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동행] 42눅 7; 11-17 하나님께서 어버이를 돌보심Loading the player... [오디오듣기] [크게보기]
42눅 7; 11-17 하나님께서 어버이를 돌보심_1
2020. 5. 10. 주. 주일오전.
*개요: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 어버이주일, 55동행, 2관점, [눅]7: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눅]7: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눅]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눅]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눅]7: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눅]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눅]7: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백성을 잘 돌봐주시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한 이때에 하나님께서 어버이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 우리가 보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자식을 잃은 한 과부를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남편을 잃은 아내를 긍휼히 여기신 것이고 또한 자식을 잃은 어머니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두고 떠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속에 나오는 사건을 듣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말씀을 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내용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어버이 주일에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어버이를 돌보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긍휼히 여기심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그 어버이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또한 우리도 어버이로서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에게 또 다시 하나님의 은혜가 전해지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오늘 말씀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그 속에 넘치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1, 12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눅]7: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눅]7: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나인이란 뜻은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 아름다움은 목초지라는 의미에서 나왔습니다. 아름답고 목초지대가 펼쳐진 지역을 의미하는 곳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제자와 많은 무리와 함께 동행하셔서 그 성으로 들어가실 때에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바로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죽은 사람은 안타깝게도 한 어머니의 독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과거에 남편을 잃었던 어머니는 지금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슬픔과 괴로움을 안타까워 하면서 많은 사람들도 함께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이 장례식은 한 어머니와 그 아들과 주변 사람들의 커다란 슬픔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슬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그러한 슬픔을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고 그 어머니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 슬픔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한 상황이 되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일찍 아버지를 잃었었습니다. 또한 자신도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일찍 떠날 것이었습니다. 그런 실제적인 이해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모습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눅]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그 어머니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그 어머니는 울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상황은 불쌍하고 처량하였습니다. 누가 봐도 안타까운 그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 어머니를 불쌍히 여기시고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위로와 격려가 아니었습니다. 성으로 들어가던 예수님께서 성에서 나오던 어머니와 그의 죽은 자와 그들과 함께 하던 사람들을 만나셔서 해주신 말씀은 단순히 지나가는 말로 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교차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시 들어가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밖으로 나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모든 나오던 일을 마치고 다시 성안으로 기쁨으로 들어가게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그 아들을 일으키시는 사건이었습니다. “[눅]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눅]7: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예수님은 그 관에 손을 대셨고 멘 자들이 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관 안에서는 죽었던 아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관뚜껑을 열어보니 그 아들이 일어나서 앉았고 말도 했습니다. 방금전에 죽었던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아들을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이 살리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살아난 아들을 어머니에게로 인도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놀라운 일 앞에서 가장 큰 고통과 슬픔이 가장 큰 기쁨과 감사로 바뀌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일을 행하신 것은 그 어머니와 그 아들과 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긍휼히 여기심으로 성에서 나오던 사람들이 다시 성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슬픔과 고통으로 나오던 사람들이 기쁨과 감사로 다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계속 이룰 수 있는 삶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아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은혜가 단지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을 보고 듣고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큰 선지자가 오셨음을 기뻐하였고 하나님께서 백성을 돌보심을 찬양하였습니다. “[눅]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아들과 딸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따라가며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 생기는 기쁜 일들입니다. 그러한 일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저 세상에 갔을 때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에 이러한 은혜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주신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면 왜 애초에 예수님은 그 어머니가 혼자 살게 하셨을까, 왜 그 아들이 죽게 하셨을까, 왜 그런 슬픔과 고통을 먼저 겪게 하셨을까에 의문을 갖고 다시 원래대로의 고통과 괴로움을 스스로 자취할 것입니다. 더욱 자세한 상황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왜 그 아들이 죽었는지 그것이 아들의 죄인지 어머니의 죄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죄였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또한 왜 하필 예수님이 들어가는 그 시점에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보여지는 하나의 은혜의 빛이 있다면 그 빛을 붙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빛이 비추어지지 않은 많은 어두움을 본다면 빛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 빛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더 큰 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어머니를 긍휼히 여기셨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셨다는 놀라운 빛을 발견한다면 그 빛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우리도 우리의 어머니를 아버지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것이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고 우리가 얼마나 커다란 죄인이었는지 간에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더욱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부모님을 위해서 간구하며 부모로서 우리의 자녀를 위해서 간구하며 예수님 안에서 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인성에서 이루어진 예수님과의 놀라운 만남은 나인성에서 있었던 슬픔과 고통이 아니라 나인성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긍휼과 사랑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느 멋진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그 멋진 곳에서 만약 처참하고 고통스럽고 강팍한 일들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그곳은 추악한 곳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 아름다운 곳이 계속 아름다운 곳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있는 곳에서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고 자녀를 사랑하며 돌보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친밀한 가정내의 관계 속에 바로 예수님이 계심을 기억하고 그 예수님을 의지하여 더욱 부모님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서 어버이 주일의 의미를 잘 실현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사랑을 함께 누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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