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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덕행] 46고전 8;1-13 덕을 세우는 것과 양심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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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고전 8;1-13 덕을 세우는 것과 양심의 기준_1

 

 2014.11.9..주일오전.

 

*개요:    75덕행, 4극본, 6서신서, 5은혜-7실천,

[고전]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전]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고전] 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고전]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고전] 8: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고전] 8:7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고전] 8: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고전] 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 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고전]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고전] 8: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덕을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결심할 때 과연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덕을 행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그렇다면 결국 우상제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답을 내린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 대답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입니다. 그런데 대답은 간단하지만 그 과정은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율법에 의해서 먹지 않고 마시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단지 모세율법에 의해서 먹지 않고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면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복잡하게 설명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잡한 설명 속에서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혹은 먹지 않는 것, 마시지 않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서 실족하게 되는 혹은 실족할 수 있는 연약한 지체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초신자의 마음이기도 하고 내가 복음을 증거한 전도대상자이기도 하고 앞으로 전도될 수 있는 수많은 불특정 다수이기도 합니다. 본질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그들의 실족함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먹는 것, 마시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이것이 바로 덕을 세우며 덕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우리는 이와 관련해서 로마서14장을 보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8장은 이를 더욱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긴 본문을 그대로 함께 읽은 이유는 이 본문 자체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덕을 행하는 일의 원리를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전]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고전] 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우상제물에 대해서 쌓아가는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상제물과 관련해서 쌓아가는 사랑은 덕을 세우게 합니다. 지식이 어떻게 우리를 교만하게 합니까? 우상제물 그 자체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는 능히 이겨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우상제물을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나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쌓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교만도 높아집니다. 그러나 사랑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상제물에 대해서 사랑을 쌓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서 실족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고려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면 덕을 세우게 됩니다. 그들에게 덕을 세우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덕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상제물에 대한 입장이 달라집니다. 결국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들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세워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주님은 아십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우상제물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바로 그 사람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단지 말로만 우상제물에 대해서 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을 나타낸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온전해졌고 하나님은 그렇게 행하는 자를 알고 계십니다. 그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우상제물을 거부하게 되는 구체적인 계기는 선교사님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중국에서 1877년 제 1차 기독교 선교사 대회가 있었는데 그때 참여한 한국의 선교사들은 제사에 대한 금지입장을 채택했습니다. 이후 1890년 제 2차 기독교 선교사 대회에서도 역시 중국 원로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가 '제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상숭배이고 여호와 이외에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공경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라고 말했고, 이 말이 공감을 얻어서 역시 제사가 금지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의 선교사였던 아펜젤러는 이러한 1890년의 결정을 자신도 따른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1893년에 한국의 선교사 조사들이 모여서 이러한 논의를 다시한번 결의하였고 마펫선교사가 네비우스의 저술을 번역하여 위원입교인규도라는 세례문답서 및 생활안내서를 제작하였습니다. 이후 제사금지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자 선교사들은 기독교가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를 하는 종교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효문화운동을 일으키고 효도신학을 발전시키고 추도예배를 점차로 정착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교사들의 고민과 결정 속에서 그들이 이 우상숭배에 대한 문제 속에서 지식을 선택했는가 사랑을 선택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식을 선택했다면 제사문제에 대해서 너그러워지면서 오히려 교만하게 되어서 이전에 있던 유교와 불교로부터 쉽게 떨어져 나오지 못했겠지만 사랑을 선택했기 때문에 덕을 세울 수 있었고 오늘날 기독교의 전파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문제는 어느정도 일단락되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지식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단지 우상제물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연약한 지체의 마음을 실족시킬 수 있는 것이 어떻게 우상제물 하나 뿐이겠습니까? 더 많은 심각한 문제들이 많은 성도들과 많은 전도대상자들의 마음을 실족시키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목회자 야유회에서 저는 어떤 대형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최근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8월 로마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사건은 우리 기독교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서 이미지와 평판면에서 아주 안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현재 기독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안좋은 일들에 대해서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 기독교에서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목회자의 성추문, 교회의 횡령과 배임, 표절문제와 자격시비문제, 무리한 건축으로 인한 재정파탄 등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기독교와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안좋은 시각이 있는데 교황이 등장하면서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쐐기를 박아버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작은 교회들은 피부에 와닿는 것이 없지만 대형 교회들은 전도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기독교에 대한 비난과 공격은 왜 생겼을까요? 단지 교황이 방문했다고 해서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이 생겨났을 때 교황의 존재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여졌던 것입니다. 그러니 애초에 우리 한국 기독교에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이 생겨난 것 그 자체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문제들은 왜 생겼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러한 모든 문제들이 바로 우상의 제물처럼 사랑으로 덕을 세우려고 하지 않고 지식으로 교만하여졌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대부분의 문제가 표면화되기 전까지 교회 내부에서는 심증이 있고 의혹이 있고 거기에 대한 이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에 대해서 첫 번째 대응은 거부하고 차단시키는 것이었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커져갔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어떤 일이 터졌을 때 거기에 대한 두 번째 대응은 부인하고 외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었지만 그렇지 않다고만 하면 그냥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안이한 지식이 결국은 자신들이 문제를 알아서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교만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법당국이나 여론재판을 통해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 그제서야 심판을 받고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게 되지만 그때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상했고 실족했으며 덕을 잃어버리게 되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많은 하나님의 일들이 이러한 안좋은 사건들과 보도들과 소식들로 인해서 한순간에 다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너지지 않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그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하나님의 사업은 무너집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구속되며 성도들이 떨어져 나가고 교회가 부도나거나 갈라지거나 혹은 사라집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안타까운 것들입니다.

