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1: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한대
[요]1: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대답하되 아니라
[요]1: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하느냐
[요]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소리로라 하니라
성탄절을 앞두고 있는 이때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일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속해서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인가, 아니면 예수님께 속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인가에 대해서 스스로 대답하고있습니다. 그것은본질적으로자신이누구인가를묻는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탄 앞에서 나는 어떠한 자인가 라는질문은이세상에존재하는모든성향과목표와방향과취향보다도더욱중요하고본질적인정체성을보여주는질문입니다. 그말은다시말하면자신이누구인가라는의미이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예수님의 성탄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나타내게 됩니다.
유대인들이보낸사람들은다시그러면그가선지자냐라고말했습니다. 선지자일때에는그때그때하나님의가르침과교훈을알려주기위해서하나님께서보내신사람을의미했습니다. 그런데그것도역시세례요한은아니라고했습니다. 사실그는선지자이기도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세례요한은자기의본질이단순한선지자가아니라고하였습니다. 그는자신에대해서그이상의특별한의미를가지고있었습니다. 단순한하나님의뜻을전파하고예언하고가르치는자가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더더욱특별하고구별되며유일한하나의사명이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세례요한에게 재차물었습니다.
“[요]1:22 또말하되누구냐우리를보낸이들에게대답하게하라너는네게대하여무엇이라하느냐”
그들은계속해서물었습니다. ‘네가누구냐’고물었습니다. 그리고그렇게자꾸세례요한이누구인지를물어보는이유도설명합니다. 그것은 ‘우리를보낸이들’에게대답하기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보낸이들에게대답할수있게하라’고말했던것입니다. 끊임없이이것도아니라저것도아니라하는요한에대해그들이정말알고싶은것은 ‘너는네게대하여무엇이라하느냐’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같은질문을받고있습니다. 단지그리스도인이다라는설명으로는우리자신이명확하게나타나지않습니다. 그것은그냥표면적인대답일뿐입니다. 그 속에서무엇을하는사람들인가도중요하지않습니다. 본질적으로왜교회를다니며교회를다니는이유가무엇인가가중요한것입니다. 그것이단순히종교로만묻는것이아닙니다. 그리고그질문은삶 속에서선택의순간에주어집니다.
그런말속에는유대인들이보냈던사람들이물었던질문인 ‘선지자라도되느냐엘리야 정도라도되느냐’라는식의질문이있기도합니다. 그들이이렇게악착같이우리의본질과목표를묻는이유는유대인들이보낸사람들의목표가그들에게도있기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를보낸이들에게대답하게하는것’이었습니다. 그대답을통해서그들은세례요한을공격하고반대하며비판하려고하였습니다.
이시대에 ‘우리를보낸이들’이목표로하는것인가를생각해보십시오. 믿지않는자들이세상사람들이근본적으로믿는그리스도인들에게원하는일이무엇일까요? 그것은함께믿지않게되는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 대신 그리스도가 되고엘리야가 되고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없는 자가 됩니다. 매주놀러가고매주집에서쉬고매주하나님을묵상하지않게함으로써더욱하나님의사람이되지못하게막으려는것입니다. 물론이것은의도했을수도있지만의도하지않았을수도있습니다.
세상이우리에게 이 질문을 묻고있습니다. 교회밖에서이런질문을받게됩니다. 우리스스로별볼일없는자들이고그렇게열심을낼필요가없다는것을깨닫게해서결국은신앙생활을중단시키려고 합니다. 이질문에대해서우리의대답은무엇일까요? 세례요한이우리에게그질문에대한가장좋은대답을알려주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