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인] 1창 2; 18-23 돕는 역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1창 2; 18-23 돕는 역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_1
2019. 8. 11. 주. 주일오전.
*개요: 개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2분석, 11개인-51은혜, 1오경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장소와 시간 속에서 진행됩니다. 그 자신이 어떤 시간에 어떤 장소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과 장소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잘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어지지 않은 시간과 장소를 환상처럼 꿈꾸면서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다음 세상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 세상은 이 세상과는 다른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된 구체적이면서도 더욱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구원과 상급과 영생이 존재하고 지옥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영벌과 사망이 존재합니다. 이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 중에는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과 시간에 대한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도 있지만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자신의 위치는 다른 누군가와 완전히 동일하지 않습니다. 보조적인 역할이기도 하고 돕는 위치이기도 하며 그러면서 높은 위치나 혹은 낮은 위치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자체가 하나의 부르심이고 자신의 삶에서 깨달아야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여기에는 남녀가 구별이 없습니다. 남자도 여자에게 돕는 위치일 수 있습니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돕는 역할일 수도 있고 해야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그 일에 익숙한 사람에게 돕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역할은 모든 다른 사람을 의식할 때 상대적으로 갖게 되는 자기 자신의 모습입니다.
바로 그런 모습을 우리는 아담 다음에 창조된 하와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아담의 모습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독립적이며 주도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위치에서의 인생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하와의 모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종속적이고 순응적이고 수동적이며 소극적인 위치에서의 인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와의 창조는 자기 보다 먼저 창조된 아담 다음에 창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와의 창조의 목적은 아담을 돕는 역할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하와로서의 일을 잘 감당할 때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가 생겨납니다. 자신이 먼저 태어난 것이 아니고 돕는 자로서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으면 그 자체로 더할 나위가 없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됩니다. 또한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성경 속에서 바로 그러한 하와에 대한 창조의 목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으셔서 아담을 위해서 돕는 배필을 지을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담의 창조 이후에 나타난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 창조를 하시고 그 다음에 둘째 날에 대한 창조계획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모든 창조계획 속에서 하루 하루 만들어 가신 것처럼 아담과 하와에 대한 창조계획도 이미 모든 것이 예비되어 있다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도울 배필을 맞이하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은 도움을 필요로 하게끔 창조되었고 하와는 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다시 아담과 같은 존재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신 뒤 아담과 다른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에게서 도움을 받게 하시고 하와는 아담에게 도움을 주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원리 속에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아담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고 다른 어떤 사람은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서로 도와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자들입니다. 또한 도움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 의미와 목적을 알면 우리가 도움을 주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각 사람이 도움을 주고 받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을 사는 인간이 됩니다. 그것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의 뜻하심을 거부하는 것이고 자신이 받아야 할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신이 주어야 할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무런 의미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인생인 내세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로 연결되기 위해서 돕는 인생은 그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을 알려주셨지만 하와에게는 구체적으로 그 일을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분명히 하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상이지만 아담과 같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시지 않았다는 것은 의아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하와가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거나 말할 수 없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와가 아담의 돕는 배필이었기 때문에 아담으로부터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듣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와는 내용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위치에 있었을 뿐입니다. 하와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담이었는데 아담은 정말 그 뜻을 잘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요? 그것이 19,20절에 나옵니다.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은 각종 들짐승과 각종 새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아담에게 이끌어 가셨을 때에 각 생물에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창조하신 각 생물들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이 부르는 이름은 모든 생물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충만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럴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공급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아니고서는 어떤 생물도 이름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 아담이었기 때문에 그가 왜 하와에게 이름을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아담이 그러한 지혜와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된 하와가 받은 이름은 가장 하나님의 뜻에 맞는 고귀한 이름이었습니다.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아담은 다른 여러 생물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실 때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와를 인도해 오셨을 때에 그녀를 가리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자’ ( אִישׁ ) 에게서 갈빗대를 취하셔서 여자를 만드신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여자’( אִשָּׁה ) 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용어의 차이는 아담이 처음으로 여자라는 존재를 자각했을 때에 ‘여자’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속에 담긴 의미는 하와가 자신의 존재를 여자로 자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이해하며 온전히 나타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자이기 때문에 남자를 돕고자 하면 그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고자 할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에는 창조의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와가 깨달아야 하는 하나님의 뜻은 단순히 여자만 깨달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하나님 안에서 깨닫고자 할 때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밑에 있는 사람이 위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나 나이 어린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일을 잘하는 사람이나 혹은 못하는 사람이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자신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그는 ‘뼈중의 뼈가 되고 살중의 살’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와가 이러한 의미를 오직 아담에게서 듣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때 그녀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고 순종하는 자가 되며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됩니다.
오늘날 인간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의 위치를 갖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아담같은 존재이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하와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하고 이름을 받아야 합니다. 도움을 주어야 하고 또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모든 생물들에 대해서 이름을 지어 주었던 것처럼 우리 자신에게 그러한 이름을 지어주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와에게 은혜와 사랑을 주셔서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름을 받고 그를 위해 돕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편이고 아내이며 아버지이고 어머니입니다. 형이자 동생이며 누나이자 언니입니다. 우리를 부르는 모든 이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살아갈 때에 비로소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방해하고 저해하며 망가뜨리게 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하와는 하나님의 뜻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뱀의 꾀임을 받아서 스스로를 높이려고 했고 그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아담은 자신이 이름을 지어주었던 하와를 다스리지 못하고 하와의 설득을 받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아담이나 하와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을 때 가장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십니다. 그 뜻을 깨달아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고자 할 때에 우리의 삶은 가장 빛납니다. 가장 생명이 있으며 가장 은혜로운 삶으로 변화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그 뜻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빛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빛되신 하나님과 함께 할 때 뿐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잘 깨닫고 그 계획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신 놀라운 일들을 온전히 이루며 살아가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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