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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1창 29; 15-20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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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9; 15-20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2_6

 

 2014.12.31..송구영신.

 

*개요:    

[] 29: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 29:16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 29:17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 29:18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 29:19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시간에 대해서 다양하게 생각합니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간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뒤로 돌아보거나 앞을 생각할 때 때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또한 느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간은 늘 상대적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상대적인 이유는 시간은 그 속에 있는 의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의미가 있고 목표가 있으면 빠르게 느껴지지만 무의미하고 목표가 없다면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길 지 말지 모르는 경기를 치르고 있거나 보고 있다면 손에 땀이 쥐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속에 승리에 대한 간절함과 바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목표가 없을 때에 그 시간은 느리고 지루하게 지날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에게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목표가 있었다면 지난 일년도 매우 의미있게 지낸 것이고 우리에게 목표가 있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일년도 매우 유익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목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과 사모함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붙들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를 그 목표의 성취로 인도하십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삶이 의미를 갖게 되는 시간이 됩니다.

 

이러한 예를 우리는 야곱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야곱은 라헬을 위해서 칠년을 기다리며 라반에게 봉사하였다고 했습니다. 18, 20절을 봅니다.

“[] 29:18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그러나 그는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 기다리느니 차라리 포기해 버리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또는 어떻게 해서든지 칠년을 기다리라는 라반의 원칙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포기하거나 혹은 협상하거나, 아니면 왜곡을 시키거나 했을 수도 있었는데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칠년을 봉사하였고 그러면서 그 시간을 수일 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야곱은 왜 그랬을까요? 어떻게 칠년을 단 수일 같이 여길 수 있었을까요? 칠년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요? 그는 라헬을 연애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라헬을 위해 기다릴 수 있었고 라헬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라헬을 연애하는 마음이 정직하고 올바른 것이었기 때문에 칠년이라는 오랜 기다림과 라반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힘든 일을 감당해 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럴 때 라헬을 기다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만나고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목표 속에서 주님께 의지하며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오랜 기다림으로 주님을 기다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두 가지를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그가 달려간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입니다.

“[]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은 그가 회심하여 주님을 믿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구원이자 그의 생명입니다. 이미 예수님께 잡혀져 있지만 그것을 또한 온전히 이루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온전히 이루게 되기를 사모함으로 달려갑니다. 그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두번 째로 그가 달려간 것은 부르심의 상입니다.

[]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 상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상이 아니요 일하는 자에게 주시는 상입니다. 그 상을 얻기 위해서 간절히 달려갈 때에 그 상을 얻기 위해서 간절히 달리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원하셨던 하나님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뜻에 순종해서 열심히 달리는 것이 바로 사도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과연 성공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는 기쁨과 영광중에 하나님께 이르렀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야곱이라면 어땠을까요? 과연 칠년을 묵묵히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그 기간동안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또한 우리가 바울이라면 어땠을까요? 과연 그리스도께 잡힌 바된 것을 또한 잡으려고 간절히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부름의 상을 얻기를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물론 지금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바로 이제부터 펼쳐질 우리의 삶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칠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에 항의하며 거부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항변합니다. 그리고 포기해버립니다. 칠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때문에 라헬이라는 목표를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또는 칠년은 그대로 받아들여서 기다리기는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일하지는 않습니다. 칠년의 시간은 단지 기다림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해내야 하는 성과와 결심이 중요한 것인데 제대로 일하지는 않으면서 칠년을 보내는 것입니다. 또는 이 둘을 다하기는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연애의 마음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칠년을 시간을 칠십년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연애하는 마음이 그 시간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하지만 연애하는 마음이 없으니 그 시간은 끔찍한 시간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다음에 라헬을 맞이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자신의 공부속에서 칠년을 요구받는 학생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칠년동안 결혼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칠년간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 있으며 칠년동안 자녀를 키우기도 하였습니다. 정확히 칠년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기간에 해당하는 시간을 지내면서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연애함으로 수일같이 생각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단지 괴로워함으로 수십년으로 생각하는 자입니까? 부디 우리는 그 칠년을 연애함으로 수일같이 생각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라헬과 같은 연애의 대상이 있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혹은 그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노력과 기다림은 연애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마땅히 기다리고 마땅히 노력을 하면서도 전혀 아깝지가 않은 그 대상은 무엇입니까? 그 일과 그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깨달으십시오. 결코 기다림의 시간을 변개할 수 없고 해야하는 수고를 줄일 수 없는 바로 그 완전한 목표를 스스로에게서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계속 연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그 목표를 가지고 나아간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야곱에게는 라헬을 위해 칠년동안 열심히 일을 했다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라반입니다. 라반은 라헬의 아버지였고 바로 그러한 규칙을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칠년이라는 시간도 그동안 양을 치는 일도 모두 라반이 준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무작정 칠년을 기다리며 아무의 양이나 치고 있다면 라헬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라반의 시간을 기다렸고 라반의 양을 쳤습니다. 그 이유는 라반의 딸과 결혼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기다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바란다면 또한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결코 하나님안에서 떠나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떠나서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의 삶이 만약 정말로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것을 누리려는 삶이었다면 그래서 열심히 기다리고 노력했다면 잘했습니다. 앞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이 한해에서도 계속 그 일을 이루어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야곱의 7년은 어쩌면 7년이 아니라 더 많게 8년일 수도 있습니다. 10년 일 수도 있고 15년 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더 적게는 5년일 수도 있고 1년일 수도 있습니다. 그 년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의 노력과 애씀이 중요합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는 라헬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다렸던 바로 그것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그 안에서 기다리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올 한해의 삶이 주님 안에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로 원했던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수고와 노력과 기다림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원이 사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정말 맞다면 다시한번 하나님을 위해 노력하며 기다리고 수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때가 될 때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2015년도를 바라보며 여러가지 소원을 갖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모든 소원이 전부 하나님안에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 안에서 기다리며 노력하는 자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그토록 기다렸던 그것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칠년도 수일같이 여겼던 것처럼 그 기다림과 수고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알고 깨달으며 친밀해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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