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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온유] 40마 11;28-30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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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1;28-30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_1

 

 2014.8.17..주일오전.

 

*개요:    72온유, 5복음서, 3분석, 5은혜-7실천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가장 온유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분보다 우리가 더 온유하신 분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분보다 더 완전하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온유를 실천한 사람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의 모습을 온전히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유함의 결정체이신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온유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온유함을 갖는다는 것이 단순히 인격의 형성이나 자기개발이 아니라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온유함의 완성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없이 온유하기만 한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자신이 타고난 천성과 잘 교육받은 가정환경 속에서 온유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장점은 하나님의 나라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 스스로 칭찬이나 부러움은 얻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나라나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따르게 되고 그래서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예수님의 온유함을 생각해 볼 때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온유하심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자신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온유하심은 단지 정적인 의미에서 온유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동적인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알게 하시는 온유하신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게 배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중학생때 교회에서 성극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영문 밖의 길이라는 성극이었는데 주기철 목사님의 일대기를 그린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교회에는 연극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또한 아역배우 출신인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제대로 연극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연극에는 출연하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는데 내용 자체가 매우 심도있는 것이다 보니까 여러 명이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몇명만이 출연해서 주기철 목사님의 진정한 신앙심과 헌신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또한 연극지도 선생님이 의욕이 아주 넘치셔서 대본암기에서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인 연기지도까지 그 모든 것을 다 알려주셨기 때문에 초보자도 연습을 통해서 나중에는 연기를 잘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맡게 해준다고 해서 좋아해서 참여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일본순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연극에서는 주기철 목사님과 일본순사의 갈등이 연극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주기철 목사님은 저보다 한참 선배인 고등학교 형이 했고 저는 그보다는 조금 못한 일본순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차이는 너무나 컸습니다. 연극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등장하기는 하는데 그동안 저는 계속 악역이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연극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는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여하튼 연극 그 자체로만 보았을 때 연극지도 선생님은 전반적인 것에서부터 세밀한 것까지 하나하나 다 지도를 해주셨습니다. 그 지도를 받으면서 연극을 처음 해보는 초심자에서 그럭저럭 볼만한 연극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자세 하나하나, 시선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를 다 지적받고 수정받으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 저 선생님은 정말 연기를 잘하신다, 아예 선생님이 직접 연기를 하시면 어떨까?’ 잘하는 것으로만 따지면 제자가 선생님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잘하는 것으로만 따지면 차라리 선생님이 대신 무대에 서는 것이 더 좋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잘하는 것이 무대에 서는 진정한 기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삶속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진정한 온유함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십니다. 하지만 대신 살아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대신 살아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이 쉼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29...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단지 예수님처럼 살게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살 때 비로소 예수님이 얻으셨던 그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스럽고 분주하고 어려웠던 마음이 쉼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해서 대신 살아주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을 때의 그 영광을 바로 우리가 누리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서 얻게 하시는 것이 생기기 전에 우리들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그 이전의 모습을 우리는 27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그전에 우리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었습니다. 그 짐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겪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쉼을 바라고 평안을 바라는 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주님께로 오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쉬게 하시고 평안을 주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들에게 임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통해서 비로소 온전한 평안과 휴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은혜를 얻게 되기 위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주님께 배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연극을 하다보면 대사가 있습니다. 대사에 알맞는 표현이 있습니다. 표정이 있고 손동작이 있고 태도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연극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복됩니다. 연습을 통해서 반복하고 또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정말 나의 표현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공연당일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표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연습과 훈련에 의해 이미 나의 것이 되어버린 수많은 대사와 표현들을 연기로 풀어내게 됩니다.

우리의 삶속에 이러한 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태도가 있습니다. 이전에 내가 온유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이 있다고 해 보십시오. 그것은 결코 배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이전에 내속에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따로 배울 필요가 없이 내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악한 죄의 본성입니다. 그 악한 죄의 본성대로 살았을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으로부터 점차 멀어집니다. 그속에서 가족을 잃어버립니다. 그속에서 친구를 잃어버리고 성도를 잃어버리고 동료를 잃어버립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새로운 말과 새로운 태도와 새로운 행동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쉼과 진정한 평안과 진정한 관계의 기쁨을 갖게 할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 배우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원래 있던대로 행동하면서 살아가시겠습니까?

