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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결심] 6수 5;10-15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6수 5;10-15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음의 의미가 무엇인가_1



2010.11.21. 주일예배, 추수감사예배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추수감사절의 기원을 아십니까? 추수감사절은 구약에서의 수장절로 3대 절기의 하나로 이미 언급이 되어 있었지만 현대에서 구체적으로 절기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미국에 청교도들이 정착하고 난 다음의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0년 청교도 101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2개월간의 모진 항해 끝에 메사추세츠 주 케이프가드 만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굶주림과 추위, 인디언의 습격에 대한 공포와 싸우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반수 이상이 괴혈병과 폐렴 등으로 죽으면서도 그들은 개척의 의지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윌리엄 브래드포드의 지도 아래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이듬해인 1691년에는 인디언과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고 많은 부분에서 농작물을 경작하기 위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옥수수와 보리, 밀 등이 풍작을 이루었고 풍성한 가을 추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지도자였던 브래드포드는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지키기로 하고 인디언 추장 마사소이드를 초청했습니다. 인디언 추장은 90명의 용사들과 함께 참여하였는데 그 날 청교도들은 사냥을 나가서 많은 칠면조를 잡아왔습니다. 그래서 칠면조를 먹으면서 인디언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 절기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냥 추수한 것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기만 한다면 그 즐거움은 단순한 파티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날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할 때 그 감사의 대상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에 그 추수감사는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우리가 수고하고 애쓴 열매를 우리가 먹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시고 인도해주신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앞으로도 더욱 도와주시고 더욱 붙들어주시기를 기대하고 간구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의 삶이 힘들고 괴로웠기 때문에 더욱더 그 속에서 도우시고 힘주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알기에 앞으로도 더욱 그러한 은혜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우리는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모진 세월을 지냈습니다. 1690년에 메이플라워를 탔던 사람들은 고작 2개월을 고생한 것이었지만 그들은 가나안 땅에 도달하기까지 40년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처음 애굽에서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의 그 어리석음과 불신앙 때문에 그들은 40일을 정탐했던 날을 기준으로 해서 40년을 더 기다려야만 가나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40년이 지난 다음에 광야를 벗어나 가나안에서 그 땅 소산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는 참 흥미로운 한 구절이 나옵니다. 그것은 그 땅 소산을 먹게 되었을 때에 그들에게 주어졌던 만나가 그쳤다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12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 지금까지 주어졌던 만나는 더이상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만나는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셨던 음식이었는데 땅에서 나오는 양식을 먹게 되었을 때 만나는 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어쩌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 하나님은 만나를 더이상 주시지 않았을까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지금까지 누가 만나를 주었습니까?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만나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지금까지 먹이고 입히고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그 은혜를 입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 소산을 먹었습니다. 누가 먹게 해주신 것일까요? 만나를 공급해주심이 끊어졌다는 것은 가나안의 소산을 먹게 해주신 분도 역시 하나님이라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러니 만나가 중단된 것은 섭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식의 메뉴가 바뀐 것 뿐이라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깟씨같기도 하고 과자같기도 한 만나에서 풍성한 무교병과 볶은 곡식으로 바뀌어서 먹게 된 것이지요. 오히려 더욱 감사해야 하며 더욱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오히려 더욱 익숙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올해 얻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동일한 원리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올해 얻게 된 그것을 얻기 까지 붙들어 주시고 힘주시며 인도해주신 분은 누구십니까? 누구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만나로 먹여주셨던 것처럼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인도하시며 오늘 이때까지 인도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녀같이 안아서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번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참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특별히 작년 이맘때가 생각이 나기 때문입니다. 작년 이맘때 저는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맞았는데 그 때는 태어난지 몇일 안되는 지인이와 산후조리를 하느라 정신없는 사모, 그리고 미국생활이 간신히 적응을 한 예인이를 데리고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산후조리가 힘든 시기였는데 그 때 우리 부부는 많이 싸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전적으로 산후조리를 담당해야 했는데 너무 부족하게 했기 때문이었지요. 그일로 아내는 섭섭하고 분한 마음에 자리에 누워버렸고 갓난아기였던 지인이는 지인이대로 황달에 걸려 고생을 했고 예인이는 예인이대로 모든 과제와 준비물을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런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1년을 채우고 별탈없이 무사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교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루 하루가 힘들고 고달픈 나날이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생활은 참 어렵고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칠면조를 놓고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분위기라서 우리도 칠면조 대신 치킨을 사다놓고 추수감사절을 보내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감사할 수 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미국에 2월에 와서 10개월을 보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대형 차사고가 날뻔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피했고, 임신성 당뇨에 걸려 고생했었지만 다행히 잘 견뎠고, 또한 신종플루가 유행해서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면서 살았었는데 병에 걸리지 않았고, 미국생활에도 어느정도 견딜만 하게 되었고, 생각해 보니 이런 저런 감사가 많았습니다. 그 감사 속에서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도와주신 하나님, 앞으로도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의 도움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정말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저희를 건져주실 줄 믿습니다.’이렇게 확신하면서 이렇게 감사하면서 칠면조가 아닌 치킨을 먹으면서 작년 추수감사절을 보내었습니다.

