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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성숙]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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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14;15-17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_2

2010.10.3.주일오후

오늘 이시간에 우리는 전도에 대한 말씀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또한 전도에 대한 교육을 시행하면서 지난 주에 이은 상담전도에 관한 교육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불신자에게 하나님을 전할 때 우리는 참 난감해합니다. 어떻게 전해야 하나님의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지 어렵게 생각됩니다. 우리가 직접 믿는 것과 다른 사람이 믿게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믿음을 권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이 전도를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더 잘해야 겠다는 부담감이 더욱 전도를 힘들게 만듭니다. 하고 싶지 않지만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전도를 더욱 두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도망가면 갈수록 따라오는 것이 전도입니다. 피하면 피할 수록 두려운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고 전도가 하나님의 뜻임을 자각하고 전도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여기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측면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전도가 더이상 두렵거나 피할 수 밖에 없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숙명이며 우리의 존재의 의미라는 사실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의 첫 번째 측면은 전도자입니다. 전도는 일단 전도자 자신의 문제로 인식됩니다. 전도자 자신의 익숙치 않음과 어색함과 수치스러움과 스스로 전도를 할만큼 성숙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우리를 전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전도를 하기는 하지만 요령의 부족과 진심의 부족과 사랑의 부족과 잘못된 전도의 목표 등이 역시 전도가 열매를 거두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전도에 대한 교육은 우선 전도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자신의 전도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 부정적인 생각, 절망적인 반응 등 전도자의 모든 멀어지려고 하는 마음을 다룹니다. 또한 전도자의 요령부족, 기술부족, 열정부족, 그외 뭔가 잘 안되는 이유를 살피면서 하려고 하는데 왜 열매가 맺히지 않는지를 살펴봅니다. 이런 저런 내용들을 들으며 배우며 공부하다 보면 그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새롭게 올바르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전도에 대해서 전도자 자신의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를 성도들이 가질 수 있다면 전도에 대한 교육은 일단 성공입니다. 혹은 변화를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역시 성공입니다. 전도교육은 먼저 전도자를 일깨우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고 루스드라로 도망쳐 왔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더욱 담대하게 루스드라에서도 복음을 전하였고 그곳에서 한 앉은뱅이를 보게 되었는데 바울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명령했습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정말로 바울이 그 앉은뱅이에게 명령하였을 때 그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이 모습을 본 루스드라 사람들은 신이 인간의 형상으로 지상에 내려왔다면서 흥분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희랍신화에는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세상에 내려와 인간 세상을 돌아보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루스드라사람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신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 바나바와 바울은 그들을 말렸습니다. 그리고 원래 그들이 하려고 하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바나바와 바울의 그 진정성을 보십시오. 그 열심을 보십시오. 그 노력을 보십시오.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 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그 순간에도 그들이 전도하기를 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바랬습니다. 그들 자신을 특별한 사람들로 여기지 않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전도자의 심령을 생각할 때에 바로 이 부분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특별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성정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자들일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자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두 번째로 전도의 두 번째 측면은 ‘전도대상자’입니다. 전도자가 있으면 당연히 전도를 받는 사람, 즉 전도대상자가 있을 것입니다. 이 전도대상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입니다. 신자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왜 신자가 전도대상자인가 의아해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생각을 해보십시오. 교회에 새로 오는 사람들 중에는 신자가 없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를 왔거나 실족을 했거나 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거나 기타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에 새로 오는 사람들은 신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자를 믿는 사람을 교회 다니는 사람을 전도대상자로 삼게 됩니다.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전도하는가는 이미 지난 주에 살펴보았습니다.
그 다음의 전도대상자는 ‘불신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대상자로 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가 무교이건 혹은 불교이건 혹은 천주교이건 혹은 다른 종교를 믿고 있건 간에 기독교가 아닌 모든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천주교인에 대해서 오해를 많이 하시는데 그들을 믿는 사람들로 생각하다보면 이해안되는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차라리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전도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전도의 두번째 측면인 ‘전도대상자’에 대한 이해와 전도방법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전도대상자는 하나의 객체로서 전도자의 관계에서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는 이웃이 될 수 있고 동네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친구이거나 가족, 혹은 어떤 식으로든지 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는 붙들어 주지 않으면 멀어지고 붙들어주면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를 불러서 이쪽으로 오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를 따라서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리로 오도록 우리가 있는 하나님이 계시는 쪽으로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대상자가 전도자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전도의 두 번째 측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도대상자를 알아야 합니다. 그를 모른다면 결코 그와 연결될 수 없습니다. 그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그는 나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아는만큼 가까워지고 그럴 때 하나님께로도 인도할 수 있습니다. 다시 15절을 보십시오.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그들은 자신이 행하고 있던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는 자들이지 멀어져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오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를 위해서 ‘상담전도 대화법’을 이용해 보십시오. 처음 어떤 전도대상자에게든지 하는 질문은 동일합니다.
‘당신은 교회에 나가십니까?’
그 다음에 신자는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고 불신자는 아니오, 혹은 됐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신자를 위한 대화흐름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질문은 ‘영역’에 관한 것입니다. 맨 처음에 영역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의 영역은 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역’에 대해서 이렇게 질문해보십시오.
‘이전에 교회를 나가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것은 말 그대로 영역, 교회경험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의 가족상황, 그의 학창시절, 그의 직장생활 등등 속에서 교회와 연결되었던 적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간 적이 있다고 하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고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에게 맞는 복음을 설명해 주는 쪽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이전에 교회를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복음의 가장 기초적인 첫 번째 원리를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지으셨고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심판하실 것이고 그래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 복음에 관한 내용이 잘 받아들여지면 ‘교회초청’으로 나가면 됩니다. 만약 그 복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후일을 기약해야 하겠지요. 하나님이 사랑하신다고 해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사실은 너무나 멀리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를 따라가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나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새 예전의 그 사람이 가까이 나아와 있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만약 그가 교회의 경험이 있었다면, 그 다음질문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지 않게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여기에 대해서 예라고 대답하고 특별한 이유를 말해준다면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고, 그렇지 않다면 그 수준에 맞는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관한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죽으셨고 그래서 모든 이유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살아나셨고 그 능력을 의지할 때 다시 교회에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이전에 교회를 경험해보았지만 지금은 신앙을 갖지 않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그 수준에 맞는 복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교회로 초청해주시고 그렇지 않다면 역시 다음 기회로 넘겨야 합니다.

