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연합] 56딛 2; 6-14 삶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주님의 희생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보기]
56딛 2; 6-14 삶의 변화에서나타나는 주님의 희생_1
2017. 2. 26. 주. 주일오전.
*개요: 삶의 심방, 53희생-82양육, 2분석, 6서신서, [딛]2:6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딛]2: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딛]2: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함이라 [딛]2: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딛]2:10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딛]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딛]2: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번 달에 계속해서 디도서의 말씀을 함께 묵상할 때에 그속에는 공감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공감이 되지 않는 것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장년남자들이 절제와 경건과 신중해야 하는 것은 공감이 되지만 왜 젊은 여자들에게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지는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특히집안 일을 하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부분은 젊은 여자들의 거부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왜 현대시대에과거시대의 유물을 강요하느냐고 항변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불만의 소리가 있는 이유는근본적으로는 성경말씀이 젊은 여자들의 유익과 편안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빼앗아가버리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그것은 단지 젊은 여자들에게만이 아닙니다. 장년남자들에게도 장년여자들에게도역시 동일한 피해가 있습니다. 왜 장년여자들은 행실이 거룩하고 모함하지 말고 술의 종이 되지 말고 선한것을 가르쳐야만 합니까? 그냥 편하게 살면 안될까요? 또한왜 장년남자들은 ‘절제, 경건, 신중’을 해야 합니까? 그들도얼마나 그로 인해서 불편하고 억압된 삶을 살게 되겠습니까? 이어지는 젊은 남성들도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가르침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딛]2:6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딛]2: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딛]2: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젊은 남자들은 신중해야 하며 교훈에 부패하지 않아야 하고 단정하고 책망할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현재 인격이 형성 중인 과정에 있는 것이아니라 이미 형성되어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아닌 것입니다. 이미 그들의 모습은 고착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 모범을배우며 자신의 삶의 변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자체도 역시 다른 장년 남성이나 혹은 장년 여성, 그리고 젊은 여성과 동일하게 나름의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습니다. 이모든 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원하는 일이겠지만 정작 자신들에게는 힘든 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바로 이 모든 성경의 가르침이 그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다른 사람들은 장년 남성과 장년 여성, 그리고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의 희생이 반가울 것입니다. 그들이이렇게 변화되는 것에 대해서 싫어할 다른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이 그렇게 변화되는것에 대해서 싫어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유익을 크게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남성들이 신중하고 교훈에 부패하지 않고 단정하고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되기 위해서 감당해야하는 어려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신중하기 위해서 성급한 마음을 다잡아야 하고교훈에 부패하지 않기 위해서 교훈을 끊임없이 새롭게 익혀야 하며 단정하기 위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하고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바르지 않은 말을 고쳐야만 합니다. 마치 걸음걸이가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이아니고 그것을 바꾸게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인 것처럼 새로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신경써야하며 계속 의식해야 하며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한 일들을 젊은 남성들에게 강요한다면 어쩌면 그들은교회를 다 떠나버릴 것입니다. 차라리 교회 밖에서 편하고 자유롭고 즐겁게 원래대로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한 어려움은 젊은 남성 뿐만 아닙니다. 젊은 여성이 그렇고 장년 여성이 그렇고 장년 남성도 그렇습니다. 모두가다 자신이 하려고 할 때에는 어렵습니다. 남에게 요구할 때에는 쉽지만 자기 자신이 지키려고 할 때에는어렵습니다. 하물며 이 일을 해야만 하는 디도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그는 젊은 남성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모든 선한 일의 본을 보여야만 했습니다. 이전에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그래야만 합니다. 그것을 가르치려면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는지를해보아야만 합니다. 예전에 그랬었다가 아니라 지금 그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올바른 교훈을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모든 일을 실천해야만 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성경말씀의 가르침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일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희생’이 있어야 하기때문입니다.
