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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희생] 42눅19; 1-10 죄인의 집에 들어가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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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19; 1-10 죄인의 집에 들어가시는 주님_1

 

 2012.9.16.주. 주일오전, 주제설교-희생

 

*개요   {5복음서} <B관점> [3감정]-[5은혜]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2천년전에 오셔서 우리에게 복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110여년 전에 복음이 전파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의 4분의 1정도가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세워졌고 세계에서 제일 성도수가 많은 교회가 우리 나라에 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전파와 확장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전파는 이미 그 복음을 받아들인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과 보람을 주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인구의 4분의 3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고 여전히 교회를 한번도 다녀본 사람이 없습니다. 받아 들인 사람들은 주님의 구원을 얻었지만 그 복음을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은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여전히 이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복지를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신분의 철폐나 개혁을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오직 구원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상황이 어떻고 형편이 어떻든지 간에 구원받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 구원을 위해서 주님은 자신의 몸을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그 죄를 지는 과정은 간단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죄를 지으면 됩니다. 예수님이 죄를 사하시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지은 죄를 사하시고 그 사하심 속에서 다른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죄를 지으면 그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멸시하거나 핍박하거나 비난할 때 그는 예수님께 대해서 죄를 지은 자입니다. 그러면 그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 주님은 그의 죄와 함께 다른 모든 죄도 다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눅23: 33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나중에 그 죄인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못박았음을 고백할 때에 비로소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 돌아와 구원을 받고자 하는 자를 살려주십니다. 자신에게 죄를 지은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희생이 우리들 모두를 살렸습니다. 그 희생이 그 당시 주님을 못박았던 자들이나 그 이후에 주님을 못박은 우리들을 다 살렸습니다.

 

 

2.    예수님은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신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희생은 단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희생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심보다는 더 작고 사소한 희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은 더 실제적이고 더 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끔찍한 고통을 겪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사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결코 그런 일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를 죽는다는 것은 사실 존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일로 인해 우리는 결코 우리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구원이라는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더욱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그 어떤 희생도 다 감당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죽으심 뿐만 아니라 다른 희생도 다 겪으셨습니다. 그 희생은 우리에게도 쉽게 와 닿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희생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삭개오는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당시 사회가 인정하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이스라엘사람에게서 세를 거두는 세리였습니다. 그 세금은 전부 로마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나라의 압제를 받는 시대에서 그 나라의 일을 해주는 사람은 결코 환영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마군인들의 보호를 받는 그 세리에게 대놓고 그 악감정을 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손가락질을 하며 뒤에서 비난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랬던 삭개오가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여서 예수님께 관심을 가졌을 때에 그는 오히려 사람들의 저지와 훼방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만날 수도 없는 사회적 외톨이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는 뽕나무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뽕나물에 올라간 그의 모습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과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아무도 그런 우스꽝스러운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보고 싶다고 해도 그런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간절히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그러한 삭개오를 위해 예수님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아는 척을 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거나, 손을 잡아주거나, 사인지를 주거나, 포옹을 해주거나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전부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더 놀랍게도 주님은 그의 집에 거하시기로 했습니다. 잠깐 식사를 하시는 것도 아니고 아예 머무르시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주님이 삭개오에게 유하신다고 하셨을 때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그를 부러워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잘못하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분인데 어떻게 그런 죄인과 함께 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죄인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심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거셌습니다.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가셨습니다. 주님은 삭개오의 집에 들어갈 때 일어나는 모든 비난과 수근거림과 사회적인 지탄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남들은 다 죄인의 집에서 나올 때 오히려 죄인의 집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까워하지 않으셨습니다.

 

 

3.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신다.

 

주님이 이렇게 희생을 해주신 것은 단지 2천년전에만 아닙니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그러한 희생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남들은 꺼리고 증오하며 멀리하는 죄인들에게 주님은 나아가십니다. 그들이 주님께 대한 간절함이 있을 때 주님은 그들의 집에 거하십니다. 또한 그들이 주님께 대한 간절함이 없을 때에도 주님은 그들에게 나아가십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왜 주님께서 그렇게 죄인들에게 나아가시는가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왜 그렇게 죄인에게로 나아가셨는가를 설명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님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그저 은혜 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 은혜가 전달되기를 원하십니다. 은혜를 알지 못하고 살던 사람들이 그 은혜를 알고 변화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그 은혜는 바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삭개오에게도 구원이 이르렀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비록 로마의 세리요 죄인이었지만 그도 역시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현재적인 모습인 죄인의 상태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가 과거로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미래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죄인인 세리에게 나아가신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이렇듯 죄인의 구원에 있음을 알때에 우리들은 그 마음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은 단지 불쌍히 여기사 손을 잡아주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유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은 그를 구원하시려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원입니다. 단지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진정한 구원을 얻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지금도 주님은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시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자.

 

이 큰 사랑을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희생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나타내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받을 때 비로소 그분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은혜를 누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삭개오를 보십시오. 주님의 은혜를 온전히 받았던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 은혜를 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5, 6절입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그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였습니다. 그냥 시큰둥하게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못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쁨으로 주님을 받아 들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구절에는 더 확실히 나타납니다. 8절입니다.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그는 새로운 삶을 고백합니다. 그가 만약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신 것에 대해서 기쁨과 감격이 없었다면 결코 이러한 새로운 삶을 약속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가 정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는 더더군다나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추함과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알았을 때 그는 비로소 변했습니다. 그 부조화속에서 그는 거룩함으로 의로움으로 나아가도록 변하여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나의 부조화를 깨달음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달라집니다. 그속에서 우리는 삭개오처럼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립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악행을 그치게 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나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집에 유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아까워하거나 두려워하시지 않습니다. 모두가 등을 돌릴 때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바로 오늘 내가 너와 유하여야 하겠다’

그 음성을 듣고 주님을 모시어 들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우리 속에 거하심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감격으로 인해 우리의 소유를 주님께 고백하고 새로운 삶을 결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놀라운 변화를 꿈꾸면서 주님을 모시어 들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바로 오늘 우리의 집에 들어오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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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 3; 11-16 무엇이 그를 낫게 하였는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8-14 17 6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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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22; 7-15 때가 이르매 함께 앉으시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8-07 14 7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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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수9: 11-16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7-29 15 6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