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교육] 45롬 3; 19-24 율법의 심판에서 은혜의 의로우심으로 나아감2Loading the player...
45롬 3; 19-24 율법의 심판에서 은혜의 의로우심으로 나아감2_2b
2021. 1. 31. 주. 주일오후. 온라인 설교
*개요: 성경비전, 극본적 해석
[롬]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의 말씀 속에서 성경비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4극본적해석’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자 합니다. 극본적해석은 다음과 같은 구성요소를 가지고 말씀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4극본적해석: 1.발단2.전개3.절정4.결말] 본문 말씀을 통해 각각의 구성요소에 해당하는 말씀을 생각해 보면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왜 복음이 필요한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그 실체가 율법을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나야 하기에 성경말씀은 우리가 어떤 자들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이 어떤 자인가를 알아야 복음의 필요성을 깨닫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닙니다. 복음은 필수입니다. 복음은 장식품이 아닙니다. 생명줄입니다. 복음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발단으로서 19절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롬]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음을 알 때 우리는 우리의 본질이 어떤지를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자가 복음의 필요성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알지 못하면 복음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거부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요? 율법이 깨닫게 하는 죄가 무엇일까요? 그 다음에 전개로서 이에 대한 말씀이 1장 28절부터 31절에 나옵니다. “[롬]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마음에 하나님을 두었으면 그들의 마음은 가장 온전한 마음이 되어서 그들의 모습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유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니 그들의 마음은 상실한 마음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결국 합당하지 않은 옳지 못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모습은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로 인해서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악을 악이라고 깨닫게 하는 것이 율법이 되었던 것입니다. 율법은 기본적으로 모든 악을 다룹니다. 그 이전에 악이라는 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율법이 생기고 나면 그것이 구체적인 악이 됩니다. 그렇지만 율법이 생겨서 악이 된 것이 아닙니다. 원래 그것은 악했는데 그 악을 규정할 근거가 없었던 것뿐이고 그 근거가 바로 율법으로 나타나니까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악한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악한가입니다. 인간 본연의 죄성이 율법을 통해 증거되었습니다. 이러한 악함은 겉으로 드러난 악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미한 마음의 악도 악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성의 본질은 스스로는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성을 부인하고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죄까지도 부인해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 앞에서 더욱 큰 죄인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악의 모습을 1장 32절에서 이어집니다. “[롬]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그로 인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이지만 하나님을 부인하면서 죄를 부인하고 그런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죄를 부인하면서 그들을 옳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께 대한 죄는 더욱 쌓이기만 합니다. 율법은 바로 이렇게 죄인이 어떤 죄때문에 죄인인지를 말해줍니다. 율법의 관점에서 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장 선량해 보이는 어떤 사람도 죄인입니다. 가장 거룩해 보이는 어떤 사람도 죄인입니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볼 때 그는 죄인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율법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바로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우리가 구원을 필요로 하기 위해서는 더욱 죄인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하고 자신이 죄임임을 알 때 또한 구원을 얻고자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죄임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구원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다른 소망이 없는 자들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구원의 소망을 붙듭니다. 구원을 바라는 자들일수록 더욱 자신이 그 구원이 없이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자임을 자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또한 복음은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구원받을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복음을 받아드리고 구원을 얻고자 할 때 그것은 단순히 내가 복음을 받아들여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구원하시고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믿으라고 하니 믿고 따르라고 하니 따르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수동적이고 피동적이어서 그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삶이 아닙니다. 물건을 샀다가 반품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자체는 피곤하고 힘들어서 좀 지칠 때도 있고 약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좋은 마음이 있다면 그는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복음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는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굴레에서 벗어나 의인의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복음에서 나타나는 은혜의 놀라움입니다. 그것이 절정으로 나타납니다. 21절이 그 절정에 해당합니다.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의 정죄함으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 우리 입장에서는 놀라운 혜택이지만 그 혜택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혜택의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주체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온전하시며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하심을 바로 우리가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구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고 무한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복음에서 나타나는 은혜의 놀라움입니다. 이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음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를 이해하게 됩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된 자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을 다시 마음에 모셔 들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지 않아서 상실한 마음에 모든 악한 일을 일삼던 한 사람의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앞으로는 하나님을 따라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복음만이 구원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고 하나님을 마음 속에 다시 모셔드릴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의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의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분을 섬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마치 키와 몸무게나 혈압이나 각종 신체 지수를 잴 때 그 기준에 따라서 건강 여부가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기준이 될 때 하나님께 대한 생각은 우리의 신앙의 기준이 됩니다. 이러한 복음의 은혜는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없이는 죄인일 수 밖에 없는지를 깨달을 때만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없이도 별로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복음이 별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자연히 하나님도 별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마음에 모셔드릴 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내가 받아들이는 만큼 내가 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를 내가 따르고 받아들이는 만큼 그 의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그 죄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을 따르게 하신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는 만큼 우리는 삶 속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너무나 정직하고 진실하며 온전한 원리입니다. 속일 수 없고 숨길 수 업습니다. 그 복음을 받아들일 때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23절이 그 결말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죄사함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예배를 드려서가 아닙니다. 헌금을 해서도 아닙니다. 기도를 해서도 아니고 성경을 읽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안의 죄사함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의로움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왜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온전한 대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지 나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그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이유는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로 채워질 때에 우리는 구원을 얻는 자들이 됩니다. 그 의를 부인하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자신의 의로 대치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 요소를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때 우리는 그로 인해서 생명을 갖는 자들이 되며 구원을 얻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더욱 복음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의가 여러분의 삶에 넘쳐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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