만약 그가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 내용에 대해서 들어주시고 그 다음 질문을 할 준비를 합니다. 다음 질문은 그 자신의 감정상태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이유 때문에 교회에 대해 어떤 안좋은 감정이 생기셨나요?’
여기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기에서 그 수준에 맞는 복음을 전해줍니다. 바로 성령님에 대한 복음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켜주십니다. 성령을 통해서만이 복음은 감정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감정이 없다고 할 때에 그것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랬다면 그보다 더 아랫 단계에서 그쳤을 것입니다. 그 상태에 맞는 복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감정을 질문하게 되었다면 안좋은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에 맞는 복음,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게 됩니다.
‘성령님은 당신을 위해서 은사를 주십니다.’
‘성령님은 당신이 온전한 믿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러한 복음이 전도대상자에게 이전에 경험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게 해줍니다. 그것은 성령의 손길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손길을 기억할 때 다시 한번 감정을 극복하게 도와주셨던 성령의 크신 은혜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그 복음이 잘 전달되면 ‘교회초청’을 합니다.

만약 감정이 있었다고 대답한다면 그 다음 질문을 해 주십시오. 그것은 마지막 삶의 상태인 ‘욕구’에 관한 것입니다. 욕구에 대해서 질문할 때 하게 되는 말은 이런 것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어떤 원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그럴 때 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교회에 대해서 서러웠던 것, 안좋았던 것, 바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들은 그런 원함이 있었지만 그것이 들어지지 않자 교회를 떠나왔던 것입니다. 그런 욕구가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복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중요한 책임을 맡았고 그것을 잘 감당할 때 놀라운 상급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 복음인가 하면 이것은 우리 자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그 소망이 무엇인지,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시는 놀라운 가능성이 됩니다. 복음에는 우리 자신의 놀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앞으로 쓰여질 것입니다. 그 주인공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은 자들에게는 이러한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보상이 필요합니다. 다만 그 보상은 세속적인 방식이 아니라 가장 순수하고 신실한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복음의 길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면 ‘교회초청’을 하게 됩니다.

혹시 그 욕구에 대해서 말을 하던 혹은 말을 하지 않던 모든 경우가 다 욕구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일단 욕구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되었으면 그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하든지 항상 성도의 책임과 상급에 대한 복음의 내용을 전해주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불신자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로 초청하게 되었다면 그 이후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시고 그가 전도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도의 세 번째 측면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전도자와 전도대상자로 연결된 전도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십니다. 전도에 대한 생각은 하나님을 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도자를 전도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전도대상자를 전도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15절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그분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에 대한 설명과 그분에 대한 소개와 그분의 몸으로 초청함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서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 세가지가 일치하게 되었을 때에 전도의 열매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거나 우리가 사람들에게 나아가지 않는다면 전도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 측면을 다 고려해서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전도는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도의 일군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하는 가장 궁극적인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그 전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붙들고 사람을 붙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온전한 계명을 성취하게 됩니다. 이 전도를 외면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전도에 마음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전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영광과 능력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세상의 모든 헛된 것이 사라지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이 일에 더욱 함께 연합하여 애쓰고 수고함으로 바나바와 바울 같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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