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충만] 53살후 1; 3-8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된다는 것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53살후 1; 3-8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된다는 것_1
2018. 7. 1. 주. 주일오전. 맥추절
*개요: 그리스도인의 미래에 대한 이해, 56충만, 3분석, 6서신서, [살후]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살후]1: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살후]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살후]1: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살후]1: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살후]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7월이 시작되는 첫 날에 우리는 맥추절 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6개월을 생각해 보면 그동안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근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보여주시고 능력으로 도우시고 희생과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고 동행하시고 충만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반년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할 수 있을 때 앞으로의 삶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삶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데 재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림에 이르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때까지의 삶에 대해서 감사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이미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할 때 앞으로의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로서 항상 지금까지 있었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그럴 때 미래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하기 위해서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지난 6개월에 대해서 감사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최소한 우리가 그때까지의 삶에 대해서 감사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재림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지금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에서 어떤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신앙적인 것에 대한 감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감사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재림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적인 감사가 더 큰 감사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바로 그런 의미가 나타납니다. 진정한 감사는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신 것에 대한 감사보다도 신앙적인 발전을 이루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살후]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살후]1: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데살로니가 후서는 데살로니가 전서가 쓰여진 지 몇 달 후 데살로니가 교회에 재림에 대해서 오해하는 자들이 생겨나서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도 바울에 의해서 다시 쓰여진 서신입니다. 그들 중에는 재림이 가까웠다고 해서 동요하거나 또는 재림만 생각하다가 자기 일을 등한시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재림에 대한 오해를 풀고 올바른 재림 신앙의 삶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서신서가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내용이 단순히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 사이에서만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서 우리가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갈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16,17,18절의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그 후에 우리는 바로 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을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를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이 항상 히죽거리면서 다니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밥도 먹지 말고 잠도 자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인 희노애락을 갖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며 과장되며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합리적이며 이성적이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사도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함으로 인해서 감사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인내와 믿음을 자랑하였습니다. 바로 3절에 나오는 대로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가 감사함의 이유였습니다. 믿음이 자라면 하나님을 더욱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면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가는 시간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교회에 더욱 마음을 쏟게 되고 그 교회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반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돈이 많아지고 여유가 많아지고 휴가가 많아지고 놀 거리가 많아지니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 굳이 노아의 방주를 붙들고 그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있습니까? 나가서 놀고 쉬면 그뿐 일 텐데요. 세상 일로 바빠서 교회에 나오지 못했다는 말은 참으로 안타깝게 들립니다. 그는 세상 일에 바빠서 구원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갖게 되는 것을 감사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평안하지 못하고 동요하고 힘든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서 기도하게 되고 간구하게 되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것이 기쁨의 이유가 되고 기도의 이유가 되며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자랑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해서 다른 여러 교회에서 자랑했던 것은 그들의 인내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박해와 환난 가운데에서도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자랑의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반년을 보내면서 우리의 감사와 자랑의 이유는 우리가 당면한 여러 가지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인내와 믿음입니다. 교회가 건물이 화려하고 교회에 재정이 풍성하고 교회가 유명하여 늘 새로운 사람들이 넘쳐난다면 그 속에서 오히려 자랑하는 것은 건물이나 재정이나 사람들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우리가 현재 부족한 환경과 열악한 재정과 제한된 인력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인내하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믿으며 나아가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장 큰 자랑의 이유를 갖게 됩니다. 각각의 성도 여러분 자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박해와 환란 속에서 인내와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여러 성도들 속에서 자랑할 수 있게 합니다. 세상에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여러 성도들 속에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행했느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반대로 세상으로 나아갈 때에는 얼마나 자기의 뜻을 잘 펼쳤느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잘 하면 세상에서는 환영을 받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잘 행했을 때 칭찬을 받습니다. 세상에서 각 사람은 존경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은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 심판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가져야 했던 인내와 믿음은 모두 하나님께 자랑이 되고 칭찬의 요소가 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재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재림을 오해하던 자들에게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자 하였습니다. “[살후]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닮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가 됩니다.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닮은 자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또한 그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난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르기 위한 모든 노력이 바로 고난의 내용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이 서울대를 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학교성적이 좋아야 하고 그 다음에 수능성적이 좋아야 합니다. 그 두 가지가 있으면 서울대를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하버드를 가려고 한다면 해야 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학교성적이 좋아야 하고 TOEFL 점수가 좋아야 하며 SAT 점수가 좋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과외활동을 해야 하고 특수재능이 있어야 하며 리더쉽 자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 뒤에 에세이, 추천서, 인터뷰 등이 보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버드를 갈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바로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할 때에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따라 나가는 가운데 경험하는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예수님을 경험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커져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인 예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게 되는 기준인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만 이야기 하지 않고 이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되는 기준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의 의미를 잘 실현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들어가기만 하면 끝이 아닙니다. 들어가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행하게 되는 아들의 일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일은 이 세상의 일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령하며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 일을 예수님도 친히 이루고 계십니다.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지만 예수님은 다만 보좌에 앉아 계시기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친히 이루신 구원의 남은 일들을 이루고 계십니다.
천국에서는 바로 이러한 구원의 일들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그 구원의 일들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닮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항상 인간의 자유 의지 속에 주어지는 선택의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었고 앞으로도 행하실 일입니다. 그런 일들이 바로 이 세상에서의 신앙생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천국의 모형이요 그림자인 교회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재림을 통해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고 그림자요 모형이었던 모든 교회의 일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로 확장되는지 보여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유익합니다. 그것을 따르고자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간절히 얻고자 하는 그것이 사실은 현재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 현세의 교회생활과 신앙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벌써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다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고 중요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사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의롭게 사는 자는 억울하게 고생하는 것이거나 악하게 사는 자는 무한한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의로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모든 악함에 대해서 반드시 공의로 심판해 주십니다. “[살후]1: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살후]1: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살후]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일은 결코 헛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이 구원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결코 무익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환란과 박해와 고난과 어려움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들이 만들었던 환란과 박해와 고난과 어려움으로 갚으십니다. 반면 그 속에서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던 자들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에게 그 수고에 대한 상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그 악행에 대한 벌을 내리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시는 재림은 그 모든 수고와 인내에 대한 상이 나타나는 시간이며 그 모든 박해와 핍박에 대한 형벌이 나타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재림의 일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우리에게 펼쳐지는 것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고 그 복음에 순종하고 복종하기 위해서 인내와 믿음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지금도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모형과 그림자가 펼쳐집니다. 지난 반년 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일은 바로 이러한 인내와 믿음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을 의지하고 따랐을 때에 우리는 이미 재림 시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상급과 또한 주실 안식을 예비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가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졌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은혜를 계속 붙들고 나아가서 올해 모든 상황과 형편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실 놀라운 일들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룬 믿음과 사랑의 풍성함을 저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인내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놀라운 안식을 경험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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