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순위] 4민 2; 46-53 레위인들이 성막을 지켜야 했던 이유Loading the player...
4민 2; 46-53 레위인들이 성막을 지켜야 했던 이유_1
2020. 10. 18. 주. 주일오전.
*개요: 민수기에 나타난 아들의 소원, 21순위, 1적용해석, 56충만
[민]1: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민]1:47 그러나 레위인은 그들의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민]1:48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1:49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민]1:50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민]1:51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민]1:52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민]1:53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민수기의 구성을 살펴보면 각 지파의 숫자를 계수할 때 매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타 다른 상식적인 계수함과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레위인을 싸움에 참여하는 자들로 계수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싸움에 나가기 위한 계수에서는 레위인들은 제외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 46절부터 나타납니다. “[민]1: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민]1:47 그러나 레위인은 그들의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민]1:48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1:49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이 말씀에 나오는 대로 레위 지파는 싸움을 위해서는 계수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의 싸울만한 자들의 총계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전혀 계수가 되지 않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민수기 3장에 보면 레위인의 인구조사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인구조사의 목적은 싸움에 나가기 위함이 아니라 성막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레위인을 싸움을 위한 이스라엘 민족의 전체 인원수에 합산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레위인은 성막을 지키는 자들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50절에 나오는 내용이었습니다. “[민]1:50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는 온전히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서 그리고 오늘날의 신앙생활에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한 지파가 온전히 성막을 지키는 지파가 되었다는 것의 의미는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고 관리하며 돌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른 성도들이 온전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레위인의 의미는 단순히 현재 교회를 돌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인의 역할과 존재의 의미는 성막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싸움을 싸우고 하나님의 뜻을 지키면서 살아가지만 그 모든 생활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만나시는 성막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이 전적으로 그 일을 맡아서 감당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성도들에게는 교회 중심의 삶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일주일에 한번 뿐의 현장 예배라고 하더라도 교회 중심의 삶이 중요합니다. 설사 그것이 일주일에 한번 뿐의 온라인 예배라고 하더라도 역시 그러한 삶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레위지파의 역할과 존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레위지파가 성막을 맡았고 성막을 지키는 일을 하였는데 그들의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민]1:50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민]1:51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민]1:52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민]1:53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그들이 행해야 하는 일은 성막과 기구를 이동할 때마다 운반하고 봉사하며 그 주변에 진을 치고 거주해야 했습니다. 또한 제사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진 외부인이 성막에 침범하는 것을 막아야 했고 그들의 생활 속에서 모든 접근으로부터 성막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들이 바로 레위인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레위인들의 역할과 사명을 생각해 보면 성막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서 성막은 항상 지켜져야만 하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레위인이 살았고 그 레위인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과 함께 존재하고 성막과 함께 발전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성막은 단순한 장막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그들 자신의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킬 때에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고 신앙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만나게 됩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만나 주십니다. 그러니 교회를 제외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제외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의 형태는 가운데 성막이 있고 그 주변으로 펼쳐지는데 성도에게 교회의 삶이 없다는 것은 성막 주변에 산다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수준은 교회 가까이 있느냐 아니면 교회 멀리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대도시에 사는 것과 시골에 사는 것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여러 종류의 편의시설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대도시에는 가까운 거리에 많은 편의시설이 있습니다. 의료, 행정, 생활, 문화에 필요한 여러 시설이 존재합니다. 쉽게 그러한 시설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멀리 가야만 그런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편의시설을 가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그만큼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 곳이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교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거리나 시간의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에 대한 심정적인 거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에나 있지만 그 은혜를 깨닫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교회 중심의 생활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합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약속을 살펴보십시오. “[마]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구하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찾으면 찾을 수 있게 하시고 두드리면 열리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교회로 나아오게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고 그 응답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구한 것을 받고 찾고자 하는 것을 찾고 두드리는 것이 열리는 삶은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오늘날 교회는 바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저주도 피할 수 있습니다. 레위인의 하나의 역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53절을 보십시오. “[민]1:53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레위인이 증거의 장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하는 역할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성막에 다른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진실한 목적은 성막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다가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레위기에서 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사 이외의 목적으로 성막에 다가가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임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소홀히 여긴다는 의미이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것이 있고 그것을 미리 알려주었는데 그 내용을 소홀하게 생각해서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계셨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진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소홀히 여기지 않을 때 너무나 귀한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내가 그렇게 살 때에 나의 가족도 그렇게 살게 할 수 있습니다. 나만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이 신앙생활할 것이기 때문에 교회를 중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세계는 자신의 노력한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세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도 잘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세계가 평안하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만약 현재 이 세계만 생각하지 않고 다가올 다음 세계까지도 생각한다면 하나님께 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음 세계로 나아가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그 다음 세계에서의 의미는 전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들의 존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하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그것은 레위인들이 성막을 지키듯이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이 놀랍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럴 때 가나안으로 온전히 나아갈 수 있었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막이 없다면 가나안을 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없다면 천국도 볼 수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섬기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교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교회를 통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섬김으로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는 귀한 마음에 복을 더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중시했을 때 축복된 삶을 살았음을 기억하고 더욱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며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레위인은 오직 성막만을 지키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성막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2. 성막이 중요한 이유는 성막을 통해 축복을 받고 진노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3. 교회 중심의 생활이 우리의 삶을 축복을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 4.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자.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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