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속자(212)
  • 새글
  • 출석
  • |
  • 로그인
  • 회원가입
  • 검색

[73절제] 59약3;2-6 말에 필요한 그리스도의 절제





Loading the player...


 

593;2-6 말에 필요한 그리스도의 절제_1

 

 2014.9.21..주일오전.

 

*개요:    73절제, 3분석, 6서신서, 5은혜-7실천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1)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2)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서 절제하려고 할 때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절제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입니다. 말은 우리의 삶에 가장 기본적이고 영속적이며 항구적인 활동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로 나타냅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 자체도 무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말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이 말에서의 변화를 가져올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임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말은 너무나 원색적입니다. 때로 세상적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감정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합니다. 말은 우리의 희노애락을 나타냅니다. 또한 그속에서 모든 분노와 미움과 모든 악감정도 함께 나타냅니다. 그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예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말은 악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그럴 것지만 만약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면 그것은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게 달라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을 하고자 할 때에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동일한 의미도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프랑스 파리의 미라보 다리 위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장님이 있었습니다. 그 장님은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목에 걸고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곁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그 걸인에게 당신이 이렇게 해서 구걸하는 액수가 하루에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걸인은 침통한 목소리로 겨우 10프랑 정도(11,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행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걸인의 목에 걸려있는 팻말을 뒤집어 놓으며 다른 어떤 말을 적어놓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그 행인이 그 곳에 다시 나타나서 말을 걸었을 때 걸인은 행인의 손을 붙잡고 감격해하며 물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녀가신 뒤 요사이는 50프랑까지 수입이 오르니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글을 써 놓았길래 이런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겁니까?` 그러자 행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별다른 게 아닙니다. 원래 당신의 팻말에 써 있는 글인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는 말 대신에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써 놓았을 뿐이죠." 그 사람은 바로 프랑스의 시인인 로제 카이유였습니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것같은 변화였지만 그 표현의 차이가 바로 생각의 차이, 태도의 차이를 일으켰습니다. 우리의 말도 생각해 보십시오. 단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고 교회를 다니지만 말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무슨 차이점이 있겠습니까? 말이 우리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인데 그러한 말이 예수님을 나타내며 예수님의 모습을 닮으려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진정한 구원을 항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진정한 봄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이러한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말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선한 말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악한 말이 우리 입에서  나온다면 그로 인해서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고사하고 인간으로서의 모습조차도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그로 인해서 나오는 것은 매우 큽니다. 작은 불이 어떻게 산 하나 전체를 다 태우고도 남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정도는 괜찮으리라고 생각한 말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해치고 괴롭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아이의 돌팔매질이 개구리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함부로 하게 되는 말은 많은 피해를 낳고 그로 인해서 많은 슬픔을 불러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하고 또한 위험한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그 위험한 말, 통제되지 않은 말, 다듬어지지 않은 말, 불과 같이 모든 것을 태우는 말은 항상 절제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을 때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특히 그럴 때 그 말은 불의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는 것입니다. 불의의 세계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습니다. 가혹하며 잔인합니다. 그리고 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본질은 지옥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악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심판장소인 지옥은 본질적으로 악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지옥불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 본질이 사탄적이며 악에 해당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불이 되는 혀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가장 죄악되고 사탄적이며 지옥불에서 심판받는 악의 본질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의 신분은 의롭고 경건하며 신실하였을 지라도 그가 입에서 불의 혀를 발휘하는 순간 그 어떤 악인보다도 악하며 그 어떤 사탄적인 행동보다도 더 사탄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악한 말로 인해서 모든 것이 다 불타버립니다.

 

성경에서 그러한 가장 악한 결과로 나타난 사람은 가룟유다입니다. 그의 비참한 모습은 얼마나 말로 인해서 모든 것이 다 타버릴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27: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그는 자신의 후회와 죄책감의 문제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상의하였고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전부 가룟 유다에게 덮어버렸습니다. 그가 예수님에게나 다른 제자들에게나 하나님께 회개한 것이 아니고 그저 괴로워만 하면서 대제사장의 악함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답은 그냥 아무런 회개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죽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네가 당하라는 식의 악한 말, 분노의 말, 외면하는 말, 불타는 불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말을 위해서 우리는 혀를 다스려야 하고 감정을 다스려야 하며 마음을 다스려야만 합니다. 야고보사도는 이것을 마치 배를 움직이는 키에 비유하였습니다.

