 그 긍휼을 얻은 자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그 이방인 중의 한 사람으로 긍휼히 여기심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전달될 때에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동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나의 긍휼이 되고 그 긍휼로 바로 우리의 가족들에게 전해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그 빚을 탕감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8: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는 임금의 불쌍히 여김으로 인해서 그 빚을 탕감받았습니다. 그 빚을 갚으려면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부족했지만 임금은 그 빚을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불쌍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자기에게 빚진자에게 가혹했습니다.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종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그 자신은 일만 달란트를 사함받았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백 데나리온을 갚도록 요구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백 데나리온은 5백만원정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일만 달란트는 약 3조원에 해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로 이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에 내가 받은 일만 달란트의 탕감을 기억하면서 내가 얻을 백 데나리온의 손해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일만 달란트의 용서를 고마워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김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백 데나리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사소함은 오직 일만 달란트를 생각할 때만이 알게 됩니다.

 

이 시대에 자녀들은 부모의 많은 요구사항을 받고 있습니다. 부모가 못한 꿈을 자녀가 이루어주기를 바랍니다. 또는 부모가 이룬 꿈을 자녀도 이루어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원하는 것은 날로 날로 커져갑니다. 어릴 땐 밥을 잘 먹어주기를 원하고, 잠을 제때 잘 자주기를 원합니다. 놀때는 짜증 안내기를 원하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꼬박꼬박 안빠지고 잘 다니기를 원합니다. 커서는 영어와 수학 등 공부를 잘 하기를 원하고 리더쉽이 있고 유머가 있으며 운동을 잘하고 거기에 연예인처럼 잘 생기기를 원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모든 소원의 성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부모가 기대를 가지면 가질수록 실망도 커지는 법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용서해주지 못하는 백 데나리온인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기도로 유명한 맥아더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이 기도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여, 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스스로를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워질 때 자신감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당당하고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승리의 때에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후로 지혜, 도전, 용감함, 불쌍히 여김, 마음의 깨끗함, 높은 이상, 절제, 추진력, 유머, 여유, 겸손, 소박함, 너그러움 등등 22개정도의 소원이 이어지는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문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 아들에게 영적인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 기록되었고 그리고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맥아더장군에 사망한 이후에야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기도문의 대상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 사망 이후에 이름을 바꾸고 스스로 은둔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음악을 하면서 살았다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지 그 행적이 자세히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결코 그 22개 정도의 기도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좌절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커다란 기대가 커다란 실망을 낳는 법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긍휼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가져다 주는 또 다른 실망스러움에 대해서 가혹하게 냉정하게 혹은 매몰차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다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도 주님께 결코 온전한 자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우시고 온전하신 계획입니다.

이 가정의 달 5월에 자녀들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닫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평안이 충만하게 거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자녀를 그리고 어린이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우리의 삶에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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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28; 1-6 멜리데섬의 기적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1-19 22 1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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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22; 7-8 두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음성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0-15 21 7339
55 82연합
49엡 5; 28-30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0-15 17 8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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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엡 5; 25-27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0-15 24 9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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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마10; 5-13 제자들을 내어 보내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0-01 21 8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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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11; 42 신앙의 균형을 이룸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0-01 32 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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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12; 13-16 문을 열어보고 놀라는 사람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26 19 8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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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13; 1-3 끝까지 사랑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26 28 1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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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롬 1; 32 악한 자를 옳다 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15 18 8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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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22; 7-13 어디서 예비하리이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15 28 9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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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고전10; 7-14 우상숭배를 피하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08 14 9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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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롬 1; 28 마음에 하나님을 두는 것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9-08 22 9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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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벧후 1; 5-9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8-12 17 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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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갈 1; 1-5 자기 몸을 드리신 그리스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8-12 25 9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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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 8; 26-31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25 19 8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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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갈 4; 4-7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11-19 20 9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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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고전 3; 4-9 하나님의 동역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11-16 25 9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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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20; 24-29 함께 있으나 믿음이 없는 자 관리자이름으로 검색 05-11-02 24 8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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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갈 4; 4-7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들 담임목사이름으로 검색 05-10-20 17 8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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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 3; 13-19 새로운 일을 위한 조직 담임목사이름으로 검색 05-10-19 28 7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