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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교육] 60벧전 3;13-22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2



 

60벧전 3;13-22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2_2

 

 2013.10.20.주. 주일오후

 

*개요:    1성경, 4복음서신서, 3분석, 7실천-8사역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3)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4)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오늘 말씀에 보면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있는가라는 설명은 다소 의아하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안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임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받는 일은 달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난으로부터 피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 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더욱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더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예수님의 고난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고난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이유는 불의한 자를 살리기 위함이었고 그 목표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아니었다면 결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고난이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이 놀랍고 숭고한 목표를 주님은 이루셨습니다. 그분이 고난받기를 거부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완전히 버림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오히려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5장에 나오는대로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결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는 가장 귀한 이름이 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고난을 통해 목표를 이루고 목표의 성취를 통해 유익을 누립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도 고난을 통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고난이 다 목표를 이루게 하는 것일까요? 모든 고난이 유익을 얻게 하는 것일까요? 그 고난은 혹시 나의 죄로 인하여 받는 형벌은 아닌가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고난과 자신의 죄로 인한 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이 둘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다시한번 오늘 말씀을 찬찬히 묵상해 봅니다.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나님의 뜻은 단지 고난받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것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과 구분됩니다. 선을 행하였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것은 선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아가다가 악을 행하였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악을 행함으로 인해 벌을 받은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면서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예를 들어, 사무엘상 6장에서 벧세메스 사람들이 블레셋에게 빼앗긴 언약궤를 다시 가지고 돌아온 것은 선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본 것은 악입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가지고 돌아온 것은 선이지만 웃사가 궤를 붙잡은 것은 악입니다. 이 둘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만 하고 그럴 때에 비로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궤는 들여다 보아서는 안되고 만져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그렇게 할 때만이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할 때 고난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노력하다보면 비로소 결실을 얻고 유익을 얻는 때가 생기는 것입니다. 노력과 투자를 하지 않으면 마침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노력과 애를 쓰고 인내를 하다보면 다시 새로운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그 새로운 경지의 의미가 무엇인지 21절을 보십시오.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세례를 통해서 표현되는 고난을 극복하는 삶의 의미를 여러분은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세례에 대해서는 세례교인이라면 누구나 그 때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람마다 세례를 받을 때의 환경과 상황은 틀려도 자신이 세례를 받았음을 기억하는 사람마다 그 세례가 처음 자신에게 주었던 감동이나 설레임이나 흥분 등을 기억으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세례를 받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환경에서 세례를 받았을 지라도 동일한 것은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나가는 삶이 진행중이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세례의 기분이 아무리 놀라운 것이었다 하더라도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없다면 그때의 느낌이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부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입학식 때의 감흥을 갖는 사람도 있고 갖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예식이 어땠든지 간에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입학식을 해야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가 의미하는 것은 이제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물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임을 나타내는 데 쓰여지는 표시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이 세례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기만 하면 모든 죄가 다 사해진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단 세례를 받고 나면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구원은 이제 따논 당상입니다. 내가 이제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믿음을 가졌으니 천국은 보장되어 있고 꾸준히 믿음생활만 잘하면 예수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좀 안다는 사람들은 한번 택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버리지 않으신다고 했으니 이제 택함을 받아서 세례를 받은 자신은 안전히 지키심을 받고 천국문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는 무엇입니까?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죄씻음을 받는 것 아닙니다. 세례는 다시말해서 끝이 아닙니다. 세례는 시작입니다. 새로운 출발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닙니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입니다.세례를 받은 자는 그 양심이 선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에대한 표식으로써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 세례를 받은 이 선한 양심은 새로운 길을 떠나야만 합니다. 목적지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떠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도달하신 곳은 바로 하나님 옆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고난을 감당한 자가 이르게 되는 곳입니다.

“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세례를 받고 그 항해를 하고 계시는 성도여러분, 이 항해에서 성공하시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바로 고난 속에서 그러한 삶을 진행해야 합니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바로 예수님이 그렇게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지하시고 마침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항상 하나님을 바라고 나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 우편에 앉게 되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도의 고난 속에서 가나안을 찾아 나간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해 그를 찾아 쉬지않고 끊임없이 부지런히 찾아나가시는 여러분들이 바로 고난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 자들이고 그럴 때 그 의미 속에서 진정한 변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아들의 사람들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따르고자 다짐하는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은 모든 고난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시는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그 귀한 뜻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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