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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출4; 10-16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_1
2013.7.21.주. 주일오전, 주제설교-계획
*개요 {1역사서} [5계획]-[6결심] <4극본>
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찌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우리가 깨달아서 실현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이모저모로 역사하십니다.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꿈을 이루었을 때에도 그 꿈이 자기 자신의 유익으로만 끝나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게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야곱과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문제 속에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또한 성공 속에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야곱으로 하여금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서 한 독립된 가족을
이루어가게 하셨고, 요셉으로 하여금 그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서 정착하여 굳건한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경우, 그가 만일 세겜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 가나안 민족과 통혼하고 그들과 섞여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결코 하나의 친족공동체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 그가 만일 애굽의 총리로 잠자코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가족 역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대단위의 인구로 불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과 요셉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살펴보는 사람은 더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세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장성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빼내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당시 바로의 압제와 핍박을
받으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산아제한을 시켰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계속 불어나는 인구수는 바로를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그들을 노예로 삼아
잡역과 부역에 동원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제 애굽에 들어온지 400여년 만에 나갈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그가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는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출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모세가 이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다 세워놓으셨지만 모세는 그 계획을 따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하려고 하시는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0절입니다.
“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말을 못한다고 해서 그를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을 잘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말을 잘하게 해주신다고 해도 모세는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말못하는 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이유는 정말로 가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이유를 갖다대고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했던 것입니다.
“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의 보내심을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사람들에게로 보내려고 하시지만 우리는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으로 보내려고 하시지만 우리는 거부합니다.
그 거부속에서 우리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추천합니다. 나같은 부족한 사람 말고 더 훌륭한 사람을 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표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큰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의 특징은 모세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었습니다. 기드온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겠느냐고 했지만 결국엔 그 일을 해내었습니다. 요나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니느웨에 보내라고 하였지만 결국은 자신이 그 일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께 죄인인 자신을 내버려 달라고
했지만 결국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은 바로 그 한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비록 그 한 사람이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거부하더라도 주님은 모세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모세를 설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말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도 부르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있습니다. 그 부르심을 깨닫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우리에 대한 놀라운 일들을 따라야 합니다. 그 일들을
행하는 것이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부르심을 반드시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계속해서 거부할 때 주님은 노를 발하셨습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 모세에게 형 아론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분노는 우리의 분노와 다릅니다. 그것은 은혜를 베푸시는 마음이었습니다. 노를 발하시면서 처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노를
발하시면서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형을 그의 밑에 있게 하십니다. 비록 형이었지만 모세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에게 보내어주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을 주시면서 모세와 아론의 입에 함께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아론이 백성에게 말하는 어려운 일을 감당하게 하시면서 모세가 그 모든 일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책임자가 되어서 형
아론을 다스리면서 출애굽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반드시 이일을 해내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미래의 어떤 일을 모세에게 맡기시고 알아서 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란 현재에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모세를 통해서 온전히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그 모든 온전한 하나님의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뜻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신기루 같은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 차곡 차곡 쌓여져서 마침내 성취되는 진정으로 일을 행하시고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뜻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갑자기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시려고 하시니까 급히 조성된 뜻일까요? 형 아론이 그의 조력자로 세워지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니까 그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간신히 만들어 놓은 도움일 뿐일까요?
지금 현재 하나님이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서 아론을 보내어 주셨다고 한다면
이전에 그에게 보내어주셨던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모세가 태어날 때로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세가 처음 태어 날 때 바로는 아주 잔인한 산아제한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여인에게서 남자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가 태어나면 살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에는 한 산파들이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모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산파들의 이름은 ‘십브라와 부아’였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애써서 살린 모세를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러나 석달이 지난 다음에는 더이상 숨길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기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서 누군가 받아주기를 바라면서 강물에
떠내려보냈고 그 누이가 아기 모세를 위해서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에 목욕하러 나왔다가 그 아기를 발견하여 자신의 양자로 삼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의 딸’이었습니다. 그 바로의 딸에게 다가가서 아기를 위해서 유모를 구해주겠다고 용감하게 나선 사람은 이전부터
그 아기를 지켜보고 있었던 누이 ‘미리암’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딸의 허락으로 유모로 들어가 그 아기를 키우게 된 사람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었습니다.
