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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계획] 61벧후 3:14-18 신앙과 삶의 변화를 생각함


61벧후 3:14-18 신앙과 삶의 변화를 생각함_1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벧후]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2011.10.16.주, 주일오전, [51계획]

*개요 {6서신서} [8사역]-[1영역]


우리는 자라면서 부모님의 기대와 소망을 알게 됩니다. 그 기대와 소망을 알게 되고 그 기대와 소망의 내용에 부합하게 되면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기대와 소망을 알고 그에 부합하게 되면 역시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성장한 다음에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이러한 기대와 소망에 부응하게 된다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갖게 합니다. 직장인들이, 운동선수들이, 정치인들이,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에 부응하게 되면 그로 인한 기쁨과 보람을 갖게 됩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에 부응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다른 것이 좀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맞고 그 뜻에 합치되는 인생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대와 소망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원하시는 인생은 어떠한 인생인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부를 더 잘하고 돈을 더 잘 벌고 세상에서 더 출세하게 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일 뿐입니다. 혹은 다른 사람들이 더 원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적인 가치로 우리를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에 대해서 원하시는 것은 단 두 가지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 번째 신앙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 찌어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 그것은 신앙의 변화입니다. 이전에 아는 것보다 더욱 많이 알게 되는 것, 그것은 신앙이 더욱 발전하고 성숙해지며 열매맺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삶이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부분의 발전 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온전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두 가지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에 대해서 깨닫고 그것을 이루어갈 때에 성도로서의 가장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보람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신앙의 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수 있을까요?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들에게 그 방법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우리가 주님의 오래 참으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얼마나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조금도 변화되지 않고 조금도 영향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의 변화에 대해서 거의 절망적입니다.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신앙이 생긴다는 것, 신앙이 자란다는 것, 신앙이 열매맺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부정적이며 절망적인 말은 사실입니다.
신앙의 변화단계를 네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구주믿음 - 2구원확신 - 3성령충만 - 4사명감당’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오래 다녀도 여전히 하나님을 구주로 믿지 않습니다. 구주로는 믿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있지만 성령충만하지 못합니다. 성령충만하기는 하지만 사명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로 인한 개탄스러움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로 정말로 어렵습니다.

노방전도를 할 때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하나님을 구주로 믿으시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많은 분들은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일반 성도들 중에는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어떤 장로님은 죽기 전에 목사님께 그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정말로 천국이 있을까요?’ 어떤 권사님은 자신이 병에 걸리자 이런 고백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구원을 못 받을 것 같아요’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해서 전부가 아닙니다. 성령충만을 받고 있느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충만이 뭐에요?” 들어본 적도 없으니 받았을 리가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명감당에 대해서는 질문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사명감당하세요?'라고 물으면 얼굴빛이 어두워지면서 말합니다. “사명감당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런 상태만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계속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모태신앙이어도 직분을 받아도 신앙의 변화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은 개탄합니다. ‘저 사람은 왜 그렇게 교회를 다녀도 믿음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개탄하는 성도들 자신도 전혀 신앙이 변화되고 있지 않는 자들일 뿐입니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 가장 큰 위로는 ‘주의 오래 참으심’입니다. 당장에는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도 주님의 오래 참으심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생겨납니다. 그것은 미혹에 빠져서 교회를 떠나지 않는 한 우리들의 신앙 속에서 생겨나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자라지 않는다고 절망하였지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우리에게 떨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신앙의 변화의 시작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의 오래 참으심 속에서 우리가 미혹에 이끌리지 않고 굳센 데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 일어납니다. 그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은 확고하게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에 딸아이를 데리고 정형외과에 갔습니다. 무릎이 너무 아프다고 해서 치료차 갔던 것입니다. 병명은 ‘오스굿(Osgood)’씨 병이라고 했습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무릎의 성장하는 뼈가 인대와 닿아서 생기는 통증이라고 했습니다. 그 병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예전에 바로 제가 그 병으로 기브스를 한달간 했었던 것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딸은 이제 일종의 성장통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구주를 믿음이나 구원의 확신이나 성령충만이나 사명감당의 신앙발전단계를 생각해볼 때 대개 사람들은 얼른 그런 단계를 뛰어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빨리 빨리 신앙생활을 하면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나오는 데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라고 했으니까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연구하면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중요하게 지적하는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방법은 유혹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빨리 빨리 키가 크고 자라나는 것을 생각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병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아프지 않아야 자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피아노를 치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떻게하면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까요? 열심히 피아노를 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피아노를 친다고 해서 한달만에, 1년만에, 피아노를 잘 치게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관건은 피아노를 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은 유혹을 견뎌낼 때에 비로소 피아노를 잘 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혹 중의 하나는 내 맘대로 치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억지로 풀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성도들이 이단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자유주의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전에 믿음생활을 잘 하다가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억지로 풀려고 하다가 멸망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유혹들을 잘 이겨내고 그런 갈등과 고민의 시간들을 주님이 오래 참으심으로 인내해 주시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때에 비로소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진정한 내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주님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경로로 여러분들은 이곳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함께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계속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겠고 또 하나님의 다른 부르심이 있다면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누가 함께 하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게 하셨고 앞으로 더욱 믿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람은 변화되지만 하나님은 변화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신앙의 변화를 이루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바라볼 때에 비로소 신앙은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홀로서기를 하고, 때로는 외로움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다함께 있는 소속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주님께 나아갈 때에 주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십니다. 그렇게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베드로 사도는 바라보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8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우리가 신앙의 변화를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그 영광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구주믿음이건 구원확신이건 성령충만이건 사명감당이건 그 믿음을 굳게 붙들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영광으로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에 주님은 이렇게 은혜와 지식 속에서 자라가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속에서 자라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온전한 신앙의 변화를 바로 이곳에서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성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과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2. 신앙의 변화를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3. 신앙의 변화는 미혹을 이겨내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포기할 때 일어나게 됩니다.
4. 이 교회생활 속에서 신앙의 변화를 이루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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