 

주님을 따라서 주님께 배워보십시오. 주님은 놀라운 온유와 겸손하심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뭐라고 말해야 할 지를 알려주십니다. 또한 그 말을 어떤 태도와 어떤 모습으로 전해야 할 지를 알려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께 배우려고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님을 기억하고 예수님께서 갈등의 순간에 나에게 어떻게 대응하라고 가르치실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의지해야만 합니다. 지혜를 달라고 온유함을 달라고 겸손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온유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순간 우리에게 놀라운 온유를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십니다. 비로소 주님으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전 수련회에서 성경공부 시간에 윤두용 장로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장로님께서 대대장시절에 맡은 대대는 유격교육을 시키는 부대였는데 군의관들이 유격훈련을 입소했다가 자꾸 빠져버리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사단에 보고를 했는데 그게 문제가 되어서 전체 평가가 나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자 대대장 위에 있는 여단장이 그런 보고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장로님은 다음번에도 또 정직하게 보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여단장이 화가 나서 참모들을 이끌고 대대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오자마자 막 화를 내면서 대대장을 그만 두게 하겠다고 하면서 열을 내는데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셨답니다. ‘하나님,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요...’ 그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얼마동안 화를 내다가 어느 정도 누그러 들면서 여단장은 다시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선택을 오직 주님께만 의지할 때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우리 자신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도록 준비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래도 순간 순간 온유하게 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을 힘들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항상 주님과의 관계는 인격적이고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은밀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자연히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인 것을 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라는 말입니까?라고 되묻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는 식의 말보다도 기도를 10분하라, 성경을 5장 읽으라, 예배를 2번 드리라, 새벽기도에 나오라, 금식기도를 해보라 등의 행동지침이 더 쉽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관계가 그렇게 행동양식에 따른 것이 되어버리면 되어버릴 수록 더욱 하나님의 관계는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만 의식하게 됩니다.

제가 수영을 배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얼굴을 물에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할만 했지만 얼굴을 물에 담그는 것만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얼굴에 물이 닿으면 심장이 멈춰버리는 유형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굴을 물에 넣지 않고서는 도저히 수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물속에서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숨이 멈춰지는 것에 의식하지 않고 목표지점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만을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익숙해졌고 비록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아도 억지로 호흡을 하면서 수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존재하고 그 관계를 의식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면 믿을 수 없다는 연약한 인간의 의식속에서는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차라리 보이는 대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식의 말이 더 와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부분을 잘 참고 따르다 보면 그것이 훨씬 더 쉬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을 물밖으로 내놓고 수영을 하는 것보다 얼굴을 물속에 넣고 하는 수영이 더 잘 되는 것처럼, 지금은 힘들지만 하나님을 의식하려고 하다보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그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할 때 그것이 하나의 멍에가 될 수 있지만 그 멍에는 쉽다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하려고 할 때 그것은 어려운 짐일 수 있지만 그 짐은 가벼운 짐입니다. 진짜 무거운 짐은 예수님께서 지신 것이고 가벼운 짐은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라오게 하셨고 예수님을 따라서 함께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짐을 지고자 한다면 그것은 다가올 모든 어려움을 미리 해결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지금은 힘들지만 점차 변화될 놀라운 발전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온유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나 자신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모든 상황 속에서도 좋은 것입니다. 또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나아갈 때 순간 순간 내 성질대로 하고 싶고 내 기분대로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얼굴을 물속에 넣는 것은 본성상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속에서 꾹참고 주님을 바라볼 때 점차 익숙해지고 점차 가능해지고 점차 그것이 나의 실력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은 주님을 통해서 변화된 사람들이 되고 온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자들이 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더 많은 일들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 수련회때 세째날 계곡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강화도 함허동천이라는 계곡에 갔는데 그 시기에는 비가 안와서 물이 별로 없었습니다. 날은 덥고 계곡에는 물이 별로 없어서 그렇게 시원하지는 않은데다가 적절한 자리를 찾을 수 없어서 우왕좌왕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 곳을 잡았는데 그곳은 너무 경사가 져서 편안히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먼저 와 있던 다른 사람들이 투덜투덜 불평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는 한번 자리를 옮겼는데 그 옆에는 벌집이 있어서 매우 위험했습니다.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3번째에야 비로소 새롭게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도 역시 그리 좋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다들 묵묵히 따라준 것에 대해서 저는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온유함으로 짜증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잘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우리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로 만듭니다. 하지만 그속에서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께 배우고자 할 때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함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그분 자신이 바로 그러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온전함을 우리도 누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 은혜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붙들어서 마침내 진정한 예수님의 온유함이 여러분의 삶속에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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