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미움] 32욘 1; 6-10 자는 자여 네 하나님께 구하라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32욘 1; 6-10 자는 자여 네 하나님께 구하라_1
2022. 9. 11.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요나서에서의 신앙의 세움, 22선악-31미움-46지배/51계획
[욘]1: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욘]1: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욘]1: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욘]1: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욘]1: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할 것 같은데 별로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자신에게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아니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에 대해서 지금 알아보려고 하고 앞으로 그것이 어떤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현재 교회에 다니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없고 특별함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을 예를 들면 경기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그 사람들은 운동관람을 좋아할 뿐이지 그 운동을 잘 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지금 막 관심을 갖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혹은 자신보다 더 잘하는 선수들이 운동을 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인해 마음이 흡족해지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신앙생활도 초보수준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경험은 있지만 신앙생활의 열매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이 그런 상태라면 이런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하루 빨리 신앙생활의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좀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아가 하나님을 정말 믿고 있다고 해 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고 특별하게 하나님을 생각하는 신앙심이 정말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빨리 그 이유를 찾아서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부지하고 삶을 평안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의 경우가 바로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뱃사람들이 요나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하였습니다. 요나를 통해서 현재의 문제가 해결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욘]1: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구함으로서 함께 타고 있는 이 배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은 신앙의 결실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결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얻게 됩니다. 그래서 함께 공유하고 있는 환경과 상황과 조건 속에서 더욱 안전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간구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믿는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자연재해가 생기기 않기를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위협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뭄이나 전염병이 빨리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 모든 것이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모두 간절히 바라는 삶의 일들입니다. 물론 어떤 믿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개인적인 목표와 비전을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더 많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런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거기에 더해서 모두를 위해서 기도해주기를 바라고 또는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 말씀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선장은 요나에게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지만 사실 요나는 구하지 않았습니다. 폭풍이 멈추기를 기도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무 것도 안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지금 하나님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런 요나의 숨은 사정이 드러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혼잡한 와중에서도 폭풍의 원인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욘]1: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욘]1: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그들은 제비를 뽑았고 놀랍게도 요나가 제비를 뽑혔으며 사람들은 요나에게 그의 생업과 나라가 무엇이며 소속이 어디인지를 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나의 비밀에 대해서 알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과정이 어쩌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폭풍 속에서 제비를 뽑을 수가 있으며 왜 하필 그 제비가 요나에게 뽑혔는지를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요나가 자기 비밀을 다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밀이 알려지는 과정보다 그 비밀이 존재한다는 것에 좀더 집중해 보십시오. 그러면 현실 속에서 그런 숨은 일이 드러나는 일은 의외로 쉽게 나타납니다. 누군가 업무에 태만해서 모두에게 커다란 피해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다는 일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문제가 생겨서 그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누군지를 CCTV나 탐문이나 여러 증거를 통해서 찾아보니 그 사람이 사실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어난 문제의 원인이 누구인지 누가 원인인지를 알고 나면 사람들은 물어볼 것입니다. 왜 그걸 막지 않았느냐고 할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을 소극적으로 그냥 내버려 두었느냐고 할 것입니다. 또는 왜 그런 악한 일을 적극적으로 했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 하소연이 9,10절에 나타납니다. “[욘]1: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욘]1: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요나는 자신이 히브리 사람인 것을 말했습니다. 또한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임을 밝혔습니다. 그는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고 있음을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무리는 심히 두려워하면서 대답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여기서 요나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라고 말하는 대목이 더욱 인상적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바로 요나로 인해서 피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런 고민이 이해가 되고 동정도 되고 편도 들어줄 수 있겠지만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자신의 믿는 신을 부르짖고 자신의 짐까지도 내어버릴 수 있는 간절한 삶을 살고 있는 자들에게는 요나가 말한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가고 있다는 고백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죄를 짓고 악을 행하면서 살아가니까 자신들에게도 그렇게 피해가 오고 있었습니다. 신앙인이 신앙인 답게 살아가지 못하면서 행하는 다른 사람에게 주는 피해에 대해서 의식 있고 열심이 있는 세상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해서 탄식합니다. 그럴 때 믿는 사람들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요나의 모습을 보면서 이 일이 제발 내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야 하겠습니다. 내 자신이 이렇게 되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네가 어떻게 그렇게 행했느냐’는 탄식을 듣는다면 아주 비참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회피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나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요나는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니느웨에 가라는 말씀만 알았을 뿐입니다. 왜 그로 하여금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지 그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것을 세상에 나타내시려고 했는지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요나는 바로 그것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더욱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계획과 뜻을 나타내 주셨을 것입니다. 그 뜻을 알게 되면 무조건 하나님을 피하려고 했던 일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성도들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가장 진실하고 지혜로우며 긍휼이 많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간구가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가장 개인적이며 가장 자기 중심적이고 가장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 자신에게나 주변 사람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하나님을 피하면서 살아가는 요나와 같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세상에 혜택을 주면서 살고 피해를 주면서 살지 않는 귀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신실한 성도가 되고자 하는 마음의 바램과 소망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4극본적해석 1.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못하거나 찾지 않는 성도들이 있다. 2. 그 이유는 하나님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어려움이 생긴다. 3.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의 신앙적 약함으로 인해서 괴로워한다. 4. 모든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계획이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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