모세가 성장하면서 그에게 모든 좋은 교육을 받게 한 사람은 ‘바로’였고,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던 애굽 사람을 때려 죽인 뒤 그
사실을 폭로한 사람은 ‘한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그가 광야로 도망가 거할 곳을 찾을 때 그를 만나 받아들인 사람은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였습니다. 모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각해 볼 때 별다른 의미가 없이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사실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이며 그들을 통해 모세는 그 이름의 뜻이었던 ‘건져냄’이라는 의미와 같이 늘 건져내어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른 사람을
건져내야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지금껏 자기가 살아온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건져내어지는 삶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세를 건져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보내어 주시고 역할을 감당하게 하면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킬 수 있는 한 사람의 지도자인 모세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 뜻 가운데에서
그는 때로는 어리석기도 하고 때로는 죄악중에 거하기도 하였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서 지금 아론을 그 동역자로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삶가운데서 그에게 원하신 것은 하나입니다.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찌니라”
도저히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일들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하시는 일들을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한 개인의 신앙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함을 아시기에
주님은 여러 사람들을 붙여주십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그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셔서 마침내 주님의 신기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애초에 모세가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또한 더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는 것도 옳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자연적인 일일 뿐입니다. 그런 자연적인 일을, 인간이라도 할 수 있는 그 일을 이루기를 우리는 원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상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일을 이루도록 힘을 공급하시고 능력을 베푸시며 사람들을 붙여주심으로써 마침내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바로 우리들을 통해 그런 일들을 이루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각자의 인생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공급하시는 사람들이
없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나, 누이 미리암이나, 형 아론이나, 바로의 딸이나, 바로나, 장인어른 이드로 같은 사람들이 없었습니까?
그들이 친족이 되어 혹은 양부모가 되어 그냥 그냥 산 것이 아니라 모세를 훈련시키고 성장시키며 세우는데 일조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주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구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데 일조했다면 그것은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그 도우심의 손길을 깨닫고 그를 통해서 그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모세에게 있었던 모든 사람들 중에 복잡한 의미를 갖는 한 사람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한 사람은 모세가 죽을 뻔한 것을 도와준 사람입니다. 그는 바로 아내인 ‘십보라’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나아간다고 했지만 실상 자신의 아들은 할례를 하지 않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로 인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시려고 했습니다.
그때 십보라가 그 죄를 깨닫고 모세를 대신하여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십보라의 행동으로 인해서 모세는 하나님의 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이로써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삶도 온전히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4:24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4: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4: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그러나 어떤 성경해석가들은 본문에서의 일이 애초에 십보라 때문에 일어났다고도 말합니다. 십보라가 아들의 할례를 반대했었기 때문에 모세가 죽을 뻔 했다는 것입니다. 어떤면에서는 ‘악처’가 되고 어떤 면에서는 ‘양처’가
되는 복잡한 의미가 바로 십보라입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만약 우리가 모세의 안전을 기준으로만 생각한다면 그는 ‘악처’가
되겠지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면 그는 ‘양처’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마침내 할례를 행함으로써 모세를 살리고 하나님의 일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할례로 인해 죽을 뻔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거부하면서 억지로 따라가던 모세로 하여금 이 부르심이 매우 중요하고 그리고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보라’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볼 때 비로소 그 의미와 가치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십보라는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또 다른 도우심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됨을 받아들일 때까지 도와준 형제, 자매, 가족과 많은 사람들에서부터 정말 은밀한 죄를 덮어주고 그 죄를 갚아주었던 아내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많은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도움의 손길을 통해서 한 사람의 지도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아버지로 서기 위해서,
한 사람의 어머니로 서기 위해서, 한 사람의 남편과 아내로 서기 위해서 많은 도움의 손길들을 거칩니다. 그 도우심을 주님은 깨닫게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 누군가의 존재를 깨달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며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해야 하는 일을 하며 하나님안에서
의미를 갖는 사람들이 됩시다. 그럴 때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헛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돕기 위해서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기억하고 주변사람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그럴 때 우리에게 대한 온전한 계획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뜻을 거부하던 모세로 끝나지
말고 마침내 주님의 뜻을 실천한 모세와 같은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