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양선] 40마 18; 1-6 예수님이 세우신 어린아이의 의미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보기]
40마 18; 1-6 예수님이 세우신 어린아이의 의미_1
2017. 5. 7. 주. 주일오전
*개요: 어린이주일, 66양선, 5복음서, 1적용 [마]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마]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어린이에 대해서어떻게 생각할까요? 5월은 은근히 돈이 많이 나가는 달입니다. 그럴때 부모님에게 어린이는 돈을 많이 써야 하는 자신의 자녀를 의미합니다. 일반인에게 어린이는 미성숙한 초등학생까지의 아이들을 의미합니다. 중고등학생에게 어린이는 자신들의 과거의 모습이자 좋았던 때가 다 지나갔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어린이가 의미하는 바가 다 제각각인데 성경에서 보여주는 어린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어린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어린이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모범적인 기준이라고 하셨습니다. 놀이동산에는놀이기구가 있고 이 놀이기구에는 꼭 그 기구를 탈 수 있는 기준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대개 그 기준은키에 해당하는데 기구에서 요구하는 키가 되지 않으면 그 놀이기구를 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키의조건에 맞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 입장하는 곳에는 키를 재는 도구가 있습니다. 그 도구에 자신을 맞춰보아서맞으면 그 기구를 탈 수 있지만 틀리면 탈 수가 없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도 입장기준이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린아이’입니다. 그렇게 어린아이보다 나아야지 그런 어린아이들 보다도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어야지 어린아이보다도 못한 믿음이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어떤 열등한 존재로 결코 보시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은예수님이 보실 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모범적인 기준이 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어린이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고 열등하고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하나님께서는 어린이를 진실하고 겸손하며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십니다. 분명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도움이 필요하고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속에서 우리가 간과하는점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어린이들에게서 배울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예수님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에서큰 자’라는 개념은 그것이 더 좋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라는 의미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제자들이 바라고 어떻게 해야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는가를 예수님께 물었을 때예수님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바로 천국에서 큰 자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거짓말을하신 것이 아니고 그 진실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주셨을 때 핵심은 바로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핵심이 바뀌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들어가는 자가 어떤자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어린아이를 세워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의 모습이고 천국에서 큰 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에서 큰 자의 모습은바로 이래야 하는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따를 때 정말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천국에서큰 자의 모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생활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말이 더 익숙한 말이겠지만 정말 아이들에게서 배울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서만 배울 수 있기도 합니다. 그가 어린아이기 때문에 갖는 순수함과 진실함, 겸손함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순수함이나 진실함, 겸손함은 다 사라지고 중2병을 거쳐 대학입시에 치어서 살게 되면 예전의 어린아이다운 모습은 다 없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어린아이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우리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아직 때가 묻지 않고 아직 의심이나 불신이 없는 새하얀 종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그 예쁘고 아름다운 어린이의 모습을예수님은 본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가 나중에 나이가 들더라도 그러한 순수함과 진실함,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로 나타나게 된다고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셔서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어린이주일에 우리도 바로 그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도어린이를 세우시고 말씀해 주시는 것을 놓치지 말고 알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린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에 대해서말해주어야만 한다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또한 신앙적으로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나라’나‘천사’나 ‘사탄’에 대해서 말해준다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뿐만 아니라‘천지창조’나 ‘노아의방주’나 ‘무지개’에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주시겠습니까? 우리는 어린이의 순수함과 올바름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한 선생님이 성경공부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있는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것이아니에요.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고 홍해를 건너간 사건이 나오지요. 하지만 사실은 15센티 깊이 밖에 안 되는 갈대밭을 건너 간 것이지 진짜 바다를 건너 간 것이 아니랍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어떻게 바다도 아니고 15센티 깊이 밖에 안 되는 갈대밭에그 많은 애굽의 군대가 다 빠져죽을 수가 있었나요?" 선생님보다 학생이 더 순수할 때가 있습니다. 어른은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좀 변질되거나혼란에 빠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아직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어른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의 큰 자’라고 하신 것은 어른인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에게서 배워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의 무지함과 부족함이 문제가 아니라 어른의 너무 많이 아는 것과 넘치는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어린이 시절을 끝냈다고 해서 안도할 것이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항상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겸손함을 가져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서 배울 것은 단지 그들의 마음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를 통해서도 배울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통해 그들의 존재 자체속에서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마]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예수님은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어린 아이가 외모가 어떻거나 성격이 어떻거나 특징이 어떠한지와 아무 상관없이 오직 어린 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영접할 때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것과 동일하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가 단순히 어린아이라서가 아니라 그를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했기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본 사랑의 이유에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되었습니다. 