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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상담]] 44행22; 10-21 교인들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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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22; 10-21 교인들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유_2

 

 2013.12.15.주.주일오후

 

*개요:    1적용, 4복음서신서, 5은혜-6결심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1)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전도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계심을 알게 되고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믿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것을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중요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예수님을 단순한 선지자로만 생각했고 그런 선지자를 하나님처럼 믿고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하는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으로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으로 승천하신 주님으로 사도 바울이 보는 앞에 나타나셔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믿게 된 이야기였습니다. 그 내용을 오늘 본문에 조금 앞서 7,8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우리가 이러한 전도를 받게 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그렇게 권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도 이로 인해서 심각한 후유증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악된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가까이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감당하기 힘든 일입니다. 우리가 햇빛을 그대로 쳐다 보면 실명하게 되는 것처럼 사도 바울도 이 빛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봄으로 인해서 시력을 잃었고 나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눈을 뜨기는 했으나 이후에도 안질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기억하고 그냥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전도를 받아 믿게 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신 말씀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고 그 구원을 얻은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도 믿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그분이 하신 말씀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실 때에 그 말씀을 듣지 않은 일은 모두 심판받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로써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으나 그의 신앙생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에서 더욱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할 때에 불신자인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지만, 그와 함께 교인들에게도 전도를 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데 왜 전도를 합니까?라고 의문을 가지신다면 좀더 근본적으로 말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예수님을 몰랐다가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그분이 하신 말씀이 전부 옳고 그 말씀을 믿게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도 바울에 대한 구원의 뜻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다메섹에서 자신에게 보내어지는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누군가의 설명이 바로 그가 왜 구원을 받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생겼고 구원은 받았지만 앞으로 구원받은 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알지 못한다면 바로 다메섹에서의 회개의 모습로만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서 빨리 왜 구원을 받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그 일을 할 때에 그는 죄인의 모습에서 더욱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전도를 할 때에 신자에 대해서도 전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전도대상자가 교회에 다닌다고 했을 때, 우리는 먼저 그의 신앙수준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질문하면서 그 수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구주로 믿으시나요? / 구원의 확신이 있으시나요? / 성령충만을 받고 계시나요? / 사명감당을 하고 계시나요?

