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는
성도의 믿음의 성장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는 그것은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설명을 종합해 볼 때 성도의 성장 과정을 아이의 자람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몸이 커져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마음이 커져가는 것이며 세 번째는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성장의 첫 번째의 특징은 몸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아이는 당연히 많이 먹을 때에 많이 자라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또래에 비해서 몸집이 작습니다. 왜
그럴까요? 잘 안먹기 때문입니다. 잘 먹는다는 것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잘 안먹는다는 것은 부모가 먹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요 가려먹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즉 편식을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편식은 부모의 묵인하에서 계속 이루어집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면 그런 일을 막을
수도 있겠지만 자녀와의 실랑이를 두려워하거나 힘들어한다면 그냥 방치하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작고 연약한 아이가 될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이와 같은 성도들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연약한 자들이 강건하게 되고 자라날 수 있습니다.
“[엡]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몸이 커져야 합니다. 그
몸이 성도의 수와 규모일 수 있고 사역의 규모와 영역일 수 있습니다. 어떠한 것이든 계속 성장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로 매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의 몸을 자라게 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에베소서는 적절한 양식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강렬한 의문과 필요성에 대해서 에베소서는 적절한 교훈과 지식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도 읽고 공부하며 묵상할 때에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때 그리스도의 모습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더욱 그 모습을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인 마음이 자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또래에 비해서 발달이 늦는 아이들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 아이들은 ‘생각주머니’가 작다라고 표현됩니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보다는 좀더 자기 중심적이고 본능적인 생각에 따라갑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신체적인 연약함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회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자라는 성도는 무엇일까요? 그
성도에게는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의 욕구와 본능을 싸워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래서
우리가 신앙주제로 보고 있는 ‘유익, 편안, 쾌락, 인정, 존경, 지배’의 여섯 가지 욕구를 이기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그 성도는 마음이 자랍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크기와 사역의 규모와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속에서
누릴 수 있는 ‘인내, 희락, 사랑, 화평, 자비, 우애’의 마음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끌림을 받는 성도는 반드시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모든 성도들의 성장의 목표는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기까지가 우리의 진정한
성장의 목표입니다. 그 분량에 충만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가상적인
경우로 만약 군대가 더이상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남북한 사이의 화해무드가 형성된다고
해서 훈련을 중단한다면 열강들 사이에서 어떻게 우리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회사가 그해 매출이
급격히 신장되었다고 해서 더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 다음해에는 엄청난 수익의
하락이 예상될 뿐인 것입니다. 학생이 이번 시험을 잘봤다고 해서 공부를 게을리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다음번에는 수치심과 절망감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사람들이 계속 달려가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가
고작 어느 누구의 분량을 따라잡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언젠가 가장 밑바닥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고작 한국의 믿음의 위인들, 혹은 해외의 믿음의 위인들, 그리고
성경의 믿음의 위인들을 따라가려고만 한다면 턱도 없이 미치지 못할 것이고 된다하더라도 금새 시들해져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까지 나아가는 것은 영원히 이루지 못하더라도
마음의 꿈을 품고 달려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몸이 자라고 마음이 자라고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를 때까지 자라난다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교회생활속에서의 변화입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자랐고 계속 자라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예식에서 기뻐하는 것은 우리이지만 영광을 받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입니다. 그동안 우리를 먹이고 입히며 돌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가상히 여기시고 축복해 주시겠습니까? 이는 마치 자녀가 자라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돌잔치를 하고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각각의 단계를 거칠 때에
부모의 마음은 기븜으로 가득합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교회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다음 번에는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될 것을
믿고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더욱 교회를 사랑하고 주안에서 직분을 소중하게 여기며 봉사하게 되는 우리
모든 소원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