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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능력] 50빌 1; 3-11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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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3-11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자들_1

  

 

  

2018. 4. 8. . 주일오전.

  

 

  

*개요:  복음의 자녀들이 하는 일, 1적용, 52능력, 6서신서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1: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에서 시작된 복음에 대한 이야기는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를 거쳐 이제 빌립보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에서의 핵심은 복음의 일에 동참하는 자들의 기쁨입니다. 빌립보서가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 기쁨은 그냥 아무 것도 안하는 자들의 기쁨이 아닙니다. 혹은 세상 일을 하는 삶의 기쁨도 아닙니다. 그 기쁨은 복음을 위한 일을 하는 자들의 기쁨입니다. 빌립보서에서 기쁨이 얼마나 강조되는지 모릅니다. 기쁨이 여러 번 등장하고 있지만 가장 압도적인 기쁨에 대한 구절은 217절입니다.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이러한 기쁨에 대해서 1장에서도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빌립보서가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는 빌립보 교회의 성장과 발전과 관계가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감옥에 있을 때 서기 61,62년 경에 이 편지를 썼는데 빌립보 교회는 그가 2차 전도여행때 자주장사 루디아를 통해서 세우게 된 교회였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간수와 그의 가정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는 잘 성장해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바울을 돕게 했고 그가 중병에 걸렸다가 다시 회복되어서 빌립보 교회로 돌아갈 때에 이 편지를 보낸 것이라서 빌립보 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심정은 각별했습니다. 바울의 기쁨의 근원과 빌립보 교회에 말하는 기쁨의 근원은 모두 복음 안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앙이 발전하는 모습 속에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복음의 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복음은 그 속에 참여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복음의 혜택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전파에 참여할 때에 그 기쁨에도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 기쁨에 대해서 본문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1: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또한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들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들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그들이 했던 일을 보십시오.

  

“[]16: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는 처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된 최초의 신자였는데 그녀는 온가족이 함께 믿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면서 섬기던 자였습니다. 그 섬김이 이제까지 이루어져서 빌립보서 4장에 그들이 어떻게 지금도 바울을 섬기는지가 나타납니다.

  

“[]4: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4: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그들은 진실하여서 바울을 통해 복음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았고 그 일에 동참하는 자였습니다. 그렇게 할 정도면 당연히 자신들의 삶 속에서는 얼마나 복음의 일을 이루고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한결같은 섬김의 모습은 그들이 얼마나 복음의 일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또한 기쁨의 원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기쁨은 예수님과 연합하는 일이 잘 되고 있음을 확인할 때의 기쁨이었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꾸준히 살펴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복음에 우리가 계속해서 참여하고 있는가 입니다. 복음이 아무리 좋고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 복음의 목표와 방향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의 기쁨과 즐거움에 동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쁠 일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의 기뻐하심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행하기를 원하셨던 일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일에 대한 소망과 열정이 있을 때 진정한 기쁨의 근원을 알게 됩니다.

  

복음의 일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주는 부활절이었는데 그 부활절의 시간이 정말 의미 있고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번 그렇게 느껴졌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부활의 의미를 깊게 이루는 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이루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운동을 하면서 기뻐합니다. 또는 운동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운동하러 모인 사람들이나 운동을 보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또는 음악과 관계되면서 기뻐합니다. 연극과 관계되면서 기뻐합니다. 영화와 관계되면서 기뻐합니다. 정치와 관계되면서 기뻐하고 학업과 관계되면서 기뻐합니다. 각종 많은 집회와 모임과 회합 속에서 그들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복음과 그 복음에 관계된 일일 때 우리는 그 복음에 대해서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있을 때 우리는 복음에 대해서 연합해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의 모습이 바로 6절입니다.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성령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는 것이고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날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복음에 대한 착한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함께 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과 결속력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함께 고생하고 함께 수고하여 어떤 일을 이루면서 나아갈 때 그 연합된 마음과 삶은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게 생각되겠습니까?

  

운동경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이 응원한 팀이 승리하였을 때 느끼는 감동과 감격을 생각해 보십시오. 유명가수의 콘서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공감대와 일치감을 상상해 보십시오. 정치나 사회집회에서 동참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유대감을 생각해 보십시오. 커다란 대중 집회가 아니더라도 소규모 모임이나 팀 활동에서 그 일을 잘 끝내고 났을 때의 성취감과 일체감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전에 저는 목사님들과 함께 축구도 하고 자전거도 탔는데 끝나고 나서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함께 해 나가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 노회를 새로 분립 개척할 때에도 열심히 동참했는데 그때에도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반 삶 속에서 우리가 이러한 감동을 느낀다면 신앙적인 면에서는 얼마나 더 의미 있는 감격을 느낄 수 있을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일체감과 유대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들에게 느끼는 사모함과 일체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사도 바울 자신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함께 하였고 함께 도왔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복음에 참여하면서 자신만의 주장과 노력에 애를 쓴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하며 사도의 매임에 마음을 다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세력의 확장과 자신들의 의도의 실현에만 관심을 가졌다면 결코 이러한 연합과 일체감을 갖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자들이라면 그들이 지지하고 응원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위상과 권세를 더욱 자랑하는 사람일 뿐일 것입니다. 그럴 때 그런 사람이나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일을 하려고 하면서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높이고 스스로의 의지를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일이 문제가 아니고 복음을 위한 일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그런 귀한 교회 일이나 복음을 위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하지 않는 자들이 문제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나쁜 선례때문에 이제는 교회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복음을 위한 일도 중단하는 자들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그 실족함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도 아무런 발전이 없고 자신의 달란트와 재능을 사장시키고 있으며 결국은 아무런 영적인 기쁨이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가 보여주는 진정한 기쁨은 오직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든 그것은 한낱 자기 일일 뿐입니다.

  

드넓은 골프장이 있다고 해보십시오. 거기서 꽃을 감상하고 경치를 만끽하고 산책을 하며 음식을 먹고 재미있고 논다고 해보십시오.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보낼 수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무익한 일일 뿐입니다. 무엇을 하든 골프 이외의 일은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동일한 예를 다양한 곳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오페라 극장에서 가서 잠을 잔다든지 게임을 한다고 한다면 얼마나 무익한 일입니까? 야구장에 가서 공부를 한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한다면 얼마나 무의미한 일입니까? 인생에서 해야 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그것은 이생을 준비하는 것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다음 세상에 대한 준비는 하나 없이 오직 이 세상의 자신만의 즐거움과 다른 사람의 분주함에 함께 빠져있다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준비하게 하시는 일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그렇게 영혼구원과 복음의 전파에 열심을 가지고 계실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이 제한적인 인생 속에서 영원한 삶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짧으면 80년 길면 100년의 인생 속에서 정말 준비해야 할 것은 영원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을 바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것에 관심을 가질 때에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기 위해서 비로소 연합하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한 내용은 단순히 이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일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는 빌립보 교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더욱 풍성해져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들입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아서 정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풍성해지고 그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해져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바로 복음을 위한 일, 교회의 일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그래서 우리가 힘을 합쳐서 마음을 모아서 뜻을 모아서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일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이 되고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며 그 일의 결과를 우리 자신과 자녀 대대로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욱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일에 연합하여 신령한 기쁨으로 넘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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