이제 올해 2월에 돌아와 성도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어느덧 다시 10개월을 지난 지금, 그 때의 감사가 모두 다 이루어졌음을 실감합니다. 그 때 황달에 걸려 노랗게 되었던 지인이는 지금 무럭무럭 자라서 돌이 되었고 예인이도 학교생활 잘하고 있고 저와 사모도 하나님의 은혜로 잘 지내게 되고 있으며 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잘 성장하고 있음을 볼 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이전에 광야에 있을 때에는 만나로 베풀어 주셨고 지금은 가나안 땅의 소산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과거에 여러분에게 만나를 주셨던 분입니까? 어려움 속에서 견딜 수 있게 해주셨던 분입니까? 지금까지 도우시고 힘주셨던 분입니까?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로 감사하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끊임없이 왜 애굽의 부추를 먹지 않게 해주시냐고, 왜 애굽에서 먹던 고기와 향신료가 가득한 기름진 음식을 주시지 않으시냐고 불평하는 자들입니까?
결국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에 감사한다면 가나안에서의 소산도 감사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지만, 그 만나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더 큰 것을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을 비방하고 거역한다면 가나안의 소산도 얻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큰 것을 주시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감사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광야에서는 만나를 얻는 자들이고 가나안에서는 그 땅의 소산을 얻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중 삼중으로 축복을 받는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신명기 8장 16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나로 먹이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므로 ‘만나’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며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더 큰 복을 주려하심 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만나는 ‘하늘양식’입니다. 이 하늘 양식을 통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만나는 결코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인 은혜와 영적인 깨달음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힘입어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이 되어갑니다. 여러분이 물질이나 환경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십니다. 그 만나를 통해 우리를 형성하십니다. 그리고 그 만나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축복과 상급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퇴임을 앞두고 다음 선교사를 임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 선교사가 아주 진실한 사람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 후보생들을 면접할 때에 몇 가지 시험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첫번째, 그는 선교사 후보생들을 아주 이른 시각인 오전 5시에 자기 집으로 오게 하였습니다. 두 번째, 그는 그렇게 온 후보생들을 5시간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그는 그렇게 기다렸던 사람들이 기다리면서 무엇을 하는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그는 면접을 하게 되었을 때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면서 그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네가지 조건에 모두 합격한 사람을 선교사로 추천하였습니다. 그 합격자는 일찍 도착하였으며 성실하게 기다렸고 기다리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고 황당한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려 하실 때에 보시는 것은 이러한 진실성입니다. 과연 받았던 만나에 감사하는가? 과연 주어진 열매에 감사하는가? 과연 현재 있는 것에서 감사하는가? 만약 이러한 조건들을 만족시킨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험을 통해 우리를 살펴보셨고 그럴 때 합당히 여김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주어지는 다음 축복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하나님은 어떤 축복을 주실까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주셨던 은혜에 진실로 고마워한다면 하나님은 그 다음에 무엇을 주실까요?

이스라엘 민족이 그 땅에서 나온 소산을 먹고 나서의 일입니다. 그들은 점차 여리고 성으로 가까이 가고 있었던데 그러던 그들에게는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칼을 들고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절대로 범상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직접 나아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다시 말해서 도우러 왔는지 아니면 방해하러 왔는지를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사람은 놀라운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14절입니다.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그는 하나님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 중에 군대를 다스리는 천사가 있는데 그 이름이 미가엘입니다. 아마 그 미가엘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깜짝 놀라 땅에 엎드려 절하고 말했습니다.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수아는 아마 미가엘천사가 이런 저런 명령을 내리는가보다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저러하게 앞으로의 일들을 준비하라고 말하는가보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가엘 천사, 그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말한 것은 간단했습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그 군대장관이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 였습니다. 신을 벗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가나안에서의 전쟁을 각오한 여호수아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신고 있는 신은 전투에 임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전투에 대한 준비입니다. 하지만 그 군대장관은 그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이미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불에 타는 떨기 나무를 볼 때에도 그는 발에서 신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셨기 때문에 너무나 거룩한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위신과 명예와 존귀함은 다 벗어져야 하고 맨발로 엄위로우신 주님 앞에 서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이 함께 하심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의 수단과 우리의 방법과 우리의 무기와 우리의 술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이어지는 여호수아 6장에서 여리고와의 전쟁에서의 시작은 그 성을 일곱 바퀴 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함이 전쟁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대로 그 성을 무너뜨려 주셨을 때에 이스라엘은 손쉽게 여리고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만 계속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신을 여전히 신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심과 도우심과 동행하심을 부인하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겸손히 신을 벗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감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은 준비하신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원하신다면 여러분의 신을 벗으십시오. 이 추수감사를 기점으로 여러분의 능력과 여러분의 노력으로 잘되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배를 빼먹으면서, 예배를 불성실하게 드림으로써, 기도를 게을리 함으로써, 성경을 묵상하지 않으면서 잘되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신을 벗고 주님을 의지할 때에 예배를 중요시하게 됩니다. 기도를 먼저 드리게 됩니다. 성경을 먼저 펼치게 됩니다. 그 시간이 아까우면 여러분은 신을 벗지 않는 겁니다. 그 시간 아껴서 혼자 힘으로 해보고 싶다면 한번 해보십시오. 그 대신 하나님은 함께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을 벗지 않을 때 하나님은 도와주러 오셨지만 떠나버리실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혼자 해보려고 한다면 해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즉시 신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 이후에 그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마다 그는 승리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마다 그는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한 추수감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계속 의지할 것을 결심합시다. 그래서 더 큰 승리를 얻는 우리들이 됩시다. 그래서 내년에는 더 풍성한 결실을 가지고 주님께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요 {1역사서}, <1적용>, [1영역-사회]~[0복음-은사]
1.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미국 청교도들이 신대륙에서 정착하게 되면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들도 가나안 정복을 위해 그 땅에 도착하였을 때에 비로소 첫 열매를 먹게 되었습니다.
3. 우리도 올해 열매를 거두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더 큰 열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 하나님이 우리가 있는 곳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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