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인내] 1창 26; 19-25 이삭이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
1창 26;19-25 이삭이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_1
2017.8. 27. 주. 주일오전.
*개요: 인내의 의미, 4극본, 1오경, 55동행 [창]26:19 이삭의 종들이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창]26:20 그랄 목자들이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창]26:21 또 다른 우물을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창]26:22 이삭이 거기서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창]26:23 이삭이 거기서부터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창]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26:25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인내는 우리 삶속에 나타나는 귀한 성령의 열매입니다. 믿음의여부는 우리의 신분을 결정하지만 인내의 여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인내가 없는 삶은 세상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인내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나타낼 수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내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내가 필요한 상황은 다양하고 인내가 적용될 수 있는 환경도 다양합니다. 개인적인 삶속에서 인내는 너무나 필요합니다. 말을 함부로 하고 싶을때 그것을 막는 것이 인내입니다.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 그것을 붙드는 것이 인내입니다. 자신의 행동이나 모습 속에서 무엇인가 좋지 않은 모습이 있을 때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가정에서 인내는 너무나 요긴한 성령의 열매입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아들에게 딸에게 인내가 필요합니다. 가정 내에서 각 사람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참고 견딜 때에 가정의 화평이 지켜지게 됩니다. 교회에서 필요한 것도 인내입니다. 교회는 자아실현을하는 곳이 아니고 인간관계를 쌓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어가기 위해서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목회자에게 직분자에게 그리고 평신도에게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인내는 요긴한 열매로 나타납니다.참지 못할 때에 그의 삶은 가인이 아벨을 들판에서 죽이는 것과 같은 일로 나타나지만 참을 수 있을 때에 우리의 삶은 성령의 열매로가득하게 됩니다.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주변이 전부 선악과 투성이지만 참을 수 있을 때 주변은전부 생명나무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렇게 인내를 행해 나갈 때 우리의 삶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삶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인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신앙주제와 수없이 많은 삶의 주제 속에서 왜 바로 이러한 인내를 선택했는가 하면 바로 그것이 더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중요한 것 보다는 원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 나를 만족시키는 이야기, 나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와닿을 수 있습니다. 서점에가서 책을 고를 때에도 나에게 필요한 책보다는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책을 사게 됩니다. 그와 같이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도 자신이 선택하려고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선택을 뛰어넘는 것은 나의 필요를 위해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에게무엇이 있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하시고 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바로 이러한 인내의 열매에대해서 우리가 생각할 때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으로서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면서도 인내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래서그는 100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더딤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나아가 마침내 그 약속의 성취함을받았습니다. 그 약속의 성취로서 나타난 사람이 바로 그 아들 이삭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물려받았고 그도 역시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내의 모습이 아버지와 그 아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에게인내가 있으면 그 자녀인 자신이 부모님을 보면서 인내의 모습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신이인내가 있으면 그 모습을 통해서 자녀들이 인내의 모습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내의 열매는 대를이어 내려가는 좋은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도록 사모하고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뼈가 자라는 것 같고 인내는 살이 붙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과함께 인내도 더욱 온전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에게서 어떻게 인내의 모습이 나타나는가를 오늘 말씀 속에서 발견할 수있습니다. 19,20절입니다. “[창]26: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창]26: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파서 샘을 얻었는데 그랄의 목자들이 그 물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애초에 이삭은 아비멜렉에게서나와서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팠던 골짜기가 그랄 골짜기였는데그 지역에는 이미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던 목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권이 땅 뿐만아니라 그 속에 있는 물에까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종들이 애써 판 우물을 자신의 것이라고다투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고 했습니다. 그 의미는 ‘논쟁, 다툼(contention, strife)’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다툼 속에서이삭은 그들과 씨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속에서 인내하였습니다. 다툼을중단하는 방법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참는 것입니다.참을 때에 다툼이 중단되었습니다.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고 이기려고 하면 더욱 다툼이 가중되었겠지만이삭이 그 모든 요구와 주장에 참았을 때에 더 이상 다툼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이삭은 자리를옮겨 다른 곳에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 다시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창]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여전히 그랄 지역에서 또다른 우물을 팠을 때 그랄의 목자들은 또 다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때 이삭은 그 우물의이름을 ‘싯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비난, 고발(accusation)’이었습니다. 이삭은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였습니다. 그는 다툼과 논쟁도 참았고 심지어는 비난과 고발도 참았습니다. 자신에게대한 모든 악의적인 평가와 공격을 견뎌내었습니다. ‘에섹’과‘싯나’는 바로 이삭이 참았던 것들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현대에도 이러한 일들은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 성취하고 이루게 될 때 다시 말해서 땅을 파서 우물을 얻게 되었을때에 누군가의 다툼과 논쟁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이루고 어떤 소득과 결실을 거두었을때에 그것을 배아파하고 시기하는 그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논쟁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논쟁거리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결실을 요구하기도 할 것입니다. 