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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사랑] 62요일4; 10-17 자신의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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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요일4; 10-17 자신의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으로_1

 

 2014.1.12.주.주일오전.

 

*개요:    61사랑, 3분석, 4서신서, 5은혜-6결심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 세상 사람들은 여러가지를 말합니다. 사랑이란 느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속에서 사랑이란 애정이다, 감정이다, 혹은 열정이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사랑이란 육체로, 혹은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사랑이란 주는 것, 혹은 받는 것이다라고도 말합니다. 사랑에 대한 수많은 정의 속에서 우리는 그중 하나가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해보았고 하고 있고 언젠가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사랑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사랑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기 자신의 사랑, 다른 사람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생겨납니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사랑의 주체가 누구인가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만 빠져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의 사랑속에 머물러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위해서 노력하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대상과 그 주체가 결국에는 동일해지게 되는 이유는 인간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라봅니다. 또한 그것을 보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사랑과 다른 사람의 사랑과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중에서 어디로 나아갈 수 있는가 하면 자기가 무엇을 더 사랑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지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면 자기 자신의 사랑으로 나아가게 되겠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더 한다면 다른 사람의 사랑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더욱 노력한다면 결국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속에서 우리의 문제는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군가를 알고 있는데 그는 너무나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사랑에 푹빠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그 자신의 사랑에서 나와서 다른 사람의 사랑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까요? 또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까요? 원래 인간은 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자기 자신의 사랑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날 때부터 이러한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랑은 가지고 태어납니다. 인간의 죄성이 그 핵심입니다. 그래서 굳이 그런 사랑은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사랑에서 벗어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사랑이 주는 모든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이기적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이 이기적이게 되면 모든 분란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끼리 싸우거나 부모님 말을 듣지 않게 되거나 밖에 나가서 사고를 치거나 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이기적인 자기 중심적인 사랑을 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자녀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남편이나 아내는 자신의 배우자가 자기 중심적인 사랑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사람들은 전부 이기적인 사랑을 하지 않고 이타적인 사랑을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친구나 이웃이 자기 중심적인 사랑을 할 때 보기에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가 조금만 자신을 덜 사랑하면 좋을 텐데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합니다. 그로 인해 친구나 이웃에게서 외면받고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정말 자기 자신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합니까?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끊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그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안타까움은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결코 이 모든 자기 중심적인 사랑의 온전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습니까? 교회도 자기 자신의 그 이기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다니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순히 교회에 나오는 것 이상의 신앙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교회를 나오게 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그냥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무조건 교회에 데려다 놓기 위한 방법은 무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하면서 교회에 나오게 한다면 그것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면서 정말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그가 자기자신의 사랑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우리의 간절한 바램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 사랑에 이를 수 있는가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자기 자신의 사랑에 빠진 자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속에서 허우적대며 나오지 못하는 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온전한 사랑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위해서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하나님 사랑의 모습을 따르는 것이 이기적인 사랑, 자기 중심적인 사랑, 주변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사랑으로부터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사랑을 좀더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이 로마서 5장 7,8절 말씀입니다.

“롬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의인이었을 때가 아니고, 선인이었을 때도 아니고, 오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온전한 사랑의 확증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기 자신의 사랑에서 헤어나올 수 있습니다. 이 놀랍고 위대한 사랑을 바라볼 때에만이 그 다음에 해야하는 일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신년일출을 보러 가기 위해서 청년부가 출발했을 때 목표는 관악산 연주대였습니다. 그 꼭대기에 가서 일출을 보자 했고 그 목표에 동의가 되어서 시작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간에는  후회를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왜 연주대에 오르겠다고 했을까, 왜 그냥 중턱까지만 가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다른 등산경로도 많았지만 왜 하필 연주대였을까 후회가 많았지만 이미 그때는 한참을 올라왔던 상황이었습니다. 내려갈 수도 없었고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위로 위로 전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게 다행이었습니다. 목표가 높다보니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국은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자녀의 변화에 대해서, 배우자의 변화에 대해서, 친구나 이웃의 변화에 대해서, 성도의 변화에 대해서 그리고 불신자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소박한 꿈이 있을 뿐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조금만 줄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한 그 사랑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랑의 올무는 결코 그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를 이기기 위해서는 적절한 사랑으로 이끌어 주어서는 안됩니다. 온전한 사랑, 완전한 사랑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주로 쏘아 올리기 위한 로켓의 발사방향은 우주를 향해 있습니다. 또한 그 추진력은 우주에 이를 때까지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씁니다. 지상으로부터 몇 백 킬로미터까지만 쏘아올리는 추진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력이 있어서 다시 떨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중력상태에까지 이르게 하기 위한 더 큰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완전히 우주공간으로 빠져나갈때까지의 추진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하기 위한 사랑의 방향과 추진력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뿐입니다. 그 사랑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신의 사랑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또한 그 사랑만이 우리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반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변화되어야만 하는 그 사람이나 혹은 그 사람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만이 그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이 사랑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처럼 우리도 악인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렇게 악인을 사랑하셨고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던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 높은 위치를 바라봅니다. 내려가려고 하지 않고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십니다.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랑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절입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죄인이고 악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처럼 사랑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처럼 우리와 또 다른 죄인, 악인들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이것은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바라볼 때에 때로 그 사랑의 고귀함과 위대함을 깨달으면서 절망하게도 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 차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사랑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향하여 조금씩 나아갑니다. ‘서로 사랑’을 통해서 그렇게 됩니다. 그것은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감당할만한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님의 보여주시는 길이었습니다.

