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평] 41막 4;35-41 괴로움을 이겨내는 믿음의 평안





Loading the player...


 

41막 4;35-41 괴로움을 이겨내는 믿음의 평안_1

 

 2014.3.9.주.주일오전.

 

*개요:    63화평, 2관점, 5은혜-6결심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어렸을 때 저는 플라스틱 모형장난감 만들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를 사고 만들고 그랬었는데 한번은 항공모함 모형을 보고나서 완전히 마음이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그 장난감을 간신히 졸라서 구입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항공모함을 조립했습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힘들지가 않았습니다. 그런 모형 장난감류는 완성이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 과정을 즐거워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다 만들고 나서 놓고 감상을 하니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장난감을 물에 띄워보고 싶었습니다. 원래 그 장난감은 물에 띄우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냥 감상만 하는 장난감이었는데 괜한 호기심어린 마음에 욕조에다 놓고 띄웠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냥 물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항공모함 모형이었지만 잠수함이 되고 말았습니다. 애초부터 물에 뜨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평안이라는 주제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말하는 평안도 이러한 원리로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평안이라는 장난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가요? 화평이라는 장신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가요? 그래서 정말 괴로움이 닥쳤을 때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런 결심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하는 평안은 장식용입니다라구요. 진정한 평안은 가장 어렵고 힘들때 의미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화기가 장신구라고 해보십시오. 가장 중요할 때 이 소화기는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 소화기가 정말 효과가 있었다면 큰 불을 끌 수 있었을 텐데 이 소화기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장식용이었으니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구명조끼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왜나하면 장신구였으니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낙하산은 아무런 도움이 안됐습니다. 왜냐하면 장신구였으니까요.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천국에 빨리 가게 될 것입니다. 평상시에 그렇게 준비하고 그렇게 애를 쓰고 그렇게 노력했어도 그 모든 것이 전부 장신구에 불과한 이유는 실제를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늘 하는 척만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실제를 대비하려고 했다면 부족한 그 무엇인가를 알아냈을 것입니다. 한번에 다 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말 배가 물에 뜨는 지를 알아보고자 한다면 당연히 물에 띄워봐야 합니다. 그래야 그 효과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그 제자들을 데리고 바다로 나가셨습니다. 진정한 평안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우리는 그 인도하심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은 우리를 데리시고 저편으로 건너가십니다. 이편에서 만족해 하는 것은 우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저편으로 인도하십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저편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일가운데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생에서의 어려움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을 때 단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군대에 들어갔는데 그 군대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대학 졸업후 그냥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에는 아무생각없이 들어갔는데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것입니다.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냥 결혼하는 게 아닙니다. 아내에겐 시월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편에겐 처가살이가 있습니다. 또 자녀를 낳는데 그냥 편하게 낳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자신을 닮긴 닮았는데 닮아도 가장 안좋은 것만 닮은(혹은 그렇게 생각되는) 그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교회를 가긴 가는데 그 교회가 너무 수준높은 교회입니다. 따라가기가 벅찹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치게 됩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바다에 익숙한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풍랑이었고 바로 그 풍랑이 밀어닥쳤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큰 광풍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가 물에 잠겼습니다. 이대로 가면 침몰합니다. 침몰하면 다 죽게 됩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기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전에 많은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순간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아예 보이지 않게 해야지 어떻게 일이 이지경이 되도록 예수님은 가만히 계실 수가 있습니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애초에 풍랑이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애초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에 시찰회에서 목회자 세미나로 태국을 갔다 온 적이 있습니다. 파타야에서 관광을 하는데 가이드가 바다건너에 아주 물이 깨끗한 섬이 있다고 그리고 배를 타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날씨가 아주 좋았습니다. 옆에서 다른 일행이 먼저 출발을 했습니다. 우리는 조금 늦게 출발을 했습니다. 저 멀리 섬이 보였고 거기까지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에 가는 일행을 보면서 시원하게 가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앞이 캄캄해지고 비가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가이드와 보트기사가 뭐라고 말을 주고 받더니 배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배를 돌린다고 했습니다. 이대로는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바로 앞에 가던 보트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거기는 배를 돌릴 수 있는 지점을 이미 벗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비가 그쳤습니다. 그 비가 바로 동남아 지역의 나라에만 있다는 ‘스콜’이라는 현상이었습니다. 대낮에도 갑자기 비가 오는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날은 그래서 스케쥴을 변경하고 다른 데를 먼저 보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 또 다시 도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제처럼 하늘은 맑았습니다. 어제와 똑같이 하늘이 맑을 때 배가 출발했습니다. 