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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충성] 44행21;8-14 사람들 너머 하나님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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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1;8-14 사람들 너머 하나님을 보다_1

 

 2014.7.20..주일오전

 

*개요:    71충성, 6서신서, 3분석, 7실천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충성스러운 사람의 필요성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는 장관을 뽑을 때, 혹은 지역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구청장, 의회의원, 국회의원 등을 뽑을 때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충성스러운가를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국가에 충성스러운지 혹은 직무에 충성스러운지 그리고 가정에 충성스러운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충성스러움은 단지 정치권에서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스포츠계에서도 대표팀을 맡은 담당자들이 얼마나 충성스러웠는가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충성스러움을 알게 되어서 임명을 받거나 당선이 되어서 존경을 받게 되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 충성스럽지 못함을 알게 되어서 임명취소가 되거나 사퇴를 하거나 혹은 낙선을 하면서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 속에서 우리들은 높게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더 큰 도덕적 기준과 더 큰 충성스러움이 요구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도자가 아니라면 별 상관이 없을 일들도 오직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한에서는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아예 그런 지도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대충 살면 되지 않을까라고 자포자기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이러한 충성스러움에 대한 요구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평생 직업을 구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하물며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더라도 충성스러움이 없이는 결코 아무 것도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두 사람이 있을 때 좀더 충성스러운 사람을 뽑게 될 것입니다. 혹은 실력이 차이나는 두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더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 사회의 기본적인 상식과 기준 속에서 충성은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래야 이 사회가 유지되고 보존되며 지탱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충성을 더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떨까요? 믿는 자들에게는 더욱 충성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신앙인들 사이에서나 혹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 속에서도 동일하게 믿는 자들이 충성스러울 것이라는 점은 거의 일치된 기준입니다. 믿는 자들이 그렇게 충성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믿는 믿음이 바로 그러한 충성스러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충성스러움은 바로 그 어떤 것 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여가나 기호보다 우선합니다. 또한 그것은 자기 자신의 유익 보다도 앞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볼 것이지만 하나님은 바로 다른 사람들 보다도 우선합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하는 것이 충성이 되는 이유는 앞서 보았던 그 모든 사람들의 경우에서 늘 충성스럽지 않았던 이유에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어리석은 결정들은 결코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때로는 잘못된 제안들을 전해 주었을 때에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그런 부분에서도 충성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의 영향력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충성되었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의 온 생애를 드려 하나님께 충성을 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모습속에서 나타나지만 정말 중요한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장면 하나로 그의 충성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만류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그가 극복해 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빌립 집사의 예언하는 딸들을 만났습니다.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그 딸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예언을 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또한 바울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먼저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그에게 앞일에 대해서 걱정스러운 말을 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그 다음에 나오는 아가보의 예언을 통해서 바울의 미래는 좀더 구체화 되었고 그로 인해서 바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전부 강력하게 그를 만류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인 예언은 역시 아가보의 예언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아가보는 유대에서 내려온 신실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는 말 그대로 예언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빌립의 네 딸이 예언의 은사가 있었던 것처럼 아가보에게는 더욱 구체적인 하나님의 알려주심이 있었습니다.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단순히 빌립의 딸들 뿐만이 아니라 아가보라는 선지자까지 바울과 함께 한 자들에게 와서 성령의 말씀을 전해 주셨을 때에 그 내용을 의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구체적으로 바울이 결박당해서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리라는 것을 선지자와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그 예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예언의 의미는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누가 봐도 그말은 맞는 말입니다.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정말로 알려주셨다면 당연히 그 어려움을 피하게 하신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 어려움의 예언을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시대에도 그러한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그 예언자들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들도 무척이나 예언자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예언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예언은 어떤 때에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일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그러면 망할 거야’ ‘너는 그러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물론 그 예언들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일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그래도 아무 문제없어’, ‘다음에 잘하면 되지 선하거나 악하거나 이러한 모든 주변 사람들의 영향력은 우리가 행동하는 것과 결정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그러한 영향력을 받으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혹은 그러한 영향력을 받으면서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가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모든 사람들의 영향력에서 더욱 더 발전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보다 더 귀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영향력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결코 우선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들의 영향력도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이끄시며 인도하시는 것보다는 결코 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순간에 필요할 때에는 사람들보다도 하나님을 더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는 말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예언을 들으며 자신의 나름대로 해석했습니다.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여기서 우리는 사도행전을 쓰고 있는 누가와 함께 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누구보다도 바울을 아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연히 바울을 위해서 그의 안전과 그의 평안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예언에 대해서 바울은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에서 결박되고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헌신할 것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해석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갖게 되는 중요한 확신을 그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사람들에게 울지 않게 하면서 그는 자신의 하나님께 충성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바울의 말은 옳았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말고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충성스러움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조언보다도 하나님을 더 중요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충성은 너무나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넘어서는 것이 항상 하나님을 따르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을 넘어서고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 자신의 유익을 따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의 결과는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은 결과가 아주 안좋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는 그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사실 바울은 그가 회심하기 전에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그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꼭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서 했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열심을 냈을까요?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겠습니까? 그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람이었나요? 굳이 말하자면 그는 오직 자기자신에게만 충성스러웠습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목표와 자신의 계획에 충성스러웠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악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영향력을 넘어선다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더 큰 악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지금은 사람들의 영향력을 넘어서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가를 디모데전서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딤전1: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그는 자신을 충성되이 여기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전에 자신의 살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가 없는 자였습니다. 그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습니다. 이전에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가지고 멀리 다메섹에까지 가서 믿는 자들을 잡아오려고 했던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악한 의지와 죄악된 열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사 그에게 희생과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그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가 믿는 자들을 잡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그 길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분봉왕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예수님은 복음의 적이 되었던 그에게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에게 주시는 놀라운 소망과 계획을 알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업신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따랐을 때에 가장 주님을 핍박하던 자가 가장 주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근원은 바로 그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받은 구원을 진심으로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이러한 바울의 충성스러움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가 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항상 우리의 감사와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열정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받는 영향력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그 어떤 뜨거운 마음도 차가운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뜨겁고 큰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로 왔을 때 가장 차갑고 냉랭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결코 사람들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말하였을 때 그 길을 만류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매몰차게 이야기하실 정도로 그러한 영향력을 경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진정한 충성을 행하기 위해서 바로 사람들의 영향력을 넘어야만 합니다.

