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은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그녀들은 그 무덤속에서 뉘여있는 예수님의 시신을 발견하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덤에는 아무도 없었고 텅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덤이 비어있고 시신이 사라진 것은 사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주인없는 무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오히려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질해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초현실적으로 움직이셨지만 여자들은 매우 현실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은 누군가에 의해서 도둑맞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근심했고 걱정했습니다. 도둑질 당한 시신은 그야말로
허탈함과 공허함 그 자체였습니다. 죽은 다음에도 편안을 얻지 못하는 불쌍한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들이 믿건 믿지 않건 간에 말입니다. 그들이 무덤에서 시신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걱정하고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비해서 불쌍하고 어리석고 안돼 보였습니다. 사실 그들 옆에 있던 천사는
바로 그러한 그들을 위한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에도 천사는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밝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다시 부활하셨을 때에도 역시 천사는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우리들에게도 전해집니다. 우리들도
그 증거를 통해 확실하고도 분명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우리도 주님 자신의 직접적인 말씀을 듣지만 주님이
보내신 천사들을 통해서 주님에 대해서 들을 때 우리는 더욱 주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수행원과 경호원을
통해서 귀빈의 존귀함을 알수 있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천사의 존재와 증거를 통해서 예수님의 존귀함과 엄위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부활하셨고 천사들은 그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찬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이와 같은 주님의 부활하심은 결코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실이었고 손으로 만질 만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정말로
부활하셔서 그들에게 평강의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제자들은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사망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던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보다도 더욱 큰 능력을 보여줍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겨냈기 때문에 그것은 죽음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였지만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의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부활하심을 통해서 자신이 세상 죄로 인해서 대신 죽으신 대속주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온전한 의인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사건은 우리에게 가장 기쁘고 감사하며
영광스러운 시간이 됩니다. 부활로 인해서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으며 우리의 구원이 분명하며 우리의
영생도 확실함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가 주님처럼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열매이시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주님의 부활을 따라서 부활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부활의 영광은 결코 그냥 얻게
된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영광이 있기 까지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부활의 영광을 취하시기까지 예수님이 감당하셔야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주님이 이루셨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속적인 죽음의 완성이 비로소 영원한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천사는 말하기를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이루심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도 역시 말씀하신
것을 이루심이었습니다.
“요한복음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주님은 십자가에서의 모든 일을 이루신뒤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는 말씀은 얼마나 주님이 이 모든 일을 간절히 이루게 되기를 원하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주님은 정말 십자가의 고통의 길을 이루시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셨습니다. 주님은 정말 그 죽음의 길을 최선을 다해서 가시기 위해서 온힘을 다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냥 죽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최대한 주님을 살려놓은 상태에서 모진 고통과 괴로움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고통을 겪고 가능한 오래 괴로움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인간의
죄악성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우며 잔인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할 수록 인간의 죄의 완악함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받으셨습니다.
조금도 피하지 않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조금도 거부하지 않고 모든 죄악을 다 몸에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모든 일을 이루셨을 때, 그 때는 마침내 죽을 수 있는 때였습니다. 그렇게 비로소 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주님은 이전에 행하신 말씀만 이루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해야하는 모든 행동도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죽음을 이루시고 그 다음에 부활을
이루셨을 때, 이렇게 모든 것을 이루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이
죽을 힘을 다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모든 영광 중에서 다시 부활하셨을 때 주님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모든 일을 행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러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던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두 가지 예수님의 이루심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던 것은 바로 우리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피보다 진하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했습니다. 그래서 죽으신지 사흘만에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부활은
죄사함을 받은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부활이었습니다. 또한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부활이었습니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에 다시 부활하셔서 죄사함을 받은 우리들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삶속에서 이러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식을 살리고 자신은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그 선택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지만 바로 그 본성을 거스리면서 어머니는 아기의 생명을 살립니다.
뉴욕에 사는 36세
엘리자베스 조이스는 2010년 항암치료로 인해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암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듬해 여름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임신 한달 만에 암이 재발했고 항암치료는 태아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던
것입니다. 아기를 선택할 것인가 항암치료를 선택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그녀는 아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암치료를 중단했습니다. 임신 3개월째에 결국 암은 온 몸으로 퍼져갔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버텼고, 출산
예정일보다 두 달 일찍 제왕절개 수술로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를 낳은지 6주 만에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기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그녀는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포기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었습니다.
아빠의 부활도 있습니다. 크리스 가드너라는 사람은 그는 아내와 헤어진 후 홀로 아들을 키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증권회사 인턴쉽 프로그램에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무급으로 일을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홈리스 보호소에서 살아가면서 그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노력하고 노력한 끝에 마침내 그는 증권 브로커가 되어서 백만장자가 됩니다. 실제로 있었던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아빠의 부활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그 어떤 이야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주님께는 제자들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들을 찾아오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위해서 죽으신 대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물론 우리들 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혜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위해서 부활하신 대상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또한 우리들 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바로 우리를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가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구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랑이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빈무덤을 찾아왔던 여자들에게 천사들이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이야기해준 것처럼, 부활절을 맞이한 우리들에게 성경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주님이 갈릴리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부활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마17: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23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근심하였으나 사실
그들은 죽으심만 보았습니다. 살아나는 것을 보았던 것이 아니라 죽으시는 것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주님은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죽으심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참으셨습니다. 비로소 그 말씀을 온전히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이루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이 바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내하시며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참으시면서 우리를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이전에도 그 말씀을 이루셨고 앞으로도 역시 그 말씀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부활하게 하십니다.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ㄷ)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부활의 아침을 맞이한 오늘 이시간, 앞으로 계속해서 그 말씀을 이루실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그
주님을 따라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모습이 우리에게 기억되고 각인되고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일을 감당하셨던 주님을 통해 주님이 진정으로 바라시고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던
바로 그일,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받으며 주님의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그 일이
이루어지를 소원합니다. 또한 이러한 목표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총에 여러분의 삶속에 충만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