잔뜩 긴장을 한채로 배는 달렸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다 목사님들인데 설마 또 비가 오랴 우리가 어제 얼마나 기도를 했는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다 중간에 와서 뒤로 선착장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 스콜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이제 우리는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배는 앞이 보이지 않는 전방을 향해서 힘껏 달렸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우리는 두려움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바로 그러한 풍랑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크게 일어나는 풍랑 속에서도 담대하며 배안으로 물이 들어오는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안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을 위해 주님은 모범을 보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고물(배의 뒷부분)에서 배게를 베고 주무셨던 것입니다. 일부러 모범을 보이시는 건지 아니면 너무 평안하셔서 자연스럽게 모범을 보이시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그 모습 자체가 모범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들과 함께 두려워하기를, 그들과 함께 무서워하기를, 그들과 함께 낙심하기를 바랬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꼭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평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뭔가 대책을 세워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냥 평안하셨습니다. 함께 공감하면서 같이 괴로워하면서 대책을 세워주실 줄 알았는데 주님은 오직 평안의 모습만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이 평안, 화평의 모습은 분명 그 반대되는 모습과 완전히 비교됩니다. 평안의 반대가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가 해당됩니다. 분노, 절망, 두려움입니다. 이 위에 평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평안의 반대는 분노가 됩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평안의 반대가 절망이 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평안의 반대는 두려움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평안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그 반대가 조금씩 다릅니다. 평안이란 바로 그 분노, 절망,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이 물이라고 한다면 평안이란 그 위에 둥둥 떠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리고 휩쓸리지 않습니다. 굳건히 서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평안입니다. 바로 예수님 처럼 말입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분노 위에서, 절망 위에서, 두려움 위에서 평안을 누려야 했습니다. 그냥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안락함 속에서, 형통함 속에서, 승승장구함 속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 왜 일어나는가라는 분노 속에서, 이렇게 끝나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절망 속에서, 너무나 무섭고 떨리는 두려움 속에서 그들은 평안하기를 요구받았습니다. 또한 그렇게 평안하지 못함에 대해서 질책도 받았습니다. 제자들이 깨워서 일어나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1)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여기서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으신 것은 영어로 ‘rebuke’이고 이것은 잘못을 질책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주님은 바람을 마치 사람처럼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명령을 내리시기를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순종하였습니다.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왜 이렇게 무서워하였느냐, 왜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평안하지 못했던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했을까요? 그들이 무엇을 믿었어야만 했을 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어야만 했습니다. 그 믿음 만이 그들로 하여금 평안을 갖게 만들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통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서약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또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평안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대한 믿음 만이 우리로 하여금 평안을 얻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으며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놀라워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굽니까? 우리가 누군데 그 평안을 따르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평안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분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는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그 믿음의 평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그 말씀으로 살아있게 하고 그 말씀으로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꾸짖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검이라 하더라도 분노와 절망과 두려움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이 툭 떨어트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검이 휘둘러져서 불어치는 바람과 들이닥치는 물을 멈추게 만드는 것입니다. 정말 변화되는 것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멈추어진 것은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진정으로 고요하게 된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아무런 감정없이 어떠한 분노도 절망도 두려움도 없이 온전히 말씀으로 선포하시며 말씀으로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져서 평안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람과 바다가 몰아칠 때에 평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평안은 상황의 평안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믿음의 평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그렇게 평안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평안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주님은 질책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그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새 힘을 주시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새 일을 행하시려고 하시기 때문에 중단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연히 서 있을 때 주님의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계신 그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죽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이유 하나를 붙들고 견뎌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믿음의 평안이 생겨나고 비로소 모든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지며 주님과 함께 하심의 모든 의미가 밝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괴로움 속에서 우리에게 평안이 생기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심을 바로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도우심을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뜻을 깨닫고 순종할 때 우리는 정말 그 놀라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도 원하는 바가 됩니다.