3: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우리도 순간 순간 안좋은 말이 나갈 수 있지만 그런 말이 얼마나 안좋은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입에 재갈을 먹여서 온힘을 다해서 막습니다. 이는 마치 커다란 배가 광풍에 밀려가면서도 키 하나로 선장이 배를 움직이려고 하며 뒤집혀지지 않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게 있는 힘을 다해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뜻대로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고 감정대로 악을 쏟아내지 않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대로 온전하게 말을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나누는 대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평탄할 때에는 좋지만 안좋은 상황이 시작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순식간에 서로 나누는 대화는 광풍에 밀려가는 배처럼 안좋은 감정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그러면 배는 정신없이 휩쓸려가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나누는 대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뭔가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고 그에 대해서 부모의 거친 감정이 터져나옵니다. 그러면 자녀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대들기도 하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런 모습 자체를 견디지 못하고 부모의 언성이 높아집니다. 결국 불꽃이 튀기고 불이 붙습니다. 좋았던 부모자녀의 관계가 모든 것을 살라 버리면서 불타 오르는 것입니다. 친척과 동기와 이웃과 나누는 감정적인 대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더 심각하고 더 감정적이며 더 파국적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서로 싸우거나 밀치거나 폭행을 하거나 피해를 입힙니다. 그 모든 일들이 바로 한순간을 참지 못하고 자신을 어거하지 못하고 키를 돌리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 모든 일이 다 일어나고 다 불타버리고 다 끝나버리기 전에 우리는 우리 주님의 모습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는 한없는 희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을 감당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 스스로가 달리실 십자가를 메고 가셨던 것입니다. 자기가 달릴 형틀을 자기 자신이 끌고 올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예수님 자신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지은 모든 죄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악한 성품과 모난 성격, 거친 마음과 불태워버리는 극단적인 말에 대해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묵묵히 지고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에 예수님은 스스로를 얽어매셨습니다. 그 죄성에 대해서 자유를 누리신 것이 아니라 그 악한 모든 일들에 주님은 친히 온몸을 어거하셨으며 광풍에 흘러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키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지며 올라가실 때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주님은 우리와 우리 자녀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울지 말고 예수님이 바로 우리와 우리 자녀를 위해서 이렇게 십자가를 지셨구나를 생각하면서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말의 악함대로 우리의 삶은 불타버리고 우리의 인생은 덧없고 우리의 가치는 사라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이 있었기에,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예수님이 있었기에 우리는 죽음에서 살아났으며 죄에서 풀려났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할 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졌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구레넷사람 시몬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군병들에게 잡혀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자신이 졌던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자기와 자기 가족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는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여기서 나오는 루포가 누군가 하면 바로 구레넷사람 시몬의 아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다시 말해서 구레넷사람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메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고 그 이후에 그의 자녀들이 예수님을 믿고 바울을 도와서 복음전파에 힘을 썼던 것입니다. 우리가 말에 있어서 절제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은 괴로운 일일 지 몰라도 나중에는 나와 내 자녀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는 일입니다. 나의 절제하지 못하는 말과 나의 통제되지 못하는 말은 결코 내 자녀에게 좋은 유산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며 그대로 모방하면서 더욱 커다란 불을 지피는 혀가 되고 배를 뒤흔드는 광풍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면서 멍에를 짊어 지고 온옴을 어거하는 예수님의 사람들이 된다면 우리의 말 속에서 온전히 그리스도가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 넘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삶속에 놀랍게 나타날 것입니다.

 

5만 번 이상의 기도응답을 받은 기도의 사람이자 3000명 이상의 고아를 기른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뮐러도 청소년 시절에는 동네에서 부랑자였습니다. 학생 때 그는 아버지의 돈을 훔치고 거짓말을 일삼고 친구와 어울려 유흥업소와 경찰서를 자기집처럼 들락거리다가 결국 교도소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잡게 해서 오늘날 기독교사에 빛나는 성자가 되게 한 것은 말 한마디였습니다. 어느 날 동네 목사님에게 상담하러 간 그에게 목사님이 이렇게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조지! 나쁜 버릇을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한번 택한 자녀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낙심하지 말고 노력하면 넌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이 말에 마음이 변화되어서 조지 뮐러는 우리가 아는 대로의 그러한 놀라운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렇게 자신의 아내에게 자신의 남편에게 아들에게 딸에게 친척에게 이웃에게 말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내 온몸을 어거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을 붙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예수님을 본받으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을 잘 사용하여 온전한 절제를 나타내고 그로 인해서 주님이 약속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소원교회
1.신앙구조
2.성경적용
3.마음변화
4.변화방법
5.신앙고민