 

1930년 프로펠러 하나 달린 단발기를 몰고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바로 린드버그 대위입니다. 생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일에 도전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린드버그 대위는 조그만 비행기를 타고 서른 몇 시간 동안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일약 세계가 주목하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린드버그 대위가 비행기로 세계일주를 하고 프랑스에 다시 왔을 때 그를 많은 사람들이 그를 환영했습니다. 그 무리 중에는 담배회사 사장도 있었습니다.  그는 담배 한 대를 주면서 이렇게 린드버그에게 제안했습니다.  린드버그, 당신이 담배 피우는 사진 한 장 만 찍는다면 5만 달러를 주겠소."  그 때 린드버그 대위는 이렇게 말했지요.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린드버그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렇다면 단지 담배를 입에만 물고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그래도 5만 달러를 주겠소." "나는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린드버그는 이 제안도 거절했습니다.    이 기사가 다음날 프랑스 일간지에 크게 보도로 나갔습니다. 이 기사를 읽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린드버그를 위해 모금을 합시다.” 그 금액이 두 번 거절한 10만 달러였습니다.  그는 세계적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비행기 안에 타고 있었을 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만든 기계들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를 깨닫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없이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한 사람이 죽는가 사는가 하는 것은 모두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이 만드신 피조물이기 때문이지요

 

린드버그가 거부한 5만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세상 사람의 영향력입니다. 5만불에 그의 진실을 꺾고 이용해 먹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이기고 오직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가장 우선된 것으로 하나님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넘어설 때에 비로소 진정한 충성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이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살게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사도 바울을 세우심처럼 우리들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울처럼 사로잡히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사람들은 넘어서지 못할 것 같아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비로소 사람들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진정으로 보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은헤의 풍성을 알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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