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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엡2; 12-18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_1
2013.5.26.주. 주일오전. 상담설교-충만
*개요 {4복음서신서} <3분석>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번 5월 한달동안 많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말처럼, 어린이날이 있었고 어버이날이 있었습니다. 또한 스승의 날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러한 기념일들을 따라서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그리고스승의 주일도 보냈습니다. 또한 각 가정에서는 이런 저런 모임이나 선물, 기타 행사가 많다보니 지출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5월에는 따로 대출까지받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지출은 전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좀더 긍정적인 지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성장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이되었습니다. 그 어른은 어버이가 되었습니다. 그 어버이는 스승이 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을 잘 따르다보면 사람들은 세워집니다. 높아집니다. 앞서게 됩니다. 이렇게 앞선 사람이 있으면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때가 되면 그 뒤를 따르는사람들이 다시 앞서게 됩니다.
신앙적인 모습에서도 이러한 과정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린이같은신앙에서 어른같은 신앙이 됩니다. 그 어른같은 신앙이 어버이같은 신앙이 됩니다. 그 어버이같은 신앙이 더 나아가서 스승같은 신앙이 됩니다. 우리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어린이신앙은 어른신앙이 되지 않습니다. 어른신앙은 어버이신앙이 되지 않습니다.어버이신앙은 스승의 신앙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요. 그래서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에베소 교인들에게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구하였습니다. 또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그리고 ‘ 그 능력의 크심’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그들이 성장하고 발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장하고발전해야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에베소서 2장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성장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2절을함께 읽어봅니다.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얼마나 무의미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때에우리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 ‘외인’이었습니다. ‘소망’도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다는 것은 무의미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고, 외인으로 살게 되니 내세를 생각하지 못하고 천국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결국 지옥을 차치하고서라도 인생을 한번뿐으로생각하게 됩니다. 그럼 그것은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았더라도, 혹은 악하게 살았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한 그 삶은 무의미해집니다. 어떤식으로 생각하더라도 하나님을 제외하고 살아갈 때 무의미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세를 보장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유의미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외인도 아니고,소망도 있고, 하나님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의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잘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바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믿게 된 것이 끝이 아니라 믿게 된 것이 시작이 됩니다. 바로 성장과 발전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중요한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아는 것은 성장이아닙니다. 발전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아는 것이 성장과 발전의 기준이 됩니다.
제가 지난번 목회자수련회에 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한 목사님 사모님이 교회앞 작은 밭에다가 씨를 심었다고 합니다. 농사에 조예가 깊은 분은 아니었는데 여하튼 작물을 가꾸고 싶어서 씨를 심었습니다.그리고 얼마 후에 보니까 뭐가 많이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열심히 그 올라온 풀 비슷한 것들을 잘 키웠다고 합니다.물도 주고, 사랑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그렇게 몇달을 키운다음에 다른 분에게 자랑을 하려고 불러다가 보여줬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그거 다 잡풀이에요!’ 하시더랍니다. 정말 자세히 보니 그 많은 풀 비슷한 것들이 다 열매를 맺지 않는 잡풀이었더랍니다. 이 사모님은 그냥 색깔도예쁘고 잘 자라고 그래서 씨앗에서 성장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무 소용없는, 애초에 뽑아버렸어야 하는 잡풀을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이렇게 잡풀처럼 되어버릴 것입니다.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어서 의미있다고 생각했지만 신앙생활이 무의미하게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렇게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성장과 발전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씨앗이 씨앗대로 성장해야 하는데 잡풀의 성장에 밀려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시올바르게 제대로 참된 씨앗은 자라야만 합니다. 바로 우리가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최소한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무엇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할까요? ‘부르심의 소망’은 지금 함께 생각해본 대로 우리가죄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사랑의 은혜를 나타내는 자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이제 그 다음에 알아야 하는 것이 ‘그 기업의영광의 풍성’입니다. 그리고 14절 이후는 바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4절부터 16절까지를 읽어봅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한마디로 예수님의 놀라운 영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영광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사역이 기업이 되고 그 기업이 더욱퍼져나가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자꾸 ‘기업’이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혹시 여러분들은 상장기업을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상장기업은이윤추구를 목표로 하지 않던가요? 그런 기업과 예수님의 기업은 다릅니다. 예수님의 기업은 구원을 목표로 합니다. 예수님이 이윤을 추구할 필요가없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신데. 예수님의 목표는 구원에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이세상에 오셨고 그것을 이루셨으며 지금도 그일을 이루고계십니다. 이 14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예수님의 영광과 그 영광으로부터 생겨나는 기업의 풍성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이 말씀이 놀라운 예수님의 영광과 그 영광스러운 기업의 풍성함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2010년 8월에 캐나다인 아버지와 한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해나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기도가 없었습니다. ‘선천성 기도 무형성증’이었던 것입니다. 출생직후에 서울대병원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진 해나는 그곳에서 투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우 오래 살수가 없는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백방의 노력끝에 안타까운 사연이알려지면서 여러 도움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놀랍게도 이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선생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분은 스웨덴의 카롤린스카대 병원의파올로 마키아리니박사였습니다. 이분은 세계 최초로 환자의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인공기관지를 만들고 그것을 이식하는데 성공한 의사였습니다.또한 이 사연을 접한 많은 사람들의 후원이 답지하면서 해나는 미국 일리노이 어린이 병원에 가서 그곳에서 파올로 박사님을 통해 수술을 받았습니다.의료진은 지름 1.2cm 가량의 플라스틱 섬유 파이프에 워런 양의 줄기세포를 붙여 배양한 뒤 이를 다시 워런 양에게 이식한 것이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고빠르게 회복중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포기할 밖에 없는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것이 당대최고의 기술을 만났을 때 놀라운 일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쁜 일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하신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보다 백배는 더 기술이 좋습니다. 치명적으로 분리된 상태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1. 둘로 하나를 만드시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2.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폐하셨으니
3.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화평하게 하시고
4.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이 놀라운 기술, 아니 이 영광스러운 사역을 보십시오.예수님은 둘을 하나로 만드셔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상황을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각각이 요구하는 모든 계명과 율법과 규칙과조건과 요구를 자기 육체로 다 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이것이 무력화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둘을 자기 안에서 새로운 한사람을 만드심으로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조하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창조 이후에 예수님이 새롭게 행하시는 사역인둘을 한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화평하게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둘이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사역이었습니다.
