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1: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학]1:15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학]2: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학]2: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학]2: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학]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단되었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기준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꾸게 하시는 인도하심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이 모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잘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그 결론은 단순히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를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역사에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보여주시는 의미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성전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을 생각하고 그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학개서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상징이었다.
애초에 성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원래 아브라함 시대에는 성전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성전도 역시 하나님의 모든 계획에 의해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학]1: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학]1:15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 땅에서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본질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되어진 결과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미 하나님은 되어지는 모든 과정 중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완성된 후에야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이미 성전은 완성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삶이 완성된 성전만이 아니라 완성되고 있는 성전임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신 말씀이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입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것을 깨닫고 성전된 몸을 거룩하게 하며 성전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성전의 화려함이나 초라함만 보게 되었다.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됨을 알지 못하면 사람들은 성전의 외적 모습만 생각하게 됩니다. 본질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건물이나 혹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며 의지하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성전에 관해서 겉으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7절을 보십시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임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이 거룩하고 하나님의 거하심임을 경외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우리 육체가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모르는 자들은 그 귀한 하나님의 성전을 업신여기고 소홀히 대하며 하나님의 뜻을 어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죄를 짓는 일입니다.
그 죄악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더 성전의 화려함이나 초라함 만을 봅니다. 사실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중시합니다. 진정한 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왜 성전을 중시하고 하나님의 전을 자신의 집보다 먼저 하라고 하셨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증거임을 이해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 중요성을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알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어야만 성전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학개 2장 2절을 보십시오.
“[학]2: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학]2: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전 성전과 비교할 때 지금 성전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를 알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전 성전은 화려했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서 무의미한 장소였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성전은 초라할 수는 있지만 의미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마침내 이루어진 성전은 이전 솔로몬 성전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본질을 이해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자.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지만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화려해도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른다면 우리 자신이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너무나 거룩하고 귀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그러한 성전이 되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의 본질이 하나님 자신 임을 올바르게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4절입니다.
“[학]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용기를 주시고 굳세게 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모든 죄를 회개하고 모든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의 영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인도하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가장 놀라운 성전의 영광입니다. 그 자신이 성전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영광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고 더욱 하나님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고 우리 삶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또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외견상 어떨지라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