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교육] 1창 6; 15-22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가르침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1창 6; 15-22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가르침_1
2019. 5. 5. 주. 주일오전.
*개요: 교육주제, 어린이날, 51계획, 84교육, 1적용 [창]6: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창]6: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창]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창]6: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창]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가정의 달 5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은 우리가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정을 어떻게 잘 세워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특히 자녀를 둔 장년세대에서는 자녀에 대한 간절한 바램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과 의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교육’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해주시는 말씀은 우리에게 큰 지혜와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이 지혜와 능력을 삶 속에 잘 활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홍수를 대비해서 노아에게 홍수를 피할 방주를 만들 것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잘 따랐던 노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노아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 교육을 받는 자였고 또한 그 가르침을 잘 전달하는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교육은 배우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배우지 않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며 배우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동시에 있을 때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가정의 달에 우리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15절입니다. “[창]6: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창]6: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고 어떤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그가 만들어야 하는 방주의 규모와 구조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노아는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방주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방주를 어떤 규모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배웠고 그 배움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 속에 새겨야 하는 방주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가정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각 사람이 따라야 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가르침을 토대로 하나님의 뜻을 배워나갈 때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의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족이 살 집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떠한 집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 집을 그렇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기준과 원칙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과 원칙에는 하나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집을 짓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에도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왜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으로 해야 하는지, 창을 위에서 한 규빗을 내야 하는지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무시하거나 혹은 그 가르침을 무시해 버리면 원래 이루어야 하는 목표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창]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창]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그렇게 방주를 짓는 이유는 홍수가 나서 천하의 모든 육체가 멸절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게 될 것인데 그 정도의 홍수를 견디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수준의 방주를 지어야만 했습니다.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세우셔서 그 속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보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방주를 만들어도 생명을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 속에서 방주를 세우고 난 다음에 그 안으로 들어가면 그 속에서 생명을 보호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보호받는 사람들이 바로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와 아들과 딸들과 함께 노아의 가정이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가정에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 가정이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고 그 약속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하나님은 이미 하신 약속대로 그 가정을 지켜주십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은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대의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홍수가 왔는데 그 홍수를 피할 방주를 만들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랐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약속을 무시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대홍수의 예언을 노아가 받았을 때 노아가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한 노아가 홍수를 대비해서 방주를 만들 때에 그렇게 방주를 만드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알고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홍수가 와도 오나보다 하고 방주를 지어도 방주를 짓나보다 하면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하면 결국 자신이 탈 수 있는 방주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약속은 오히려 더욱 명확해집니다. 방주에 들어가라고 했지 방주에 들어가지 않아도 살려주신다고 하신 것은 아님이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자들은 홍수가 온다는 것을 알고 방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평생의 삶 속에서 방주를 제작하는 데에 대한 노력과 애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얻은 것은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 시대에 많은 영향력 속에서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하는 것은 구원을 위한 교육입니다. 이것을 배우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면 배우지 않는 것과 가르치지 않는 것 때문에 우리 자신이 구원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교육이 바로 이것입니다. 각자가 노아처럼 자기 삶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을 붙들면서 간절하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하나님께 의지할 때만이 그 약속의 성취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배우고 그 다음에 가족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교육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방주를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를 배우고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가야 함을 가족들에게 가르칠 때에 가정에서 온전한 신앙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자신이 믿는 바를 가르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들은 할아버지 세대의 믿음을 손주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할머니들은 할머니 세대의 믿음을 손주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 이전부터 아버지로서 자녀들을 가르쳤고 어머니로서 자녀들을 가르쳤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헛된 믿음이기도 하고 옳지 않은 신앙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간절함과 열정은 자기 스스로 갖지고 있던 신앙에 근거하였습니다. 정한수 한 그릇을 떠놓고 자연만물에게 간구하며 제사 때 사용하는 지방을 정성스럽게 쓰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그 신앙이 잘못이었지만 그토록 간절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가정에서 이루고 있는 신앙교육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가장 진실하며 온전하고 확실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이전 헛된 우상을 섬기던 신앙보다 별볼일 없는 것으로 치우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이전보다 더욱 가치있고 확실한 이유는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이 세상에 사랑을 베푸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암수 한 쌍 씩의 생물들을 살리기 위해서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창]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창]6: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하나님은 노아가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펼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구원받는 가정이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가정의 목표가 단순히 자신들의 구원과 생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일들을 세상에 이루고 그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하는 일에 구원받는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한 가정이 너무나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노아의 가정으로 인해서 세상의 모든 혈육 있는 생물들이 암 수 한 쌍씩 보존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이렇게 성장시킵니다. 그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세상에 사랑과 은혜를 베풀게 하십니다. 그 가정이 오래 되어서 가문이 되면 그 가문으로 인해서 더욱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키며 봉사하고 희생하는 일들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놀라운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가정이 될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며 우리의 가족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알버트 윈쉽이라는 어떤 사람이 18세기에 살았던 맥스 죽스의 가문과 조나단 에드워드의 가문을 추적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어릴 때 한 지역에서 같이 살았던 친구지간이었습니다. ‘맥스 죽스’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결혼도 역시 무신론자와 했습니다. 그의 후손은 560명이었습니다. 150명이 범죄자였고, 100명이 술 주정뱅이였고, 1/3이 정신 병을 앓고, 범죄자 중 7명이 살인자였고, 301명이 거지였습니다. 절반 이상이 문맹자였습니다. 그 가계의 반 이상 여자들이 창녀였습니다. 한편 ‘조너던 에드워즈’는 하나님을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모신 헌신된 자였습니다. 그는 경건한 여자와 결혼해 1394명의 자손들을 두었습니다. 그 중 295명이 대학을 졸업했고 그들 가운데 13명이 대학 총장이었고, 65명이 교수였으며, 3명이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됐습니다. 3명은 주지사였고, 30명은 판사였으며, 102명은 변호사, 56명은 의사, 75명은 군대의 장교가 되었습니다. 100명은 유명한 선교사와 목사, 작가가 됐으며 한 명은 미국 재무부 감사관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미국의 부통령이 됐습니다. 누가 구원의 방주를 만들었고 누가 구원의 삶을 살았으며 누가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것은 그의 삶이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말씀하셨고 노아는 그것을 실천하였습니다. “[창]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세상을 사랑하면서 자신들의 양식을 저축하는 삶을 살았을 때에 그들은 홍수 이전에 이미 구원받는 자들이었습니다. 홍수는 그들의 구원받음을 나타내는 환경에 불과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라면 구원받은 자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그것이 우리의 먹을 것이 되고 입을 것이 됩니다.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서 더욱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지키며 다시 가르치는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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