로마서 14장 15절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망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롬]14: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러니 사랑으로 행하는 이유는 오직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행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도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는 그 존재만으로도예수님과 같은 중요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린아이를 예수님의 이름을 생각하며 그 이름을 기억하며영접하고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이고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 어린아이가 위험에 빠져있을 때 어린아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어린아이가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할 때 어린아이가 아프거나다쳤을 때 그는 영접이 필요한 상황이 됩니다. 그럴 때 그의 연약함에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결코 그러한 어린아이의 문제를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그 어린아이는 아직 그를 창조하신 주님의 손길이 남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갓 태어난 아기는 주님이 막 창조를 끝내신 최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막 만들어내신 정말 신성한 창조의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갓난아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있습니다. 오묘한 창조의 섭리와 놀라운 창조의 능력이 함께 있습니다. 그러한아기가 어린아이시절을 보내기까지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도우십니다. 그가 그 시기를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잘 보내고 자라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을 때 그의 존재는 하나님의 자녀가됩니다. 아직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까지 하나님이 이모저모로 부족하고 연약한 그 어린아이를 돌보실 때에 그 어린아이가 하나님의 창조물임을깨닫고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그를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할 때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선행과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한 것을 잊어버리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잊어버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예수님의 돌보시는그 어린아이를 영접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이 심판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여기서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는 바로앞 절에서 말씀하신 어린아이를 계속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주님을 따르는어린아이이고 그래서 주님께서 불러 세우실 수 있었던 것이며 그러한 어린아이가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를 때 그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그것이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 심판은 차라리 연자맷돌을지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을 수 있는 혹독하고 엄중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 아이가아무에게서도 영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실족하게 되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어서 그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하심이 침해되고 예수님이 함께 하심에도불구하고 그에게 악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에 대해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이전에 비교해서 정말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아동학대에 대한 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통계에의하면 계속해서 아동학대가 더욱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사건사고들도 각종 매체를 통해서계속 보도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연령층도 전 연령에 고르게 걸쳐 일어나고 있고 유형도 매우다양합니다.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과 유기 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아동학대를 하는 주체도 친부모, 양부모, 친인척, 모르는 사람 등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장소도 집, 어린이집, 유치원, 놀이터, 길거리등등 언제 어디서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약 어린아이들이 힘이 세고 의사표현이 분명하고 자기를 보호할 수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이 약하고 여리고 취약하기 때문에 더욱더 나이든 사람들에 의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양육하시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으셨고그들을 성장시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귀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일군으로 세우고자하십니다. 천국의 큰 자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어린아이됨을 통해서 어른들을 깨우치시고 배우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연약할 수 밖에없고 부족할 수 밖에 없고 순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적인 약점이지만 사실 그것은그들의 기능적인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어린아이들을 인간을 날때부터강하게 만들지 않으시고 왜 많은 연약함을 주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속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양육하심과함께 하심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그러한 어린이에게서 배우고 깨달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속에 무지와 부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함과 진실함이 있습니다. 그것이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에게서 배울 수 있고 또한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이전에는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였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과 함께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를 영접한 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영접해 주셨고 친척들이 영접해 주셨고 이웃들이 때로는 사회의 어른들이 우리를 영접해 주었습니다. 그분들이 만약 하나님 안에 있다면 자신들이 행한 모든 선행에 대해서 분명한 하나님의 상급과 축복을 누리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를 돌봐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나이든 사람으로서 어린아이들을어떻게 대해야만 하는가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어린아이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해야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한 상급과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보호해주고 지켜주고 알려주고 키우고 먹이고 입힐 때 우리는 바로 예수님을 그렇게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러한 우리의 양선을 너무나 칭찬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를 통해 배우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그속에서우리가 어렸을 때에 우리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시는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그 은혜를 잘 간직하여 우리가 만나는 모든 어린아이에 대해서 주님의 이름으로영접하고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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