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후]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살후]3: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살후]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살후]3:4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살후]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운동경기에 비유한다면 어떤
것이 적절할까요? 성경은 신앙생활을 자주 마라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달린다든지 목적지가 있다든지 이런 표현들이 신앙을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에 비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종목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출발은 동일했지만 목적지가 다르다든지 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목적지를 단지 장로가 되는 것, 권사가 되는 것에 둔다면
그런 목적은 허무하고 무의미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목표를1000번 예배드리는 것, 100번 성경공부하는 것 등으로 세워버린다면 역시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오늘 성경에 말하는 것처럼 진실되고 내면적인 무엇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후]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믿음을
가지고 인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은 그 사랑을 깨닫고 행한다는
것이고 그 인내를 깨닫고 행한다는 것입니다. 완수했다는 것, 이루었다는
것이 바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믿음생활을 하면서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을 행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랑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오랜 믿음생활 가운데 결국 절대로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참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주변에서 우리는 종종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이 넘치고 어느 누구보다도 인자하여
오래 참는 그런 사람, 그런 신앙인, 그런 모범적인 신앙인을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마 우리 중에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
없다면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리 중에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혼자서 신앙생활을 경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도 없이 우리끼리만 달리기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도움이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그 역효과는 여러분들을 절망에 빠트린다는 것입니다. 실족하게 하고
낙심하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게 하지 않고 도리어 믿음생활로부터 멀리 빠져나가게 합니다. 어떤 경우가 그럴까요?
함께 놀러가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 교회를 나가지 말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 이단에 가보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 새로운 종교를 믿어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전에 동일하게 달렸던 사람들이고 동일하게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변질되고 배교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교회다니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믿어 보았자 소용이 없고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전혀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정체는 ‘우리를 유혹하는 악한 사람들’입니다.
“[살후]3: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그와 같은 유혹에 빠져서 동일하게 교회를 다녀도 건성으로
다니고 동일하게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고 동일하게 교회를 욕하고 비난하게 되어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교회를 전혀 안다녀본 사람이 아니기에 더욱 교회의 무능함과 교회의 약점과 교회의 부족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정죄합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대한 모욕과
비판이 모두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라는 것을 왜 알지 못합니까? 물론 교회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와 절실한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교회에서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 겠다는 자기성찰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서 하는 충고나 조언은 결국 교회에 대한 핍박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자들로
인해서 낙심하고 실족하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아니구나!’
믿음은 모든 사람들이 갖는 것이 아니고 일부 사람들 혹은
어떤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런 비난과 단점과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우리 교회를 여러분이 다니는 이유는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물론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이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목표가 있다면 우리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유혹하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의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속 계속 그들의 유혹이 지속된다면 우리도 정말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편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너무 좋아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려고 하는 일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지금까지도 못들어갔는데 앞으로도 들어갈 수 있을까 좌절이 됩니다. 이미 출발한 사람들도
못들어 가고 있는데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정말 죽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온전히 들어간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도 듭니다. 완전한 성화는 죽은 다음에야 이루어지는 거야. 그러면 지금은 불가능한
목표를 가지고 달음질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신앙생활해야지. 이런 유혹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포기해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설사 살아있을 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합니다. 우리가 살아갈때에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사랑에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냥 포기한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것 뿐입니다. 그런 다음에 무엇을 하겠습니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무엇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살후]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목표를 마침내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믿음에 믿음을 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내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새 그 사랑이 우리 속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새 그리스도의 인내가 우리 삶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순간
순간 나타날 뿐 아니라 가장 괴롭고 힘이 들때 빛을 발휘할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날 것입니다. 가장 인내하지 못할 때 그리스도의 인내가 나타날 것입니다. 언제 그런 믿음이 나타날까 싶게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으면 새 힘이 속에서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의 들어가는 모습을
꿈꿀 때에 우리는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정말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때를 기다리며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후]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서 달음질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혼자의 힘으로 그런 모습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실족하지 않게 막아주셨습니다. 교회를 떠나지 않게 붙들어 주셨습니다. 욕심대로 살지 않게 다스려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함께 달음질 하였습니다. 그래서 영광스러움이
함께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랑과 인내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범을
보이시고 힘을 주시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기뻐합니다. 우리가 마치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된 것이고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고 종에서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이 그 영광스러우심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달음질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통해 우리는 힘든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달음질하다가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살후]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를 목표로 삼읍시다. 그래서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갑시다. 안되더라도 낙심하지 맙시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또한 붙듭시다. 말씀안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래서 그 목표를 이룹시다. 그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아주실 것입니다. 주님 닮아가고자 하는 그 노력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