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경건] 38슥 1; 12-17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오시는 하나님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38슥 1; 12-17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오시는 하나님_1
2023. 3. 12.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스가랴에서 사람을 세움, 74경건
[슥]1:1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슥]1: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슥]1: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슥]1:15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슥]1: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슥]1:17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고 그 뒤에 내막이 있습니다. 그 내막을 알고 나면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욥기서가 욥의 고난의 내막을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에 그 고난이 이루어진 과정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스가랴서와 학개서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가랴서를 통해서 우리는 성전건축이 이루어지게 된 내막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학개서는 일어난 일의 과정이라면 스가랴서는 그 일이 일어나게 된 내막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오늘 말씀에서 스가랴서의 예언을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성전을 다시 건축할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일어난 일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슥]1:1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슥]1: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이 장면은 천상에서 일어난 일을 스가랴가 보고 증거한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하나님께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하신 지가 칠십 년이 되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천사와 하나님의 대화를 보다 보면 마치 욥기에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의 이해는 욥에게 임했던 일들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가랴서의 말씀은 성전건축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성전을 세우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스가랴서에서도 천사와 하나님의 대화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능력과 기술이 있어서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 성전을 지을 수 있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좀더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슥]1: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슥]1:15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슥]1: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말하는 천사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천사는 그 내용을 전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이방 나라들로 인해서 받는 고난으로 인해서 심히 진노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고통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새로운 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에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시는 일이었습니다. 성전의 건축은 바로 그 일의 표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처지는 것은 바로 성전 건축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새로운 성전을 공사하시고 완료하시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성전이 세워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이고 그 성전이 세워지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채워질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렇게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채우시기 위해서 성전을 짓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신도시가 세워지니까 학교, 병원, 마트, 관공서가 세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됩니다. 이런 것을 ‘통찰적 해석’이라고 합니다. 통찰적인 해석이 있을 때 일어난 일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오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통찰이 없을 때에는 일어난 일들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건들 이면에 있는 원리와 의미를 깨달을 때에는 모든 사건들이 다 이해가 됩니다. 분명한 통찰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러한 통찰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임재하셔서 성전을 세우고자 하실 때 우리에게 그런 의지와 방향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따르는 것이 바로 성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성전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울 수 있었다면 그로 인해서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모든 은혜는 성전이 세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슥]1:17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성전을 세운다는 것은 주님의 성읍이 된다는 것이고 그 성읍이 넘치도록 풍부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시온을 위로하고 예루살렘을 택해주듯이 우리의 삶을 위로하시고 택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성전 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이미 세워진 성전이 이러한 가치가 있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계속 사모하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성전이 생기니까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지에서도 유적이 있고 관람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전부 돈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무료로 보는 곳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은 전부 요금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만약 그곳에 관광객이 아무도 없다면 썰렁하고 황량해서 버리지는 곳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찾는 사람이 있을 때 그곳은 시간이 흐르고 본래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혜택을 보는 인기있는 곳이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사람에게는 그런 은혜가 있습니다. 그 성전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그 성읍들에 모든 것이 풍부해집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는 에덴 동산 처럼 모든 것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셔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가까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로 인해서 물을 먹고 음식을 먹으며 사랑을 얻고 희락을 누립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을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죄 가운데 버려질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삶을 성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에서의 삶과 직장에서의 삶과 가정에서의 삶과 그리고 개인적인 삶을 보십시오. 그 속에 하나님이 있으면 뭔가 달라도 다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평화로움이 있습니다. 만약 그 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 삶은 성전이 아니라 신전일 뿐입니다. 스스로 돌아보십시오. 나의 개인적인 삶에 하나님이 있는지 자기 자신이 있는지. 성지순례에서 ‘데린구유’라는 곳에 갔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굴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혼자 숨어 있으면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위하고 예배를 위해서 신앙인들이 만든 굴이었지만 그곳을 자기 만의 장소로 삼으면 그곳은 가장 음침하고 가장 위험한 굴이었습니다. 그곳이 성전이고 예배의 장소이니까 다행이었지 그곳이 모든 악을 자행하고 은밀한 일을 행하는 곳이었으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우리가 혼자 있는 시간은 어떤 시간입니까?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이 그 시간을 신전 만드는 것을 보기 싫어서 성전이 사라지게 하셨는데 다시 만들어진 성전은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을 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성전이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여가 생활도 성전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여가 생활이 다시 일상의 일들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고 사람들과 연결되며 자기 자신에게 발전적인 일들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며 성전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다닐 교회가 생겼고 그 교회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녀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닐 수 있도록 허락 받은 것입니다. 이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으로 하나님을 모시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결심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6통찰적해석 1.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성전을 세우고자 하였다. 3.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4.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삶을 성전으로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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