각각 예라고 대답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고 만약 ‘아니오’ 라고 하면 바로 그 단계에서 그의 신앙수준이 형성됩니다. 이제 이러한 방법으로 그의 신앙수준을 파악했으면 그에 맞는 복음을 전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이를 위해서 각각의 질문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중요하지 그냥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단지 하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구원을 얻는다는 확신이 가져야지 하나님이 단지 구주이기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채로 다메섹에 들어갔을 때에 그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아나니아였습니다. 그는 사도바울에게 아주 중요한 말을 해주었습니다.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이것은 구원의 확신과 관계된 것입니다. 그 뜻을 알게 하시고 그 의인을 보게 하셨고 음성을 듣게 하셨던 것이 하나님이 구주이심을 믿는 믿음에 관계된 것이라면 이제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부르고 세례를 받고 그 죄를 씻는 것은 구원의 확신과 관계된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을 구주로 믿기는 하지만 구원의 확신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구주로 믿는데 구원의 확신이 없을까요? 그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온전히 자기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린 것임을 고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낱낱이 씻어주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이로써 그는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가 구원을 향해 날아오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힘으로 구원얻지 않습니다. 이는 반대로 우리의 흠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페달을 밟아서 날아오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무거워서 날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비행기를 타고 있으니까 그로 인해서 날아오르게 됩니다. 비행기가 아주 순식간에 날아오르는 것처럼 우리도 아주 순식간에 날아오르게 됩니다. 전투기 조종사가 전투기를 이륙시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어떤 것과 상관없이 전투기는 쏜살같이 날아올랐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확신은 우리 자신에게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이렇게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그 확신은 오직 하나님께만 근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으면 전부 끝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에게나 우리에게나 그것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전투기 조종사가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르게 된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자기 한몸 날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 이후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나니아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있습니다.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그는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전에 성령의 충만에 대해서 우리가 들은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께 귀를 열고 하나님의 길을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충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코 그 은혜를 자기 삶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채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충만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하면 자연히 성령충만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속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도많이 하는 사람이 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은사가 많은 사람이 악을 행할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신학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악해질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하지 않고 가능합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전에 무슨 죄를 지었든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우리는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이 새힘을 주십니다. 그러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할 일을 보여주십니다. 알게 하십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구체적인 일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감당하게 하십니다.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해주신 말은 이전에 아나니아가 했던 말이 아닙니까? 아나니아가 해주었던 그 말을 마침내 바울에게도 해주셨습니다.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처음 바울이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는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했습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그 말을 해주었을 때에 수준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그것은 사명감당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신앙으로 성장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난 다음에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그 말씀을 바울에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비로소 온전한 사명감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부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행하게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사명감당을 하시냐고 물어보아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단계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결국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 핍박하던 도를 오히려 전파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거부하던 이방인들에게 도리어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에게 나아갔고 로마의 가이사에게까지 나아갔습니다. 자기가 어렵게 생각했던 모든 자에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믿기 전의 모습을 온전히 회개하고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사명을 온전히 붙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전도가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교회다니는 자들에게 이 질문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 질문이 그들을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결핍을 느끼고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도록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이 모든 신앙성장을 이루고자 한다면, 자기 다니는 교회에 가라고 하면 됩니다. 우리는 오직 이러한 문제를 깨우쳐주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의 약점을 질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약점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으로 전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2불신이해]과정에서의 상담전도방법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이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복음에의 조망이 이루어지고 그것을 통해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은혜를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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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수24; 14-18 섬길 자를 택해야 하는 시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01 10 3164
976 [4구원론]
43눅 2; 41-52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31 10 4079
975 [8상담]
44행28; 21-28 좀더 듣고자 하는 사람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9 21 6544
974 55동행
42눅 2; 25-35 성화계획으로의 동행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9 20 10976
973 인내심
66계 14; 1-5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8 14 5074
972 절기
42눅 2; 1-7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5 7 3940
971 23사
23사25; 1-12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송함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2 18 5746
970 인내심
66계13; 1-18 짐승의 표와 성도의 인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2 11 5154
969 [1계시론]
42눅 2; 8-12 온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소식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2 7 3696
968 55동행
42눅 2; 8-17 영광계획으로의 동행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2 15 9970
967 [9전도]
44행26; 16-23 하늘에서 보이신 것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2 19 6500
966 성능력
66계12; 1-17 용과 여인과 천사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17 11 5721
965 23사
23사19;1-25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17 14 5178
964 [4구원론]
42눅 1; 18-23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자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15 7 3597
[8상담]
44행22; 10-21 교인들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15 22 6606
962 55동행
40마2; 16-21 피난계획으로의 동행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15 11 9927
961 [6종말론]
40마 2;1-2 동방박사들의 여행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10 6 3613
960 23사
23사17; 1-14 영광스러움이 사라진 이유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10 10 4773
959 [4구원론]
40마 1; 18-21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08 7 4073
958 55동행
40마 2; 1-3 경배계획에로의 동행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08 13 10524
957 [8상담]
44행 22; 1-9 바울이 믿지 않았던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08 20 7073
956 [8상담]
44행19; 21-27 복음의 전파와 우상의 약화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08 17 6760
955 66계
66계11; 15-19 일곱째 천사의 나팔과 하늘의 성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03 13 5565
954 55동행
42눅 1; 26-38 구원계획으로의 동행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02 13 10773
953 [4구원론]
1창 5;2 하나님은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셨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25 8 4282
952 신앙성숙
23사14; 1-24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오는 때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25 14 5722
951 56충만
42눅22; 42-44 땀이 피가 되는 충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25 21 13654
950 66계
66계 11;1-14 하나님의 두 증인의 예언과 삶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25 10 5562
949 [8상담]
59약5; 7-11 인내는 주를 바라며 참는 것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25 19 6764
948 66계
66계 10; 1-11 작은 책의 비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22 11 4808
947 부부화목
23사13; 1-22 하나님께서 노를 푸시는 때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22 15 5583
946 [2신론]
19시 50;14-15 추수감사절로 하나님께 감사함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22 8 3730
945 사고원활
23사12; 1-6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음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9 13 5938
944 [8상담]
23사35; 1-10 희락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붙드는 마음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9 20 7034
943 [2신론]
43요 4; 24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9 8 3755
942 성능력
66계 9; 13-21 여섯번째 나팔의 재앙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9 10 4689
941 56충만
43요2;1-10 물이 포도주가 되는 충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7 10 10801
940 연애
23사11; 1-16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지식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2 12 5492
939 [8상담]
46고전13; 4-7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한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2 20 6481
938 [1계시론]
48갈 1: 12 신약은 예수님의 계시로 이루어진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2 6 4374
937 담대함
66계9; 1-12 다섯째 천사의 재앙과 황충의 심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2 12 5290
936 56충만
12왕하 5; 9-15 요단강에 몸을 담그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10 16 11485
935 쾌활함
23사10; 4-27 쉬지 아니하는 여호와의 노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05 9 4813
934 [4구원론]
42눅24; 27 구약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05 9 3792
933 담대함
66계8; 1-13 일곱 나팔의 영광과 심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05 18 5476
932 56충만
2출15; 22-27 채움과 충만의 차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03 11 10536
931 84교육
60벧전 5; 7-11 염려를 주께 맡겨야 하는 이유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30 18 8678
930 [8상담]
49엡3; 14-19 충만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30 20 6346
929 직장발전
23사 9; 1-21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시리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8 10 5376
928 [1계시론]
55딤후3; 16-17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8 7 4285
927 84교육
60벧전 3;13-22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8 18 8734
926 담대함
66계 7; 1-17 재앙을 견디어 내는 하나님의 인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8 11 5415
925 가정화목
23사 8; 1-17 낯을 가리우시는 하나님을 기다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8 10 5271
924 [2신론]
45롬 1; 18-20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8 9 4078
923 84교육
60벧전2; 9-12 너희가 긍휼을 얻은 이유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8 18 8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