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선악] 33미 2; 8-13 자신의 왕을 따라가는 사람들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33미 2; 8-13 자신의 왕을 따라가는 사람들_1
2022. 10. 23. 주. 주일오전.
*개요: 미가서에서 신앙을 세움, 23선악,
[미]2:8 근래에 내 백성이 원수 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기며 [미]2:9 내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는도다 [미]2:10 이것은 너희가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니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미]2:11 사람이 만일 허망하게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로다 [미]2:12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미]2:13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10월에 함께 보는 미가서를 통해서 우리는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여러 가지 혼란스러움을 잘 해결해 줍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복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있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의 목적은 ‘죄를 버리고 의를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그 목적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 지옥을 가지 않고 천국에 가며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얻는 자들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복음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복음의 약속에 대해서 오늘 말씀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죄는 고대 이스라엘 지역의 다른 민족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들과 달라지기를 원하셨지만 여전히 동일하게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서 분노하셨습니다. “[미]2:8 근래에 내 백성이 원수 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기며 [미]2:9 내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수가 되어 버렸고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을 빼앗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하나님의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집에서 쫓아내고 그 어린 자녀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들이 행한 악한 일이 결국은 연약한 부녀들에게서는 집을 빼앗았고 어린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백성들이 올바르게 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이 아닌 용서를 통해서 그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볼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눈으로 보이게 나타나시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이 안 보일 때 죄를 짓습니다. 이는 마치 경찰이 있는 곳에서만 올바르게 할 뿐인 것과 같습니다. 안 보이면 악한 짓을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그렇고 사탄이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감각적인 깨달음이 아닙니다. 이성적인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감각적인 자극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눈으로 봐야 믿고 손으로 만져야 안심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 부분에서는 그러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관계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경고와 예언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심판과 멸망을 무력화시킵니다. 10, 11절을 보십시오. “[미]2:10 이것은 너희가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니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미]2:11 사람이 만일 허망하게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로다” 하나님은 그런 악행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 더러움과 멸망을 자초하는 일로 부터 멀어지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심판하심과 다스리심에 대해서 분명한 의지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말을 싫어했고 새로운 선지자를 원했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선지자는 허망하게 행하고 거짓말로 포도주와 독주를 먹으라고 예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는 바로 그런 거짓 선지자의 말을 거부하고 심판과 멸망을 이야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경험적인 근거와 함께 이성적인 분별력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믿는 사람이면서 또한 이성을 통해서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을 수 있습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이성을 통해서 믿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경험이 먼저이든 혹은 이성이 먼저이든 그것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각자에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험을 통해서 믿게 되었다면 이성으로 나아가야 하고, 이성으로 믿게 되었다면 경험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경험과 이성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계획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와 계획을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니까 따라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죄악과 악행으로부터 떠납니다. 그러니까 멸망으로부터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를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께로 이끄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입니다. “[미]2:12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미]2:13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모으고 한 처소에 둔다고 하십니다. 그 일을 위해서 사람들이 기뻐 떠들며 길을 여는 자가 앞서 올라간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믿는 자들을 인도하시는 왕되신 그리스도와 그들을 섬기는 자들의 존재가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와 같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들을 위해서 한 처소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 인도하심을 한걸음씩 잘 따라 나갈 때 구원을 얻습니다. 경험적 구원이면서도 이성적 구원입니다. 또한 이성적인 구원이면서도 역시 경험적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는 늘 경험적인 믿음을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도 자신은 그 손을 직접 경험해봐야 믿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도마는 자신의 손가락과 손으로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경험해 보면서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경험적 증거가 없어도 이성적 증거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선으로 인도하시고 악에서부터 나오게 하시는 것이 이성적 증거입니다. 그 증거를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이 패역한 세상에서 두 가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포도주와 독주에 대해서 평안을 예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인기 많은 선지자입니다. 다른 한 쪽에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을 말하는 미가 같은 선지자입니다. 대신에 따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말을 따라야 할까요? 어느 쪽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주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리스도를 왕으로 따라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마련하신 처소를 사모하면서 멸망을 피하여 의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2관점적해석 1.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악함에 대해서 심판과 멸망을 말씀하신다. 2. 세상 사람들은 그 예언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3. 우리는 주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따르며 구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4. 거짓을 분별하고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을 때 하나님께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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