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교제] 50빌 2; 1-8 교제를 통해서 이루게 되는 모습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50빌 2; 1-8 교제를 통해서 이루게 되는 모습_1
2019. 6. 30. 주. 주일오전.
*개요: 성도의 교제의 의미 [빌]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빌]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지금까지 ‘성도의 교제’라는 주제로 한달 동안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왜 중요한가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의미와 중요성이 있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의 확실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무엇이 되는지를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그 모습을 마음에 새기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정말 이루고자 했던 일들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갖게 될 모습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입니다.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뒤 40일 후에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승천하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알려 주셨고 또한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에 바로 그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요일 3:24절입니다. “[요일]3: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성도의 교제가 성령 안에서와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이루어질 때 그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 속에 살아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발견하고 따르고자 할 때 교제를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 속에 이루어집니다. 카드섹션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카드를 들고 있다가 순서에 따라서 카드를 펼칩니다. 그 많은 카드를 통해서 하나의 이미지가 형성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그렇게 함께 모여서 하나의 모습을 연출합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목표를 위해서 성도의 교제를 시작할 때 본격적으로 시작과 진행과 종결의 내용이 형성됩니다. 시작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빌]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빌]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권면이나 무슨 사랑의 위로나 무슨 성령의 교제나 무슨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그것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은 한 마음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한 마음을 품기 위해서 마음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한 마음이 무엇일까요? 그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자 할 때 모든 권면이나 위로나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우상으로 하는 마음이나 다른 사람을 우상으로 하는 마음은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세탁기에 세탁물을 돌리는 이유는 말 그대로 세탁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깨끗해지지 않는다면 세탁기를 돌리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탁을 두 번 하기도 합니다. 세제가 조금 들어갔든지 세탁물을 잘 말리지 못했다든지 하면 한번 더 세탁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탁의 본질은 청결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제가 절실히 느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드라이크리닝을 해야 하는 옷을 세탁기에 놓고 돌렸을 때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 옷에 대한 세탁방법에 유의하지 않고 세탁기에 돌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세탁기에 넣고 돌렸더니 옷이 다 줄어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옷을 망치게 되고 말았습니다. 세탁은 무조건 세탁기가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세탁소에 맡겨야 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이 교제의 본질은 무조건 권면과 위로와 긍휼과 자비를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형식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한 깨달음과 목적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도의 교제를 받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성도의 교제를 이끄는 사람들이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게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고자 할 때에 성경은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3, 4절에서 그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이 말씀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의미는 첫 번째,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먼저 품어야 하는데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바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타납니다. 그 말은 자기를 남보다 더 낮게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남이 높고 자기가 낮은 것이 아닙니다. 정확한 의미를 생각하기 위해서 영어성경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빌]2:3 Do nothing out of selfish ambition or vain conceit, but in humility consider others better than yourselves.” ‘이기적인 야망(selfish ambition)’이나 ‘헛된 자만심(vain conceit)’으로부터 하지 말고 겸손함으로(in humility)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고의 문제입니다. 바로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해서 6-8절은 너무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사람들보다 낮아지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낮추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사람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분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섬기면서 우리에게도 더 중요하고 더 의미가 있는 자리가 있지만 그 자리를 비워서 사람들과 같이 되고 사람들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자가 되는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든 성도의 교제 속에 있어야하는 일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과 이야기를 하시면서 식사도 하지 못하셨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요]4: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4: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요]4: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예수님은 식사도 못하시고 수가성 여인과 그 여인이 말하여 예수님께 나아오던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계실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 자신이 걱정되어서 식사를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식사도 거르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에게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람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시며 그들을 사랑하셨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마음을 계속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또한 그렇게 교제를 받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4절에 나와 있습니다. “[빌]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여기서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는 말은 사도 바울을 기쁘게 하라는 의미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사도 바울만 기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자기 일을 돌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대해서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서로 나누어주며 돌보아 주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이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복종하셨다는 것은 분명한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뜻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임의로 행하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더욱 저항하며 항거하고 불순종하고 부정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교제일 때 성도의 교제가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복종과 순종과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성도의 교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나중에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갔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곳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은 자들이 모여있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더 중요하게 여긴 자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아서 천국에 모여 있습니다. 얼마나 거룩하고 성결하며 흠없는 모습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그곳에서도 성도의 교제를 이룰 것입니다. 바로 구원받은 자들의 교제입니다. 그 교제를 이룰 때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성도의 교제를 이룹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마음에 담고 교제를 인도하는 자들이나 교제에 참여하는 자들이 다 같이 그리스도의 마음 속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셨고 예수님께서 이루셨던 놀라운 성도의 교제가 성령님의 모든 도우심 속에서 우리 교회에서 우리 삶 속에서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