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는 다른 제자들이 알려주는 것을 들으면서도 스승인 엘리야를 따릅니다. 그는 길갈로 갔고 벧엘로 갔으며 여리고로 갔고 마지막으로 요단으로 갔습니다. 갈 때마다 다른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취하실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엘리사는 계속해서 엘리야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그 다른 생도들에게 ‘잠잠하라’라고 말한 것을 보아서는 그들이 엘리사를 만류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엘리사가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게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엘리야를 따르는 것은 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묵묵히 엘리야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제자들은 가능성있는 길을 찾아 떠나가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보이고 그것이 보장된다면 따라가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을 포기해버립니다. 얼마전 길에서 만난 한 성도는 자신이 꽤 멀리 교회를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는 누가 들어도 알만한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멀리 교회를 다니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은혜’받기 위해서 간다고 했습니다. 그냥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말이었지만 요즘 시대에 이런 말은 너무나 위험한 말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댓가로 그는 ‘사역’을 버리고 ‘책임’을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어서 나아간다는 것은 언제든지 그것을 얻을 수 없으면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정말 위험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다른 제자들은 재빨리 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나름대로 간파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선생을 쫓아가느냐고 힐난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주석은 이 부분이 엘리사를 위로하고 엘리야의 죽음에 대해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엘리사는 그들에게 잠잠하라고 합니다. 그 말이 위로이건 혹은 회유이건 간에 엘리사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엘리야를 따라갔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그의 목표였을까요? ‘은혜’를 받는 것이었을까요? ‘은사’를 받는 것이었을까요?
그가 엘리야를 따르는 이유는 그가 언급한 맹세의 근원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였습니다. 이것은 ‘만약 자신이 맹세를 지키지 않는다면 사시는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주시며 혼이 살아 있는 당신이 내게 벌을 내려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그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가 몸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어 계속 존재할 것임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한낱 ‘자기가 받을 은헤’를 위해서 동행하는 것이 아니고 ‘곱절의 은사’를 얻기 위해 동행한 것도 아니며 대단한 어떤 사역의 성공을 위해서 동행한 것도 아닙니다. 엘리야와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존해서 그와 함께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가 바랬던 것은 엘리야이며 하나님이었습니다. 엘리야와 같은 삶이었으며 하나님과 연합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매우 극단적인 신앙생활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쪽 극단에는 목회자 중심의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할 사역과 상급과 책임을 포기해버립니다. 또 다른 극단에는 사역중심의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와의 관계와 연합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이 행하고 있는 극히 이기적인 사역만이 있습니다. 그 어느 것도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연합의 목표는 관계성에 있지 어떤 그 댓가로 얻을 수 있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엘리사가 왜 다른 선지자의 생도들이 그렇게 반복적으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취하여 가실 것이라고 말을 해주었어도 흔들리지 않고 엘리야를 따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엘리야가 걸어갔던 삶을 살아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우리에게도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가 없이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목표가 한낱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목표는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하나님을 따르려고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목표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계속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련과 시험과 고비를 이기고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계속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가려고 하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역사하심을 믿고 함께 움직일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제가 길에서 만났던 그 어떤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우리들에게서도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