그 희생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는 그 희생의 가치에 대해서 알아야합니다. 그 희생을 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들과 그 희생을 통해 이루어질 일들을 생각해 보면 바로 그희생의 가치가 나타납니다. 이제 젊은 남자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질 일은 무엇일까요? 8절 말씀입니다. “[딛]2: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대적하는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다는 말은 구원받은 자로서 흠잡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 대적하는 자들이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받은 우리들에 대해서 스스로 부끄러울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받은 자들이 여전히 악한 자들이 된다면 얼마나 그 구원의 의미가 상실되겠습니까? 하지만 구원받은 자들이 선한 자가 된다면 그 구원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가 이러한 가치를 귀하게 여기면 희생을 실천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구원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않고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가치를 귀중하게 여긴다면 이러한 희생을 실천할 것입니다. 술담배하는 의사선생님이 없습니다. 운동안하는 의사선생님이 없습니다. 혹시 있다면 그는 건강의 가치를모르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만 도울 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그 가치를 안다면 자기 스스로 실천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들인 장년 남성이나 장년 여성, 그리고 젊은 여성이나 젊은 남성이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인 장년 남성과장년 여성, 그리고 젊은 여성이나 젊은 남성이 스스로 희생을 실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그 하나님의 사람들 자신이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자신을 악하다 할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대적하는 자들은 수시로 끊임없이 믿는 자들에게 악하다고 말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그들은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는 것처럼 믿는 자들에게서 악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럴 때 그렇게 그들이 기다리는 악을 나타내고 빌미를 제공하고 실족하는 기회를 만든다면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변화된 삶을 자신이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희생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희생을 통해서 대적하는자에게 악한 것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희생의 가치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나이가 들었거나 젊거나 남자거나 여자라는 기준 이외에 우리에게는 부하들과 상사들이라는 사회적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목이 되는 것은 더 낮은 자들입니다. 바로 그낮은 자들에 대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기준도 이와 같습니다. “[딛]2: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딛]2:10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종들이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기쁘게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또한 거슬러 말하지 않고 훔치지 않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는것은 얼마나 자기에게 손해가 나는 일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그로 인해서 우리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훈은 사람으로 하여금 순종하여 기쁘게하고 거슬러 말하지 않게 하고 훔치지 않게 하며 참된 진실성을 나타내게 하는 것임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믿는 종들의 희생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자기 자신의 희생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 가치를더욱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기만 해도 자신의 희생을 실천할 만큼은 되지 않는다면그 희생의 의미를 더많이 들어야 합니다. 대적하는 자가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더욱 알 필요가 있습니다.그 진정한 의미를 더 알기 위해서는 그 의미의 결과만 알아서는 안되고 그 의미의 과정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보면 그림의 결과만 아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받은 구원의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희생에는 중요한 목표가 있었는데 바로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희생의 의미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말하고 있습니다. “[딛]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딛]2: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단지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마치출산만 하고 양육은 포기하는 부모가 아닙니다. 주 안에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기르시고 돌보십니다. 그 기르심과 돌보심의 양육 속에서 우리를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의 정욕을버리는 자로 키우십니다.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서 구별되어서 살게 하십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남을 기다리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것이바로 변화된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있었던 것은 애초에 예수님께서 우리를위해서 대신 죽으시는 희생을 했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구원은 받았지만 그 이후의 영광은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나타나게 될 영광을 생각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 영광은 하나님의 일에 혹사되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로 받아야 할 모든 유익과 편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죄인이었던 우리 자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면서 생각하셨던 것은 우리가 깨끗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의 모습이 바로 ‘변화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그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바로그 자기 백성으로 만드셔서 영원토록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 가치를 소홀히 여길 때에 대적하는 자가와서 우리 스스로를 악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됨을 버리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사람이 적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할 때 믿음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본받는 진정한 주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아프리카 오지에서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한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이 선교사님이 정성을 다해서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고 결국 모든 식인종들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믿는 자들이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비록 구원은 받았어도 식인의 습관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선교사님은 끊임없이 그 습관을 버리라고 했지만 그들은 도저히 참지 못해서 폭발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더이상 그들을 만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선교사님은 그들에게 대신 아무 사람이나 잡지 말고 오늘 저녁 마을입구에 검은 모자를 쓰고 가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그 사람을 잡아먹으라고 했습니다. 식인종들은 좋아하면서기다리다가 선교사님이 말한 그 시각 그 장소에 나타난 사람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죽이고 잡아먹으려고보니까 그 사람이 바로 선교사님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자신을 희생했던 것입니다. 식인종들은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다시는 식인의 습관을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예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 죽으심을 기억할 때 우리도 그 모습을 버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서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삶의 가치를 기억하면서 그 변화의 삶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남이변화되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희생의 가치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 희생의 가치를 붙들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바로그럴 때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의 가치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번 달로 디도서의 말씀에 대한묵상은 끝나지만 앞으로 이 말씀을 더욱 잘 간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러한 새로운 삶에 대한변화와 그 열매가 우리 삶 가운데 놀랍게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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