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미움] 5신 1; 40-44 말씀을 따르지 못했을 때 할 일은 무엇인가Loading the player...
5신 1; 40-44 말씀을 따르지 못했을 때 할 일은 무엇인가_1
2020. 11. 15. 주. 주일오전. 추수감사절
*개요: 신명기에 나타난 아들의 소원, 31미움, 6통찰해석, 55동행
[신]1:40 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신]1:41 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무기를 가지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신]1:4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신]1:43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신]1:44 그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에게 마주 나와 벌 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이른지라
신명기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듭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일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다음에 해야 하는 일은 불순종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지 못했고 순종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일들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에 해야할 일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뜻입니다. 그러한 뜻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그 사랑 속에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번 주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동행하심을 깨닫습니다. 감사는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에나 회개하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회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올해의 추수감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감사한 일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제목을 찾고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의 처지와 형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처음의 기대와 원함에 비하면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연결되어서 그 은혜의 기쁨과 감사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추수감사의 의미를 신명기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그러한 은혜와 깨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셨던 이러한 깨달음의 단계를 보게 됩니다. “[신]1:40 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신]1:41 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무기를 가지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모세와 아론을 죽이고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고 모세와 아론을 보호하셨으며 백성들에게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광야로 돌아가서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 조금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시 광야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행한 행동은 다시 가나안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경솔하게 가나안 민족들을 향해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들어가라고 할 때는 못 들어가겠다고 하더니 막상 들어가지 말라고 하니까 이제는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입니다. 들어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그들은 계속해서 불순종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할 때 생기는 커다란 오해입니다. 들어가라고 할 때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들어가라고 할 때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하나님은 가나안에 혼자 들어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광야로 그들과 함께 다시 들어가십니다. 다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에게 베푸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십니다. 그들을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하나님의 심판하심도 나타나는 그 어떤 결과도 하나님 안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열심히 하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해야지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얻지 못한 그 어떤 좋은 결과에 대해서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믿음없음과 어리석음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시면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선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계속되는 불순종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가나안에서 자신들의 원함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떠날 때 결국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신]1:43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신]1:44 그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에게 마주 나와 벌 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이른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갔을 때 그곳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벌 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일 산에서 호르마까지 도망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공격당하고 피신하고 하면서 그들은 커다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죽거나 다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황급히 도망가면서 많은 손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생기게 된 이유는 들어가라는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들어가지 말라는 말씀에 역시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교통신호가 그렇습니다. 가라고 할 때에는 가야 하고 가지 말라고 할 때에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가라고 할 때 가지 않고 가지 말라고 할 때 가게 되면 결국은 대형사고가 납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그런 어리석은 일을 했을까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도 거부하고 광야로 돌아가는 심판도 거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가지 않고 돌이켜서 애굽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었습니다. 그 다음에 광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돌아서서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순종하기 싫은 미움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상 들어가지 말라고 하고 광야로 들어가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애굽에 갈 수 없음을 깨달았고 그럴 바에는 그냥 가나안이라도 가자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싫어하는 마음이 광야를 부인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도리어 커다란 패배를 당하고 물러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두려움과 미움의 마음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욕심이 가나안 앞에서 두려움을 만들었고 광야 앞에서 미움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삶에는 이러한 불순종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로 인한 어리석음과 불이익의 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생각한다면 그 조차도 다시 하나님을 의지할 기회의 시간이 됩니다. 순종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를 경험하면서 순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다음 번의 놀라운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이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모든 결과가 미래에 누릴 모든 축복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1:4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그들이 임의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은 그들 중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순종하여 광야로 들어갈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럴 때 그곳에서 대적들에게 패하지 않고 어려움 당하지 않는 놀라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도 여전히 그들은 당당하고 무적이며 항상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은혜의 삶을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추수 감사절을 보내며 우리의 삶을 생각해 봅시다. 억지로 좋은 점을 끄집어 낼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직시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이 속에서 하루 하루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것에 감사할 수 있다면 광야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자녀가 가나안에 들어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 때 우리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며 우리의 자녀가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삶 자체가 천국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추수 감사절에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생각하며 더욱 축복이나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동행하심 속에 살아갈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따르지 않았을 때 받는 심판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2. 그들은 그 심판을 거부하고 명령에 불순종하여 더 큰 고통을 겪게 되었다. 3. 반복된 불순종이 보여주는 악한 감정이 있는데 그 근원에는 욕심이 있다. 4. 말씀을 중시하는지 욕심을 중시하는지에 따라 성도의 위치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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