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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용서] 43요21;15-19 진정한 용서의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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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21;15-19 진정한 용서의 표적_1



  / 2012.4.15. 주일오전, 주제설교-용서

*개요 [54용서] {5복음서} <4극본> [5은혜]-[6결심]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1. 베드로는 자신이 행한 주를 부인함에 대해서 주님의 용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부활이 일어난 뒤에 예수님은 부활을 믿지 않았던 제자들을 한사람 한사람씩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꼭 부활을 믿고 변화된 삶을 살기를 원하셨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믿을 수 있도록 힘을 주셨고 그렇게 해서 다시 주님의 부활을 믿게된 제자들은 예수님을 다시 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부활이후에 하신 일들은 전부 믿지 않는 자들을 다시 믿게 만드시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지 않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제자들 중에서 가장 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가 했던 가장 악한 죄악은 바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뜰에서 대제사장의 종들이 네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냐라고 물었을때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요18: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러했던 베드로였기 때문에 그가 예수님에게서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던 죄를 용서받는 것이었지만 그에게 주님의 용서란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모른척 했던 것을 용서받아야 하는 매우 심각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를 용서한다는 것이 매우 특별한 것임을 이해하시고 역시 정말 특별한 방식으로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해서 베드로를 용서해 주셨을까요?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왜 나를 부인했느냐, 사과를 해라, 용서를 구해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른척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용서는 매우 특별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를 용서하는 것이었습니다.


2. 예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실 때 더 큰 사랑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해주신 용서의 방법은 그가 했던 일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의 과거를 들추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용서의 본질과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현재의 그 마음상태를 물어보셨습니다. 그 상태를 통해서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고 계십니다. 15절입니다.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주님은 현재 베드로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과거에 그가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추궁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현재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 생각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그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통해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것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을 수 있습니다. 용서는 기본적으로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관계의 회복을 하려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보면 특이한 점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베드로가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그 의미가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이 '사랑'의 차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 성경에는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agapao'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의미는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pileo'적으로 사랑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필레오적인 사랑은 친구사이의 사랑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는 사랑의 종류가 '아가페적인 사랑'과 '필레오적인 사랑', 그리고 '에로스적인 사랑'으로 나뉘어서 구분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혼용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차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주님이 특별히 'agapao'를 쓰시고 베드로가 'pileo'를 쓴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베드로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는 예수님의 뜻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3. 주님의 진정한 용서는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물으신 것은 그리고 그것도 'agapao'로서 아가페적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주님이 그를 항상 아가페적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언제든지 베드로를 아가페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한번도 베드로나 혹은 다른 제자들을 필레오적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습니다. 늘 그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보여주신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이전 구절에서 발견합니다. 요한복음13:1절을 보십시오.
"요13: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어떤 사랑을 하셨을까요? 'agapao'일까요, 'pileo'일까요? 'agapao'입니다. 주님은 진심으로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요13:20절을 보십시오.
"요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여기에서는 어떤 단어가 쓰였을까요? 'agapao'일까요, 'pileo'일까요? 'agapao'입니다. 예수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쓰여질 때에는 단 한번도 'pileo'라는 단어가 쓰인 적이 없습니다. 전부 'agapao'입니다. 주님은 항상 아가페적으로 그들을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에 'agapao'라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그 사랑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pileo'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이 했던 죄를 생각하니 도저히 'agapao'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주님은 그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그 사랑에 화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주님의 용서를 온전히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주님은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주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은 과거의 실수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현재의 주님께 대한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베드로는 너무나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아가페적인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필레오적인 일반적인 사랑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미래에 대한 인도하심으로 나아갑니다. 그분의 사랑이 아가페적인 사랑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자신의 어린 양들을 먹이라고 미래의 임무를 주십니다. 그분의 용서하심은 과거와 현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용서하심은 미래에서 완성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베드로가 그 용서하심을 받아들여서 주님의 양들을 먹일때, 주님의 양들을 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는 비로소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쓴 서신서인 베드로전서 2:11절에서 그는 진심을 다해 그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여기서 베드로는 담대히 말하고 있습니다. 'agapetoi'(사랑하는 자들아). 그는 진심으로 이제 성도들을 'agapao'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여서 양들을 먹이고 칠 때 비로소 그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고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4.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통해서 과거를 씻고 새로운 변화의 미래를 만들어갑시다.

저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후에 다니던 교회에서 중고등부 성가대를 맡아서 지도해보라는 목사님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는 저를 신뢰해 주시는 목사님이 고마웠고 제법 자신도 있었습니다. 잘 해내리라는 목표를 가지고 용감하게 대학교 1학년때 성가대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을 해보니까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당시 교회는 1시간씩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멀리 있는 교회였는데 9시 주일학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7시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가야했습니다. 더 괴로운 것은 그렇게 애써서 가도 학생들은 제 지도를 잘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안오기도 하고 지시에 잘 순응하지 않기도 하고 여러모로 힘들었습니다.

결국 몇 개월 만에 지휘자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만 두겠다는 말을 목사님께 말하면서 저는 너무나 죄책감에 빠졌습니다. 맡았던 일을 이런 식으로 그만두게 되는 것이 괴로웠지만 도저히 더이상 해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는 다시 무엇인가를 맡는다는 것이 너무나 큰 부담과 괴로움이 되어버렸습니다. 수년이 지난 뒤에 교회를 옮기게 되어서 다른 교회를 다니게 되었을때 그 교회에서 또 이모 저모로 열심을 내고 여러가지 일에 참여하다 보니까 이런 저런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중고등부 지휘자가 저에게 지휘자를 해보는게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과거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그일을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측면으로는 그때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얼마동안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다시 그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에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아이들을 인내하고 또 인내했습니다. 위기도 있었지만 과거를 생각하면서 잘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무사히 1년을 끝내었을때 저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진정한 용서를 받을 수 있었고 진정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는 미래에 대한 신임입니다. 과거를 용서할 수 있지만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용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들을 진정으로 용서하십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들에게 놀라운 일을 맡기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그렇게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을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안에서 진정한 용서를 누리게 되기를, 다시 주님의 일을 맡은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 놀라운 용서하심을 기억하며 참으로 용서받은 자의 모습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복음을 거부하던 불신자였음을 회개하고 용서받는다면 앞으로는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사명을 거부하던 실족자였음을 회개하고 용서받는다면 앞으로는 사명을 감당하고 봉사하는 일군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 모습이 진정으로 용서받음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진정한 용서를 받게 하는 근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아가페적으로 사랑하셨던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깨달으며 다시 기회를 주시는 주님께 더욱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로 인해서 진정으로 우리도 누군가를 아가페적으로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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