주일 성경공부 교재
제자 성경공부 교재
평일성경공부 교재1
온라인 상담전도

소원교회 주일오전 예배실황
소원교회 유튜브 설교채널
소원교회 네이버 블로그
소원교회 네이버 전도답변


번호 분류 이미지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595 51계획
43요2; 1-5 하나님의 때가 이루어졌던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7-28 13 6406
594 53희생
43눅6; 12-19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시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3-12 13 7292
73절제
59약3;2-6 말에 필요한 그리스도의 절제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21 13 6516
592 53희생
58히 5; 1-7 부르심을 입은 자의 들으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3-18 13 6750
591 6결심
46고전 15;12-20 부활이 없다면 일어나는 일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4-19 13 7250
590 5은혜
44행10;17-23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1 13 7147
589 5은혜
44행27;18-26 풍랑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4-27 13 7016
588 56충만
44행10; 30-35 간절함을 바라는 자에게 주신 충만함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7-30 13 6707
587 56충만
40마 13; 24-30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는 가라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1-19 13 5694
586 51계획
40마 22; 1-4 혼인잔치의 임금과 사람들의 관계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1-26 13 5358
585 6결심
46고전13;1-7 진정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심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5-02 13 7127
584 54용서
12왕하6; 14-17 눈을 열어 보게 하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4-14 13 6596
583 52능력
9삼상24; 1-7 죄를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8-11 13 6684
582 74경건
40마13; 24-30 가라지를 이겨내는 하나님 나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0-20 13 6552
581 82연합
40마13;1-9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극복해야 하는 것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2-09 13 7605
580 55동행
43눅24;33-43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먹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4-27 13 9741
579 54용서
40마25:31-46 죄인같은 의인들, 의인같은 죄인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5-05 13 7127
578 54용서
44행3; 14-21 주앞에서 유쾌하게 되는 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4-21 13 6770
577 1영역
1창 4; 25-5; 5 함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5-24 13 6335
576 51계획
1창 3;16-17 창조명령을 이루며 살지 못하는 이유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1-21 13 9059
575 51계획
42눅18; 35-43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1-08 13 6746
574 6결심
50빌 2;13-18 자신을 전제로 드리며 기뻐함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1-17 13 6134
573 51계획
41막7; 24-30 은혜를 받는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1-13 13 6476
572 1영역
49엡 2; 17-22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5-22 13 6537
571 56충만
49엡2; 12-18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5-27 13 6743
570 5은혜
40막 10;35-40 하나님이 들으시지 않는 소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3-23 13 6432
569 55동행
42눅9; 27-36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변화되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6-16 13 6461
568 53희생
32욘 4; 3-11 잃어버리면서 깨닫게 되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24 13 7028
567 1영역
6수 10; 12-15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간구하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6-04 13 7542
566 5은혜
43요 5;24-29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4-05 13 6786
565 3감정
47고후 7;10-11 구원을 이루는 근심 사망을 이루는 근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7-21 13 7375
564 55동행
66계21; 9-22 어린양의 아내인 교회로 이끄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7-04 13 6309
563 55동행
15스9; 1-3 누구를 따를 것인가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16 13 9263
562 6결심
44행 1;21-26 부활증거의 직무를 행하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4-13 13 6409
561 52능력
47고후 4; 1-6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0-08 13 5670
560 82연합
행24;24-27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04-08 13 5473
559 53희생
44행26: 8-15 우리가 핍박했던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3-20 13 6779
558 81훈련
42눅12;29-34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신앙생활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1-05 13 6670
557 53희생
46고전1; 26-31 우리를 부르심의 가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3-04 13 6178
556 54용서
11왕상11; 37-43 아들이 아버지처럼 용서를 받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7 13 7393
555 71충성
19시107; 1-16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1-18 13 7730
554 53희생
42눅23; 44-49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알게 하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0-29 13 5520
553 56충만
6수 1:10-15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 땅을 차지하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19 12 7755
552 62희락
35합 3;17-19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희락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2-23 12 7947
551 53희생
46고전15; 1-11 내게도 보이신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3-31 12 7843
550 82연합
56딛 2; 1-5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는 방법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2-18 12 5259
549 73절제
42눅 23;33-43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우리의 절제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28 12 6459
548 81훈련
21전 11; 8-10 삶을 즐거워할 때 기억해야 할 것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1-25 12 6942
547 8사역
46고전 2; 9-16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가르치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8-16 12 5997
546 54용서
41막16; 9-18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의 변화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4-09 12 7127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