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사랑] 66계 1; 1-8 예수님을 만나게 될 사람들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66계 1; 1-8 예수님을 만나게 될 사람들_1
2019. 4. 7. 주. 주일오전.
*개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결과, 51계획-61사랑, 1적용, 6서신서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계]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끝은 그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마치 오랫동안 한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서 모든 공부를 마쳤던 학생이 나중에 그 후원자를 만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은 우리의 본향이 됩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나그네와 같은 시간을 사는 것 뿐입니다. 세상의 삶이 끝나고 천국의 삶이 열릴 때 우리는 마침내 본향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은 지금은 믿고 있지 않다가 그때 가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얼마나 어색하고 불편하겠습니까?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예수님의 희생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갖는 것이고 사랑의 관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관계를 예수님은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예수님께서 죽음 이후에 그 사람을 심판에서 건져 구원해 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고 신뢰했기 때문에 그 깊은 관계 속에서 천국에 가는 것이지 믿는다는 것이 주문같은 것이라서 특별한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어집니다. 형식이 아닙니다. 행동이 아닙니다. 관계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예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려고 하지 마시고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관계가 없다면 관계가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최소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애를 써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서 관계가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말 엄청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서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에 아무런 준비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은 요한계시록의 시작은 바로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이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계시란 보여주신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내용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셨고 그 내용을 예수님의 종들에게 보이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어서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 내용을 예수님의 종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내용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의 관계가 있고 하나님의 종들 사이의 사랑의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천사와 요한에게도 전부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 속에서 그분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내용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도 그 사랑의 관계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 중의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게 하신 그 중요한 내용을 알게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할 때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쁨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듣고 잘 따라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그러면 어떤 때에는 학교가 끝나고 나면 아버지가 보내주시는 군인 아저씨를 따라서 새로 이사한 집에 가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저만 혼자 가는 것은 아니고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도 함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어떤 때에는 안내해주는 군인아저씨도 없이 아버지에게서 직접 주소를 받고 혼자 집을 찾아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럴 땐 기분이 묘했습니다. 장소는 완전히 바뀌었지만 가족들은 그대로 였습니다. 그리고 거기가 내가 살 집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것은 그런 느낌입니다. 장소만 바뀌었지 함께 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놀랍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인데 이전에 알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바로 그런 느낌으로 가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곳에 세상에서 알던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 자신이 지은 죄로 심판을 받기 위해서 따로 모여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 관계를 이 세상에서 맺었기 때문에 저 세상에서도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관계의 중요성은 다른 대상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애완동물도 그 주인이 구원을 받았느냐 못받았으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주인이 천국에 있으면 그 주인의 애완동물도 천국에서 만날 수 있지만 주인이 지옥에 가면 애완동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것은 그 관계 사이의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기능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수준의 높이를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어린이도 구원을 받고 노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려주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데 살아있을 때란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시간입니다. 그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예수님은 보여주셨습니다. 3절 보십시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수님과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한다는 것은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잘 할 수 있고 그것이 복이 됩니다. 주님을 만날 때 멋진 모습으로 만나야지 추한 모습으로 만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만날 때 멋진 모습이라는 것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종이 주인을 만날 때 그 충성스러움 속에서 주인을 만난다면 얼마나 멋진 모습이겠습니까? 종이 주인을 만날 때 자기를 한껏 치장한 모습이고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안한 모습이라면 너무나 추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말씀을 성도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사도 요한 자신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충성스러웠고 친밀했습니다. 또한 매우 친밀하니까 충성스러웠습니다. 이는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한 그도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그가 충성스러웠는지를 다음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문장의 주어절은 4절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입니다. 요한이 주어가 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럴 때 그는 무의미하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가 영광을 돌리고 있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이 말 속에 그가 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 이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그의 피로 죄에서 해방하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당시 죽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나라와 제사장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죽은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요한은 자신에게 나라와 제사장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살아있을 때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 앞에 나오는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이루신 일이었고 그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루어질 것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의 관계 속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사랑의 관계를 주님과 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는 이미 있는 것에 기초합니다. 이미 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그가 이미 보여준 모든 모습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만나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몇일 있어보면 이 사람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 맺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미래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거쳐서 미래가 이루어집니다. 과거와 현재에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미래에 나를 아프지 않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과거와 현재에 나를 기쁘게 한 사람은 미래에도 역시 나를 기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미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신 그분의 모든 사랑과 은혜는 우리가 죽은 다음에 우리를 어떻게 하실지를 보여줍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 관계를 모른다면 배워야 합니다. 잘못 알고 있다면 올바르게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드시 굳게 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던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살면서 재판장을 만나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저는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해자던 피해자던 원고건 피고건 재판정에서 재판장을 보게 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어쩌면 살면서 그 꿈은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죽으면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그것은 거부하는 것이고 그것을 거부하면 그 자체가 죄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한 사람의 영혼으로서 우리는 이 육체를 가지고 행한 일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가던 아니면 주님께서 우리에게로 오시던 간에 인간으로서 반드시 한번 만나게 되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일이 이루어집니다. “[계]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주님은 구름을 타신 영광스러운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각 사람의 눈이 직접 주님을 보게 됩니다. 드디어 볼 수 있습니다.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태양을 피해 눈을 돌릴 수 있지만 주님을 만날 때에는 눈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그때 자신이 그를 찌른 자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분을 보고 괴로워서 애곡하는 자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은 끝장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가 주님을 준비합니다.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이십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주님은 만나기 위해서 예비하고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평생을 걸려 준비한 사랑의 관계와 신앙의 관계가 있다면 우리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주님의 집에 기쁨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모든 사랑의 관계의 의미가 아름답게 나타나고 주님을 믿고 의지했던 것이 너무나 잘한 일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전에 계셨고 지금도 계신 그분을 주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주님과의 관계가 형성되겠고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앞으로 반드시 만나게 될 그 예수님을 기쁨으로 만날 준비를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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