 

이번에 연주대를 오르는데 가장 절박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잘모르고 밤중에 가다보니 연주대로 가는 가장 가파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자운암을 통해서 가는 길인데 경사가 높고 바위투성이였습니다. 앞이 잘 안보여서 플래쉬만을 의지하고 앞사람 뒷사람 살펴가면서 가는데 다 올라갔다 싶으면 다시 내려가고 다시 끙끙 거리고 올라왔다 싶으면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송전탑이 보이고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경사가 가파르고 바위를 간신히 붙들고 올라갔었는데(뒤는 너무 아찔해서 돌아보아서는 안될 정도였습니다), 어느 순간 길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앞에 어떤 등산객이 가는 길을 따라 갔었는데 이분은 발에 아이젠을 차고서 바위를 넘어서 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젠은 커녕 단순 등산화에 운동화도 신고 갔었는데 그 바위를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내려갈 수도 없고 올라갈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바위 위에는 눈이 내린뒤 다 녹지 않아서 군데 군데 미끄럽기도 한 상태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는 날에는 끝없이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막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도와달라고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 뒤에 다른 등산객들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이 길은 위험해서 못올라가겠다고 하니까 그 사람들이 다른 옆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우회하는 길을 찾아내었습니다. 간신히 그곳으로 내려가보니까 그곳에는 밧줄이 매달려있었습니다.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다른 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목표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만한 사랑을 주십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처럼 나를 핍박하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하나님이 주신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만 해도 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감당할 만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십시오라고 먼저 말했다면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보고 나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할만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나의 아들,딸 아닙니까? 그가 바로 나의 남편이자 아내가 아닙니까? 그가 나의 친구이나 함께 거하는 이웃아닙니까? 그가 바로 우리의 성도요 우리의 전도의 대상아닙니까? 그러니 그런 사랑을 하는 것이 할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연주대 바로 앞에서도 밧줄을 보니까 막 붙잡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었었지만 바위를 올라갈 생각을 하다가 밧줄을 보니 그것이 더 반가웠습니다. 고맙게도 느껴졌구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그것이 싫다면 원수를 사랑하든가’ 아마 여러분들은 아주 기쁜 마음으로 말할 것입니다. ‘이전부터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변화되기를 원하는 자녀에 대해서 부모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 자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변화되기를 바라는 배우자에 대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 배우자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변화되기를 바라는 친구나 이웃에게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그친구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성도나 전도대상자에게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그를 감당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왜 그를 사랑하는가 하면 그속에서 하나님 사랑을 알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알아서 하나님 사랑을 알라고 말하지 않고 그를 붙들어주면서 하나님 사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당신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 크신 사랑이 우리의 목표이기에 우리는 사랑합니다. 우리가 도달하려는 곳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입니다. 그렇게 올라가려고 할 때 그렇게 노력할 때 어느덧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달라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 사랑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볼 수 있느냐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 사랑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라고 궁금해 했던 우리 자신이 서로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찾고자 했던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함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더 사랑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내 자신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의 사랑을 벗어버리게 됩니다.

 

여전히 자신의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앞으로 괴로워하게 될 것을 알지 못하고, 그로 인해서 앞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게 만들 것임을 알지 못하고서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괴로움의 피해자가 되고 모든 괴로움의 가해자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기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불을 끄는 것은 물입니다. 자기 자신의 사랑을 깨트리는 것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또한 그분을 사랑하려고 하면서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나아가려고 할 때에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의 띠가 묶여집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것처럼 저를 사랑해줘라.’ 저를 사랑할 때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죄악된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실천할 시간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마치 로켓이 우주로 향하여 지구에서 발사되어서 마침내 우주로 나아가는 것처럼 자기 자신의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옮겨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전의 이기적인 사랑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그런 악순환에 빠지지 말고 담대히 하나님 사랑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과 깊은 사랑을 나누시는 주의 복된 자녀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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