줄기세포란 말을 아무리 들어도 그것이 뭐가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아무리 들어도 그것이 뭐가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줄기세포의 놀라운 성과는 결국없던 기관지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성과는 그래서 우리가 화평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주님 안에서 멀어졌던 인간들이 주님 안에서 반목하며 갈등하며 분쟁하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와 자녀가화평하며, 아내와 남편이 화평하며, 제자와 스승이 화평하게 하고, 성도와 성도가 서로 화평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화평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의 영광스러움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자신과 상관되어집니다. 우리가 계속 말하고 있는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라는 말은 에베소서 1장 18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부분을 영어성경으로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18…the riches of hisglorious inheritance in the saints,”
이 말이 바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되어있는 부분입니다. 이제 그 기업은 바로 예수님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사역, 그 영광스러운사역, 그 영광스러운 유산의 풍성함이 얼마나 큰지,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그것이 성도안에서 얼마나 놀라운지를 알게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그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을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코 여러분에게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이루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도 그것을 행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알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나님도여러분이 그것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도저히 못하겠다고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하기 싫다고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냥 아직 모르는 것이니까요. 정말 알게 된다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하실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알 때, 그제서야 비로소 성장하게 됩니다. 발전하게 됩니다. 비로소 기쁜 마음으로 실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한 세 가지를 기억하십니까? ‘부르심의 소망’ ‘기업의 영광의 풍성’, 그리고 ‘능력의 크심’이었습니다. 앞선 두 가지가 된다면 세번째는 자연스럽게따라오게 됩니다. 혹시 누군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보십시오.
‘좋습니다, 부르심의 소망이 뭔지도 알겠고, 그 기업의영광의 풍성이 뭔지도 알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럴 힘이 없습니다.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로 이러한 분들을 위해서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있습니다.그 능력이 얼마나 크신지 경험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16절 하반절부터입니다.
“16…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예수님은 가만히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은 다음에 하나님을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그 역사하심은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십니다. 없애버리신다는 말입니다. 또한 먼데 있는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자들이 있고 가까이에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그렇지만 하나님은 다 역사하십니다.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십니다. 아까는 ‘자기 안에서’라고 했던 부분이 ‘성령 안에서’라고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고, 성령 안에서 나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며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게됩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서 하나되고, 성령 안에서 나아가며, 하나님 안에서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께서 역사하시는 연합이이루어집니다.
결국 단순한 갈등해결이 목적이 아니라, 단순한 평화정착이 목적이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은 그 놀라운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럴 때 그 능력은 크고도 크십니다.하나님은 단지 부모와 자녀가, 남편과 아내가, 스승과 제자가 화평을 이루게 되는 것을 목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됨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기를원하십니다. 예수님과 성령님과 하나님과 함께 그 둘이 하나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그 능력은 지극히 큰 것입니다.
사라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갔던 하갈이 길에서 천사를 만나서 마음을 돌이키고 돌아왔을때 상황은 다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형 에서를 다시 만나면 나를 죽이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던야곱이 천사를 만나고 나서 믿음으로 에서에게로 나아갔을때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둘은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의능력입니다.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종 오네시모가 믿음을 갖게 되고 다시 돌아갔을 때 빌레몬은 그를 용서하고 가족처럼 대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지금도 그 능력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저주와 심판과 처벌과 멸망을 원하는 자들이 아니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그리스도 안에서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님은 다시그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가정의 달 5월에 그 능력을 깨닫고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됨으로 더욱 성숙하고 성장하며 발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매없이 무성히 자란잡풀이 아니라 하나님께 귀한 열매를 바로 삶 속에서 아름답게 맺어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으로 인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