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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사역] 1창13; 1-9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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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9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_1

 

 2015.7.26.. 주일오전.

 

*개요:    성도로서 신앙의 훈련, 1오경, 4극본, 7실천,  

[]13: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13: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13: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3: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13: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13: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13: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번 달 우리는 창세기12장에서 시작해서 13장까지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라서 쉽게 가나안으로 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여러가지 시련과 역경을 거쳤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결코 평탄한 삶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괴로움과 어려움도 함께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늘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비록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그는 나중에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근을 막아주시지 않고 평안을 허락해주시지 않았어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랄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들에게도 은혜주시기를 간절히 바랬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간절함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진실함은 그가 단순히 자신이 거할 땅을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타인과 함께 이루게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소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관계에서 단순히 나 자신만 먹고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만 생각할 때 신앙의 그릇은 유리컵 하나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속에서 자신의 사소한 일에 실망하고 자신의 어려움과 역경을 당할 때 좌절하고 자신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분노하면서 유리컵 속에 담긴 그나마 적은 양의 신앙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릇이 커지는 일입니다. 그렇게 그릇을 크게 해서 생수통이나 대야나 욕조 수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자 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럴 때 은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쉽게 엎어지지도 않습니다. 그 풍성함 속에서 우리는 내가 먹고 남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러한 커다란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그러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13: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13: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애굽에서의 그 위기와 어려움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고 그로 인해서 바로에게 자기 아내를 빼앗겼다가 돌려받은 모든 일은 오히려 커다란 축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 처음 내려갔을 때에는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 내려간 것이었지만 애굽에서 나올 때에는 가축과 은과 금이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아내 사라의 일로 바로에게서 받게 된 것들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아내도 다시 받고 아내로 인해서 많은 소유물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에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위기가 새로운 축복이 된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셨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의 반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서에서 모르드개와 그의 조카로서 왕후가 된 에스더에 대해서 악인이었던 하만이 흉계를 꾸미고 그들을 죽이려고 했던 것은 분명 커다란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모르드개와 에스더,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그 위기는 도리어 커다란 기회가 되었습니다. 원수가 모르드개와 에스더와 유대민족을 해칠 수 있었던 날은 바뀌어서 유대민족이 자신의 원수에게 공격할 수 있는 날로 변한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바꾸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의 마음이 바뀌도록 역사하셨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이렇게 삶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혹은 저버리거나 혹은 다른 신이 더 좋아보여서 따라가거나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였기 때문에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긍휼이 바탕이 되었을 때 더욱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만의 유익에 눈이 어두워서 외면하거나 배신하거나 혹은 일시적인 위기와 어려움속에서 확신을 포기해버린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가능성과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붙드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붙드는 것이 됩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침공했을 때 휘하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국경 도시인 펠드리히를 포위했습니다. 펠드리히 시는 비상의회를 소집하고 사태를 논의했습니다. 미리 항복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한 사제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우리의 힘을 의지한다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부활절인 오늘의 예정대로 교회 종을 치고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나머지 문제는 모두 하나님께 맡겨버립시다

그 사제의 말에 시의회 의원들은 모두 찬성하였고 펠드리히 시에는 우렁찬 종소리가 울리고 기쁨에 찬 찬송소리가 퍼져나갔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프랑스군 진영에서는 오스트리아의 구원병이 온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여 군대를 돌려 다른 곳으로 퇴각하였습니다. 펠드리히 시민들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막강한 나폴레옹의 군대를 맞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러한 은혜를 받았기에 기쁨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13: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조금도 변치 않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믿음 속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와 그의 조카와 그의 모든 종들이 함께 했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굳건히 설 때에 그와 함께 하고 그와 동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속에서 주님을 따라 나왔기에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목적과 계획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부르심과 인도하심을 따르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의 그 부르심이 생생합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주님은 예전에도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셨고 지금도 우리의 갈길과 할일을 알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던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중요한 계기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라는 갈등 속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함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오던 조카였던 롯 사이에 분열의 조짐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13: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13: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분명 조카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함께 왔었습니다. 그리고 롯도 자신의 형편대로 가족과 종과 소유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오는 일행이었고 친족이기는 했지만 각자의 기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롯에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많고 그들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자연히 함께 거주하는 것이 여러면에서 불편해지게 되었습니다.

“[]13: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중대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의 선택은 아브라함이 진실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자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해주시기를 기도하는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 집과 자기 소유물에 대한 욕심을 전혀 부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왔던 롯과 그의 형편을 온전히 배려해주는 사랑과 진실과 정직의 마음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럴 때 그는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을 경계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주심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화평한 분리를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의지하고 롯은 롯대로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13: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채우심을 그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에 아웅다웅하지 않고 친밀하고 사랑이 있었던 한 친족으로서 서로 다투지 않고 자신의 가족과 소유물을 아름답게 분리하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로 인해서 받은 물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고 그런 축복에 대해서 아브라함 자신도 어느정도 지분이 있기 때문에 그냥 곱게 보내줄 수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물질을 위해서 하나님을 따른 것이 아니었고 부흥이나 발전이 자기 삶의 유일한 목표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삶을 따라 나온 것이었고 지금까지의 삶속에서 이미 충분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그 인도하심을 경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잘되고 번성하고 발전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던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붙들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태어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종들을 시켜서 우물을 팠는 데 그 우물에 다른 목자들이 와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팠는데 그곳에서도 다른 목자들이 와서 자기들 것이라고 다투었습니다. 세번째 이삭은 다른 곳에서 우물을 팠는데 그곳에서는 아무런 시비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삭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그는 하나님의 복주심과 번성케 하심을 의지하며 나아갔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가 조카 롯과 헤어지게 된 것이 결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니라 더욱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붙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달라 붙어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따르고 그 인도하심을 붙들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놀라우신 은혜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붙들 때에 자신의 유익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것과 저것을 동시에 다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잡기 위해서 저것을 놓는 것입니다. 두 손은 두 가지를 모두 붙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 가지를 완전히 붙잡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우리 모든 관심과 노력과 열정은 오직 하나님을 붙들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붙들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희생하고자 했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과 평안한 분리를 결정하고 각각 새로운 땅으로 떠나갔을 때 하나님은 또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3: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3: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3: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땅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자손에 대한 이야기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애초에 하란을 떠날 때에 말씀하셨던 것이었지만 그동안 땅에 대한 이야기만 하시느라 자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는데 이제 롯과 이별하고 순조로운 독립을 시켜준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사람이 줄어든 아브라함에게 더 큰 사람들을 약속하십니다. 오히려 규모가 줄어든 아브라함에거 더 큰 규모의 확장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냥 말로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러하였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위기에서도 우리를 도우시며 건져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어도 돕는 사람들이 없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서 더욱 크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일은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셔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중간에도 나중에도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항상 변치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도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고 여러분의 가정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자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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