 

아까 그 스콜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게 한참을 빗속을 뚫고 달리고 있는데 옆의 목사님들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분들은 아주 편안해 보이셨습니다. 한분도 동요하거나 걱정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만 긴장하고 저만 전전긍긍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날이 싹 개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려고 하는 섬이 나타났는데 물이 아주 맑은 에메랄드 빛깔의 해변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가이드분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아주 감명을 받았답니다. 이유인즉 이전에 무속인들을 데리고 동일한 코스를 온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무속인들은 비가 오기 시작하자 ‘귀신들이 여기까지 우리를 따라왔군, 이곳은 지나가지 맙시다’하고 돌아가자고 해서 억지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는 비가 오거나 말거나 평안했으니 그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평안은 어려움을 피하는 평안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뚫고 가는 평안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어떤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여러분은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능력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탄만 우리로 하여금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더욱 두렵게 만들고자 할 뿐입니다.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갔다가 풍랑을 만났던 제자들처럼 주님과 함께 하면서 어려움을 만나고 괴로움을 겪을 수도 있겠으나, 주님의 평안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평안을 이 세상에 나타내 보이시고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분류 이미지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1122 71충성
10삼하 7;4-9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섬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7 13 10043
1121 44행
44행 4;32-37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하고 하지않음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2 14 4962
1120 담대함
23사57;1-15 주를 경외함으로 얻는 것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2 10 5724
1119 직장발전
23사58;1-14 주께서 우리를 알아주시지 않는 이유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0 9 4668
1118 44행
44행 5;1-11 주의 영을 속이는 자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0 12 4678
1117 84교육
23사54;13-14 선지자되신 예수님의 가르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0 16 8507
1116 71충성
44행21;8-14 사람들 너머 하나님을 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0 11 10875
1115 [5교회론]
62요일 4;1-3 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20 7 3573
1114 직장발전
44행 4;23-31 하나님께 일심으로 기도함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14 10 5377
1113 23사
23사56;1-12 내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14 8 4624
1112 84교육
44행 3;20-24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자이시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13 17 8249
1111 [5교회론]
66계 7;9-10 천상교회의 존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13 6 3817
1110 21순위
11왕상 17;8-14 나의 유익보다 앞선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13 18 10555
1109 직장발전
23사55;1-13 하나님께 나아올때 얻는 것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07 12 5107
1108 담대함
44행 4;13-22 대제사장과 사도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07 10 4877
1107 84교육
43요 1;1-14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의 구속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07 16 8569
1106 [5교회론]
46고전 1;2-3 교회는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07 6 3711
1105 71충성
58히 3;1-6 하나님의 집에 충성하는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7-07 19 11939
1104 23사
23사54;1-17 우리를 지으신 자를 통해 얻는 승리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9 11 4976
1103 신체건강
44행 4;1-12 사도들의 증언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9 13 4910
1102 [8상담]
12왕하 5; 9-14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9 18 6411
1101 66양선
43요 9;4-12 나를 보내신 이의 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9 18 10672
1100 [5교회론]
49엡 4;11-16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9 6 3994
1099 23사
23사53;1-12 그가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은 이유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3 11 5263
1098 담대함
44행 3;17-26 구원으로의 초청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3 13 4544
1097 [8상담]
26겔36;24-28 진정한 변화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3 22 6944
1096 66양선
43요 5;2-16 몸의 문제속에서 행할 수 있는 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3 16 11085
1095 [1계시론]
61벧후 4;14-18 성화란 무엇인가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23 11 3911
1094 44행
44행 3;1-16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16 14 4985
1093 23사
23사52;1-13 포로에서 돌아오는 하나님의 백성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16 13 5568
1092 [8상담]
11왕상21;1-16 고통속에서 말씀으로 인도한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16 18 6373
1091 [4구원론]
48갈2;16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16 10 3849
1090 66양선
41막 9;20-24 감정의 괴로움에서 건지시는 주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16 14 11104
1089 의지력
44행 2;43-47 새로운 사역의 발전과정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9 8 4552
1088 [4구원론]
45롬3;19-20 회개의 3요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9 8 4009
1087 [8상담]
46고전12;23-27 고통속에서 영적인 성장을 이룬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9 14 6362
1086 66양선
1창4;3-7 감정을 변화시키는 양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9 18 10499
1085 23사
23사51;1-16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1 10 4516
1084 44행
44행 2;43-47 교회의 영광과 찬송3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1 13 4767
1083 66양선
45롬15;7-14 그리스도인의 양선의 모습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1 16 10729
1082 [6종말론]
44행 3;19 진정한 회개의 모습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1 9 3825
1081 [8상담]
43요 9;1-2 사람은 고통당하는 존재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01 17 6363
1080 23사
23사50;1-11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신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25 11 4911
1079 [8상담]
