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평] 43요 6; 16-21 예수님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심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
43요 6;16-21 예수님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심_1
2017.7. 9. 주. 주일오전
*개요: 화평주제, 5서신서, 1적용, 55동행-63화평 [요]6:16 저물매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요]6:17 배를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요]6:18 큰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요]6:19 제자들이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요]6:20 이르시되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요]6:21 이에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우리는 삶속에서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내적인이유로 두려워할 때가 있고 외적인 이유로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의 일들로 두려워할 때가 있고미래의 일들로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사소한 일로 두려워할 때가 있고 심각한 일로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선한 일로 인해서 두려워할 때가 있고 악한 일로 인해서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두려움으로 인해서 우리는 몸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소리를지르거나 혹은 기절하게 됩니다. 숨이 가쁘게 되거나 움직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견디지 못하고 도망하게 되거나 오히려 도망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게 되기도 합니다. 땀을 비오듯 흘리거나 사시나무 떨듯이 떨기도 합니다. 그런 두려움속에서 인간은 최대의 공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모든 반응들은 전부 두려움으로 인해서 생기는 증상들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두려움의 반대가 있습니다. 그것은화평함입니다. 마음이 느긋하고 평안합니다. 걱정이 없고 근심이없습니다. 두려워하지도 않고 담대합니다. 몸에 아무런 변화가없습니다. 마음에는 더욱 든든함이 생깁니다. 그것은 단순히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넘치도록 평안한 것입니다. 두려움의반대가 평안함이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평안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안하다는 것은 담대하다는 것입니다. 더욱 넘쳐나는 어떤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속에서 깨달아야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러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은 익숙하지만 화평함은익숙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할 때는 많이 있지만 화평할 때는 많지 않습니다. 분명 예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화평할 수 있지만 화평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대한 의지함보다 두려움의대상이 더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지함이 두려움의 대상보다 더 클 때 우리는 비로소 화평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화평하게 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다 두려움에 더 익숙하지 화평함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에는 두려운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들 현기증을 느낍니다. 어지럽고 무섭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매우 당연한 반응입니다.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을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일찍단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려움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며 위험으로부터 피하기위한 기본적인 보호본능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두려움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만 그러한두려움을 이겨내는 믿음이 있습니다. 나 혼자로서는 연약하고 미약하기 때문에 두려워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은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함을 깨달을 때에는 하나님의 강하심과 능하심을 따르는 것이기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 때문에 두려움을 이겨내는 믿음은 이세상에서 화평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함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온전한 화평함 속에서 우리는 온전하게 주님을 의지하게됩니다. 우리는 태어난 대로의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살 것이 아니라 새롭게 얻은 믿음에 따른 화평을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그러한 화평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또한 진심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화평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열매를 자기 자신이 온전히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화평은 하나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를 통해서 얻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을 주던 상황이 변화되어야만 화평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하나님을 마음에모시어들임으로써 화평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것은 마음의 화평은 상황의 변화로 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변화를 통해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진리에 우리는 설득되어야 합니다. 그 진리를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바로 그러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평안하게되는 것은 상황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저녁에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께서 가자고 하셔서 저녁에 바다를 건넜습니다. 하지만이번에는 예수님은 함께 하지 않고 제자들만 밤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요]6: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요]6: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예수님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이 밤바다를 건너는 것은 그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저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밤바다를 건넜을 때 그들에게 찾아온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풍랑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6: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이 큰 풍랑은 잔잔한 바다를 예상했던 제자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밤중에 바다에 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게 일어나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예수님을 태우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순간 매우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상황으로 인해서 그들이 두려워하였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이 평안할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제자들처럼 삶속에 어려움을 만나는 우리도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 마음에 평안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상황이 바로 우리들을파도에 흔들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서 다시 평안함을 갖게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상황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상황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것이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상황의 변화에따라서 두려워하였다가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다시 평안해진다면 그것은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런 일반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속에서 담대한것입니다. 