 

이제 우상제물 뿐만 아니라 생활문제, 윤리문제, 재정문제, 학위문제, 자격문제, 운영문제, 뇌물문제 등등 제반 성도들이 실족하고 시험들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지혜로운 선택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지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따르는 것입니다.

“[고전] 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고전]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하나님께 대해서 지식있는 한 사람의 성도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나 악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거나 뇌물을 받거나 컨닝을 하거나 표절을 하거나 자격을 위조하거나 사기행위를 하거나 남을 속이거나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거나 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신앙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담력을 얻게 되어서 믿음있는 사람이 저렇게 하는 것을 보니까 나도 더 담대하게 우상의 제물을 먹고 악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고 뇌물을 받고 컨닝을 하고 표절을 하고 자격을 위조하고 사기행위를 하고 남을 속이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결국 하나님에 대한 지식있는 그 사람의 악한 행위가 지식마저 없는 다른 사람에게는 스스로 멸망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멸망하게 된 사람은 사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믿음의 형제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멸망하게 되어버리면 그리스도의 자녀를 멸망하게 한 것이니 그 일을 자신있게 한 사람은 얼마나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어떤 면에서 사회적으로 욕을 먹고 세상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법의 심판을 받고 끝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가서도 하나님의 자녀될 수 있었던 사람을 실족시킨 것에 대해서 심판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전도하고 주의 일을 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지금까지 기도하고 예배드린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문제가 아주 심각한 일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수치스러운 일을 행하고 그로 인해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횡령과 배임으로 구속을 당하기도 하고 대기업 회장이 부정직한 기업활동으로 인해 구속되고 벌금을 물게도 됩니다. 또한 고위 공무원이 개인적인 문제나 가정의 문제로 해임당하기도 하고 국군의 지휘관인 고위 장성이 음주로 물의를 일으켜서 전역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얼마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께 범죄하는 일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더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이세상 뿐만 아니라 저세상에서도 처벌을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고전] 8: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래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더욱 분명하게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 지식으로 판단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 모든 것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그런다고 내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도 아니고 내 구원에 하등의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행할 바는 분명합니다. 또는 내 자신을 겸손하게 생각해서 나는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고 권사도 아니고 집사도 아니고 일개 성도일 뿐이니 아무렇게나 해도 되지 않는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놀라우신 구원의 혜택을 받는 그분의 자녀임을 생각한다면 역시 우리가 행할 바는 분명합니다. 13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그리스도를 중요하게 여겨서 그분께 죄를 짓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덕을 세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을 결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악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도 않고 컨닝을 하지도 않고 표절을 하지도 않고 자격을 위조하거나 사기행위를 하거나 남을 속이거나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거나 하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을 결심할 수 있습니다. 그 행위가 단지 율법을 어긋나서가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게 됩니다.

 

이 양심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었겠지만 이제 그 기준을 더욱 높여보십시오. 그래서 덕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해 보십시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하는 것처럼 살지 못해서 억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기뻐하시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더욱 온전해지고 아름다워지고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욱 세워나가게 되는 귀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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