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동행] 60벧전 1; 1-4 순종함과 구원을 얻도록 택하심을 받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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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벧전 1; 1-4 순종함과 구원을 얻도록 택하심을 받은 자들_1
2018. 12. 2. 주. 주일오전.
*개요: 그리스도의 은혜의 혜택, 55동행, 1적용, 6서신서 [벧전]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전]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성탄절이 있는 12월에 우리는 로마서부터 시작된 신약성경 속에서의 복음을 살펴본 이후로 올해의 마지막 신약성경으로 베드로전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각 권을 1장부터 끝장까지 다 살펴보지는 않았고 매번 1장을 중심으로 해서 4주간 살펴보고 다음 권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러면서 각 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있었고 살펴보지 못한 남은 부분은 다음에 다시 살펴볼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신약성경 중에서 서신서 부분을 쭉 살펴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이러한 성경말씀을 여러분이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와 함께 이 말씀을 나누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습니까? 모든 강의 최종 경로는 바다인 것처럼 복음에 대한 모든 설명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나아가려고 하는 모든 최종적인 설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살펴보는 우리의 올바른 방향성이자 목적지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살펴보면서 자기 자신이 최종 목적지가 됩니다. 신앙생활의 최종 목적지가 자기 자신이 되어버립니다. 자기 자신의 아집과 자기 자신의 독선과 자기 자신의 가치와 자기 자신의 기준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모든 성경에 대한 경험은 헛된 것이 됩니다. 또는 모든 경험이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공허하고 무익한 종교성이나 혹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불특정 다수의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인류애를 알게 되고 인간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면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애초에 모든 성경적인 활동의 목적이었는가 한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보여주었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다 길을 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자기 자신만이라도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의 목적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이 괴로움이든 즐거움이든 혼자이든 함께 가든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목적지가 예수님일 때만이 비로소 모든 신앙생활과 성경묵상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굳건한 확신을 가지고 베드로전서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해 보려고 합니다. 성탄절에 베드로전서를 살펴보는 것이 다소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전서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느냐 한다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전서는 사도 바울의 서신서 이후 주후 65년 혹은 66년 경 베드로 사도가 죽기 전(67년)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에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바로 소망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소망에 관한 서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소망을 깨닫게 하는 서신서가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소망의 시작은 성도들이 누구인가로부터 시작됩니다. 베드로사도는 성도들은 어떠한 자이며 어떤 내용의 소망을 갖는 자들인가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함께 봅니다. “[벧전]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전서의 서두는 누구에게 편지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이 이 소망을 갖는 자들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된 성도들에게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인해서 순종함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해서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성도들은 하나님, 성령님의 은혜를 통해서 예수님의 은혜로 나아가게 된 자들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성도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각자의 위치에서 흩어져 있으면서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함과 그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해서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이러한 택하심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결국에 얻는 것은 순종함과 피 뿌림을 통해서 얻는 구원입니다. 여기서 ‘뿌림’은 영어로 ‘sprinkling 뿌려짐’ 이고 의미는 ‘purification 정결, 정화’ 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서 그의 피로 우리는 정결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그분 앞에서 은혜와 평강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축복해 주었던 것은 그분에게 순종하고 그의 피로 깨끗함을 얻는 성도들이 누리는 은혜와 평강이었습니다.
단순히 인사말에 불과해 보였던 1절, 2절의 내용 속에 이렇듯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세속적인 영향 속에 있는지를 다시 깨닫습니다. 그 속에서 힘겹게 살다가 12월에 만나는 성탄절은 1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붙들고 그 복음 안에서 살고자 애쓰던 자들에게는 마치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 같은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은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은 항상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셨고 또한 우리를 정결케 하셨습니다. 말로만 그렇게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삶으로도 실천과 행동으로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받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은 오직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려고 할 때 얻게 됩니다. 주님께 순종하면서 그의 피로 정결함을 얻으면서 살아왔던 삶이라면 12월에 만나는 그리스도께 대한 묵상은 너무나 큰 소망이 되고 능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지난 11개월의 삶이 그리스도와 별로 상관이 없었다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끝까지 별로 흥미 없는 주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탄절의 예수님과 함께 12월의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하는 인물은 산타클로스입니다. 산타클로스는 선물을 가져다 주고 예수님은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누구의 무엇을 더 선호하십니까? 사실 이럴 때 예수님과 산타클로스가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져다 주시는 것과 산타클로스가 가져다 주는 것이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더 좋습니까, 아니면 물질적인 선물이 더 좋습니까?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그보다 조금 더 관심을 끄는 주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수님께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지금 당장의 은혜와 평강은 눈앞의 선물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와 평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면 다릅니다. 이를 위해서 3,4절을 읽어봅니다. “[벧전]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를 잘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거듭나서 그리스로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소망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쇠하지도 않는 유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간직하셨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평강이 있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산타의 선물은 단지 이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을 뿐이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유업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니 이 둘은 사실 알고 보면 비교할 수 없이 은혜와 평강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이제 그 은혜와 평강을 선택할 때 그 은혜와 평강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그것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주시는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유업입니다. 그런데 그 유업은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유업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이 세상에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늘로 올라갈 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해외에 큰 집이 있고 많은 재산이 있다고 해 보십시오. 아무리 좋은 집과 많은 재산이 있어도 그 집과 재산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나라에 가야만 합니다. 그 나라의 것을 이 나라에 가지고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그 나라를 사모하고 그 나라로 나아가려고 해야만 합니다. 또한 그렇게 그 나라로 나아가게 될 때를 기다리면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아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신 이유는 그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 때문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는 죄값이 다 치러졌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의로운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의 핵심이십니다. 그분의 부활하심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서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릴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이 모든 일을 이루셨다는 것은 동시에 이것이 정말 우리에게 중요하고 획기적이며 필수적인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소홀히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신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그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12월에 바로 그 예수님을 묵상하며 기억하며 찬양합니다. 그의 긍휼대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사도 베드로처럼 찬양이 절로 흘러 넘칠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심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순종함을 통해서 구원을 얻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일에 우리는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무에게서나 찬양을 받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생일잔치에는 아무나 초대받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자들이 그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아서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그 생일잔치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높은 곳에서 그 나라를 사모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바로 그렇게 주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12월에 우리를 위해서 성탄절이나 예수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성탄절을 위해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임을 깨달아서 예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그 은혜와 평강으로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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