그러한 담대함이 바로 평안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의지하기 때문에 평안할 수 있고 그렇게 평안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상황에 상관없이 우리는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가장 어렵고 힘들 때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 놀라운 믿음이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자동차가 많이 발전했습니다. 예전에는국산 자동차는 시속10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습니다.사람이 떨은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떨었다는 말입니다. 그정도로 바람에 대해서 취약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100킬로미터가 넘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끄럽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술력의 발전입니다. 신앙의 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부화뇌동하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그속에정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아닙니다.진실한 신앙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요동치지 않는 것입니다. 수영에서 씽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라는 종목이 있습니다. 물속에서여러명의 선수들이 서로 연합되고 통일된 동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은 온몸으로 물에 떠있으면서 각종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표정은 항상 웃고 있습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괴로울 수도있지만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숙달되고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외에도 리듬체조나 피겨스케이팅이나 전부 표정연기를 해야 하는 종목에서는 표정이 중요합니다. 그 표정 속에서 그 선수들의 마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의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오만상을 찌뿌리고 혹은 항상 두려워하며 항상 불안해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상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상황을 또한 이겨내야 합니다. 상황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할 때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놀라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진정한 믿음을 경험하고 그 믿음을 실천하게 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의 변화에 따른 평안이 아니라 믿음의 변화에 따른 평안을 누리게 하시기위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가오신 것은 오직 그들의 두려움을 이기고그들의 불안함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담대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다가오시는예수님을 보면서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요]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제자들은 바람이 불어 풍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갔습니다. 분명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은 풍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을돕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셨는데 제자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보면서 두려워 하였습니다.풍랑 보다 예수님이 더 두렵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들을 돕기 위해서 오시는것이었는데 그러한 예수님을 보면서 제자들이 오히려 더욱 두려워한 것은 아이러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예수님을 보면서 두려워했던 이유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유령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6: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을 유령으로 오해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을 막아주셨습니다. 그래서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오는 것이 조금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제자들은 그분이 유령이 아니라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 예수님은 바로제자들을 구하고 그들을 담대하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바다위를 걸어서 오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속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예수님은 우리 삶속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담대하게 해주기를 원하십니다. 상황의 변화가 아닌믿음의 변화로 예수님을 먼저 마음에 모셔 들임으로써 담대해지게 되고 그로 인해 평안을 얻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상황의 변화만을 고집하지 않고 믿음의 변화로 인해서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담대하게 하시려고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자꾸만 유령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왜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유령으로 생각되었겠습니까? 도저히 그런 일을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현실의 예수님이 아닌 가상의 유령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에집착하고 상황에 매여있게 되면 그 속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황으로부터벗어나와 그 상황 속에서 역사하시며 그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한다면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서서 지극한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함께 하셔서문제를 해결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자동차 공장의 정비사가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차가 시동이 꺼졌습니다. 자신만만하게 자동차 본넷트를 열고 살펴보았는데 고장난 부분을 알 수 없습니다.한참 땀을 흘리는데 어떤 노신사가 다가와 말합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정비사가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제가 차량 정비를한지 벌써 20년 되었소!" 노신사는 아무 말 하지않고 어떤 부분을 툭 건드렸습니다. 그러자 차가 금방 시동이 걸렸습니다. 그 노신사는 그 차를 발명한 포드였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은 단순히 심적인 위로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결국에는믿음의 변화가 상황의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아가셨고 마침내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배로 모셔 들였을 때에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요]6:21 이에 기뻐서 배로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예수님이 배에 들어가셨을 때에 바람과 풍랑도 잔잔해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일들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사건이마태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14: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마]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예수님을 내 마음의 배에 모셔 들이는 것은 모든 평안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어떤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말과 생각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입니다. 그럴 때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상황속에서 예수님이 옆에 계셔서 담대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평안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평안의열매를 거두어보시기 바랍니다. 흔들리는 배와 불어오는 바람에 혼자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두려움에 떨지 마시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동행하심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럴수 있는 시간이 이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한 주간의 삶속에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여서 온전한 평안을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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