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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평] 43요11;38-44 평안으로 이루어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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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11;38-44 평안으로 이루어지는 것들_1

 

 2014.3.16.주.주일오전.

 

*개요:    63화평, 3분석, 5복음서, 5은혜-6결심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접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그것을 통해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그 무엇이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앞다투어 그 새로운 일에 뛰어 듭니다. 예전에는 장래 희망을 선택하라 했을 때 초등학생들은 주로 대통령, 군인, 과학자 등을 꼽았습니다. 그 다음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에 의사, 판사, 교사 등을 원했습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은 뭔지 아십니까? 1위가 가수였고 2위가 탤런트였습니다(이러한 목표는 앞으로도 또 변하겠지만 아마 목사가 1위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렵기로 따지자면 안힘들고 안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결과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지금 당장은 어렵고 힘들어도 나중에 얻게 될 놀라운 결실을 생각하면서 참고 인내하고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평안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해도 왜 평안을 얻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평안을 얻으면 무엇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면 평안을 이루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평안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평안을 얻게 되면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평안, 혹은 화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들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각각 예수님의 말씀을 이루는 일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순종하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평안이 있다면 정말로 그렇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첫 번째 성취는, 39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돌을 옮겨 놓으라’라는 말씀입니다.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는 것은 돌로 막혀진 무덤을 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 뉘여 있는 무덤을 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지나간 과거와 숨겨놓았던 지난 날을 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평안할 때 우리는 이 말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실 때 돌을 옮겨 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안이 없을 때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마르다도 말했습니다.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우리의 삶에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능력없음과 연약함이 다 드러난다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실 때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다면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서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자신이 처녀로 잉태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이 처녀이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잉태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도저히 그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천사 가브리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1:37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가브리엘 천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셨으나 못하신 것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잘 알지 못하더라도 가브리엘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신있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통해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를 떠나소서’라고 하였지만, 주님은 ‘무서워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돌을 옮겨 놓을 수 없는 101가지 이유를 댄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단 한가지 이유로 그 모든 이유를 능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우리 욕심과 우리 탐욕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두려워하고 낙심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강력을 보여주실 때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나타나고 그 일에 대해서 우리가 순종하지 못할 때 나타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붙들고 ‘그래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어.’라고 결심하며 주님을 따를 때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성취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마리아는 처녀로 잉태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었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는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평안으로 인해서 놀라운 일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평안을 가질 때 이룰 수 있는 것은 43절에서 주님이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하신 말씀을 이룰 수 있습니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예수님은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그 안에 있는 자 나오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죽은 자 나오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사로가 누군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나사로는 이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평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그렇게 평안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나사로가 이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가 살아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주님은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난 나사로의 시체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나사로가 수면상태에서 깨어난 것이 아닙니다. 혹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상태에서 이 말씀을 듣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 예수님이 능력으로 그를 다시 살리신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믿음 속에서 나사로는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죽어있었기 때문에 나오라고 할 때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는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 속에서 그는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보자기처럼 네 귀가 매어 드리워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그릇 속에는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첫 번째에는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행10: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 말씀에 순종해서 그 부정해 보이는 것들을 잡아 먹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육체적으로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심정적으로 죽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자아가 죽고 자신의 고집이 죽고 자신의 욕심이 죽을 때에 비로소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베드로는 그 말씀에 따라서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지만 그가 죽었기 때문에 그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베드로는 그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 당시에는 그것이 죽기보다도 힘든 일이었지만 그가 죽었을 때 비로소 순종하여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의 성질이 죽었을 때 비로소 평안함을 누릴 수 있었고 그럴 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일었습니다. 비로소 그는 자신의 고집과 아집과 편견에서 비로소 나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제가 어떻게 성경적 상담을 배우게 되었는지를 얘기해 드렸던가요? 개척1년만에 스트레스로 심각한 괴로움을 겪던 저에게 성경적 상담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2000년 제가 교회를 개척한 그 해에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성경적 상담학 박사과정이 한국에 들어왔는데, 저는 처음 부탁을 받고 관련 영문서적 한권을 번역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너무 은혜를 받아서 제 괴로움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이후에 이 과정을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공부를 하려고 보니 학비가 너무 비쌌습니다. 그래서 하고는 싶지만 할 수가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는 꼭 그 성경적 상담을 공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돈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는 무슨 일을 해서라도 돈을 만들어서 그 공부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제안한 것은 제 노트북을 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싫다고 거부를 했고 사모도 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는 기도원까지 갔습니다. 기도원에서 기도한 것은 엄밀히 말해서 상담공부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가 아니라  노트북을 팔 것인가 말 것인가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받은 응답의 결론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상담공부를 하기 위해서 결국은 저의 고집이 죽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돌아와서 노트북을 팔고(그때에는 금방 팔리더군요), 1학기 등록금을 내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매학기 등록금을 그때 그때 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노트북도 다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2005년도에 졸업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때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그때 제가 하나님께 순종해서 상담을 공부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좋은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아가 깨져야 평안을 누립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부르심 앞에 우리 자신이 죽고 주님이 살 때 마음이 아주 편합니다. 그렇게 죽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긍정적인 부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죽은 사람의 안락함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분주함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우리를 부르시는 나를 부르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부르시기 때문에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어 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수 있고, 주님이 부르시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에 여러분의 이름을 대입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해 보십시오. ‘아무개야 나오라’ 바로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평안에 거할 때 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우리가 평안을 갖게 되면 이루어지는 것은 44절에서 주님이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주님은 나사로가 살아나서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얼굴은 수건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우리식대로 말한다면 염을 해서 돌무덤에 안장되어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묻은 것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을 돌무덤에 안장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것은 너무나 놀랍고 기쁜 일이지만 그는 여전히 수족에 베에 감긴채 얼굴은 수건에 싸인 채로 걸어나왔습니다. 살기는 살았지만 그의 모습은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을 때 입고 있던 수의는 곱게 개어져 있었고 부활하신 모습은 눈부시고 아름다우신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사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칠고 투박하며 아직 온전하게 살아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에 대해서 예수님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 모습을 풀어도 괜찮을까요? 놓아 다니게 해도 괜찮을까요?  생명이 다시 살아나기는 했지만 외모가 갖추어지지 않은 이 나사로를 풀어 놓아 다니게 해도 괜찮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그를 묶어 놓습니다. 다시 가둬놓습니다. 살아있기는 하지만 아직 준비가 안된 그 살아난 사람을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폄하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의 근원에는 우리의 평안하지 않음이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평안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 평안하지 않음에는 우리가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믿음의 없음이 있습니다. 그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간과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나사로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셨고, 지금도 영적으로 죽은 그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여기에 있던 사람이나, 여기에 있는 사람이나, 여기에 있을 사람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님의 피값으로 사신 구원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성장을 저해하고 그 발전을 가로막고 그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신뢰하면서 평안을 누릴 때 비로소 우리는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는 말씀을 따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렇게 평안함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했던 자들이 나옵니다.

“히11: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그들이 믿음으로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마음이 평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불확실한 상황이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평안이 필요합니다. 그 평안으로 우리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 믿음으로 주님을 얻게 됩니다. 그 주님으로 이 모든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평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평안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을 기억하며 평안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그 평안을 누리십시오. 그 평안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주님의 평안에 거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이러한 평안을 사모하며 추구하며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속에 놀라운 생명, 놀라운 변화, 놀라운 발전이 나타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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