마치 이삭에게서 그랄의 목자들이 우물을 뺏듯이 여러분에게서 여러분의 결실을 뺏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했던 과제에 대해서 여러분이 이루었던 성과에 대해서 여러분이 거두었던 소산에 대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내놓으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성경은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을 참으라고 합니다. 그것을 견뎌내라고 합니다. 달라는 대로 주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지 말라고 합니다. 이삭의모습이 바로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해도 당장은별 다른 소용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삭도 한번 양보했지만 다음 번에도 또 다시 자신이 판 우물을 요구받았습니다. 이번에는 논쟁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에는 비난과 고소와 고발이이어졌습니다. 더욱 강렬하고 더욱 혹독하게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마냥 참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있습니다. 적절히 반격을 하고 말도 안되는요구사항에 대해서 거부해야 되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인내는 이삭의 특별함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그가 왜 그렇게 인내하였는가입니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인내를 계속 이루어나갔을까요? 그 이유가 22절에 나옵니다. “[창]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세 번째 그는 자리를 옮겨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자 더이상 그랄의 목자들이 시비를 걸거나 논쟁을 일으키거나 다투거나 하지않았습니다. 그때 이삭은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였습니다. 의미는 ‘넓은곳(wide spaces)’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말속에 그의 믿음과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위해서 행하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가 그 때까지 꾸준히 참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 있고 그 일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삭은 참고 또 참았으며 마침내 넓은 곳에 이르게 되었을 때 더이상 다투지않고 더 이상 비난받지도 않는 온전한 번성함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제한된 파이를나누는 것과 같은 삶입니다. 그래서 항상 적은 재화와 적은 용역과 적은 산출물을 가지고 그것을 일정한사람들 사이에서 투쟁하며 싸우며 쟁취하며 살아가는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생각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공급하시는 하나님, 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한된파이가 아니라 더 많은 파이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애초에 그 모든 것을 만드시고 창조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오직 있는 것에만 매달리고 집착하고 그것을 뺏고 취하고 얻고자 할 때에는 자연히 더 많이 주실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도 사라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경쟁 속에서 차라리 포기하고 좌절하고 내려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운동장에서달리는 자가 많아도 상받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고 늘 성취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실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는 논리 속에서 그러면 자신은 성취하고달리는 사람이기 보다는 상실되고 걷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소수의 사람에게만 상을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지 않을 것 아니냐는 생각은 승리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도 일부의 사람들의 기도만들어주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고 하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자들에게 충분한 상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파이 자체를 크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에게 각자가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질 때도 있고 잃어버릴 때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채우시고 갚으실 것을 믿고 나아갈 때에 비로소 넓은 땅, 르호봇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이삭에게 이러한 분명한신앙과 확실한 인내의 마음이 이루어지게 된 계기는 이미 오래 전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번제로 바치고자 하였던 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하셨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이삭을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그 일을 수행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것을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 온전한 믿음을 보고자 하셨던 것이지 정말 이삭을 죽이기를 원하신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창]22:10 손을 내밀어 칼을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창]22:11 여호와의 사자가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22:12 사자가 이르시되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믿음과 인내를 그의 순종과 헌신을 통해서 알게 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는 것을 믿고 따랐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고 그 모든 힘든 시간들을 인내함으로 잘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이삭은 바로 이 모든 아브라함의 믿음과 인내에 동참한 자입니다. 그자신도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에 저항하지 않고 참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이하나님의 뜻 안에서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을 때에 놀라운 일이 나타났습니다. “[창]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22:14 아브라함이 그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바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만난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의미란 ‘여호와께서 보실 것이다, 나타나게 하실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의미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가 된 것입니다. 이삭은바로 이러한 여호와 이레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 보게 하실 것이고 바라보실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자신의 삶속에서 그 모든 인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내가 어려운 시대에살고 있습니다. 당장 얻어야 하고 당장 지켜야 하며 당장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사람들은 그럴 때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불이익과 손해와 부당함이 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며 잠시 기다리면오히려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금의 손해와 불이익을 좀 견디고 폭발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바라보면서 양보와 인내의 모습을 가질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삭도 그랬습니다. 그러한 이삭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창]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은 단지 아브라함의아들이라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을 따르는 자였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을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기뻐할 때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우물을 가지고 싸우지 않는 것을 하나님은기뻐하셨고 모든 논쟁과 다툼과 비난과 고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더 넓은 곳으로 갚아주셨습니다. 우리의삶속에 이러한 복된 삶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열매가우리 삶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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