44행 2;38-42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장소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25 19 6285
1078 행사
43요21;12-17 함께 조반을 먹으며 말씀하심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25 7 2717
1077 65긍휼
59약2;8-13 긍휼을 행해야 하는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25 26 10082
1076 5성령
60벧전 1;18-23 성령은 우리를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신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25 7 3987
1075 [8상담]
40마19;16-22 표면적인 관심에서 내면적인 관심으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9 16 6706
1074 65긍휼
49엡4;21-32 가르침을 받은 대로의 긍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9 11 9995
1073 5성령
43요16;12-15 진리의 성령이 깨닫게 하심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9 5 4077
1072 23사
23사49;1-26 이스라엘의 탄식과 희락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7 10 4973
1071 44행
44행 2;14-21 요엘의 예언성취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7 9 5078
1070 23사
23사48;1-22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7 13 4974
1069 담대함
44행 2;1-13 성령충만과 난곳 방언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7 13 5164
1068 65긍휼
42눅 7; 11-16 부모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1 16 9951
1067 [4구원론]
49엡 1;4-5 우리의 구원은 예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11 7 3772
1066 신앙성숙
44행 1;8-14 곁에 서서 말하는 자3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06 12 4832
1065 23사
23사47;1-15 내 백성을 사로잡던 자들의 종말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06 16 5432
1064 [4구원론]
48갈2:20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04 6 3927
1063 [4구원론]
58히 9; 11-12 예수님께서 구원을 완성하신 방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04 8 3895
1062 [8상담]
23사 9;6-7 예수님은 상담의 모범이시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04 18 6586
1061 65긍휼
45롬11;29-36 자녀를 통해 긍휼을 알고 베풀게 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5-04 22 11202
1060 23사
23사46;1-13 하나님은 우리를 품어주신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9 10 5088
1059 신체건강
44행 1;3-5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9 10 5576
1058 42눅
42눅 23; 42-43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9 10 5544
1057 42눅
42눅 22; 69-70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9 14 5136
1056 84교육
45롬 5; 6-12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8 20 8563
1055 64인내
43요21; 7-14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의 인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7 18 9933
1054 [4구원론]
43요20;24-31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1 8 3587
1053 84교육
1창 3;4-7 죄악의 시작, 욕구의 시작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1 19 8015
1052 64인내
42눅24; 1-5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21 17 10578
1051 23사
23사45; 4-8 하나님께서 그 뜻을 나타내심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14 11 4777
1050 일관성
44행 1; 1-5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편지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14 13 4960
1049 84교육
43요14;6-11 삼위일체와 예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13 15 8181
1048 64인내
42눅22;47-54 이것까지 참는 인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13 12 10057
1047 [3기독론]
50빌2;6-8 그리스도의 자기를 낮추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13 7 3785
1046 [3기독론]
58히4;15 죄가 없으신 예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08 8 5723
1045 가정화목
23사44;1-28 네가 내 종임을 잊지 말찌어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08 10 5516
1044 인내심
66계22;10-21 각 사람의 일한 대로 상을 주리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08 12 5204
1043 [4구원론]
66계19;15 예수님의 세 가지 직분은 무엇인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06 12 4030
1042 84교육
19시 90; 1-12 인생의 의미와 하나님의 은혜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06 20 8958
1041 64인내
40마26;36-46 잔을 거부하시지 않는 인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4-06 14 9895
1040 [9전도]
44행18;24-28 듣고 데려다가 자세히 이르더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31 15 6245
1039 63화평
43요16;28-33 세상을 이겨내는 평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31 16 10632
1038 직장발전
23사43;21-25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심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30 13 4405
1037 66계
66계22;1-9 생명강과 생명나무의 모습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30 13 4787
1036 23사
23사42;1-9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30 13 4597
1035 [1계시론]
51골 2;9-10 예수님의 두 가지 성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30 8 5129
1034 성능력
66계21; 9-27 거룩한 성 예루살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30 12 5198
1033 [9전도]
44행17;24-31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소개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23 16 6508
1032 [3기독론]
23사42;2-4 예수님의 성품의 모습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23 6 3949
1031 63화평
42눅24;25-36 주님을 따라갈 때 누리는 평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23 17 10946
1030 직장발전
66계21;1-8 이기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하리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17 13 4987
1029 23사
23사41;8-13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17 12 4714
1028 [9전도]
44행 8;18-24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않은 마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16 17 6470
1027 63화평
43요11;38-44 평안으로 이루어지는 것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16 15 11077
1026 [9전도]
42눅18;18-22 그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09 21 6911
1025 [3기독론]
41막 1;15 멸망받을 인생의 유일한 소망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09 6 3770
63화평
41막 4;35-41 괴로움을 이겨내는 믿음의 평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09 22 11021
1023 직장발전
23사40;27-31 능력과 힘을 충만케하시는 하나님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3-04 11 4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