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능력] 49엡 1; 20-23 그 능력이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
49엡 1; 20-23 그 능력이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_1
2018. 3. 25. 주. 주일오전. 고난주일.
*개요: 그리스도의 사역의 의미, 52능력, 6서신서, 3관점 [엡]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엡]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그분의 고난으로 인해서 우리가 얻게 된 놀라운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은혜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또한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고난주간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더욱 연합하며 하나님께 더욱 크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주간의 은혜가 지금까지 에베소서를 보면서 알게 되었던 것과 절묘하게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서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기반으로 우리에게 증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인 고난 주일은 바로 그분께서 가장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는 것과 일치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의 연합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의 연합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죽으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시는 모습 속에서 바로 우리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말씀의 시작은 20절부터 시작됩니다. “[엡]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그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고 그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앞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엡]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힘의 위력은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지극히 크신 능력이었습니다. 그 능력을 힘입어 우리가 믿는 자들이 되었고 주안에서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했는데 그럴 때 바로 그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더욱 믿고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능력이 우리 자신에게 주어져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그 하나님의 능력이 동일하게 예수님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의 자신의 오른편에 앉히셨던 것입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기 위해서 베푸신 능력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기 위해서 베푸신 능력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베푸신 능력을 우리 자신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애를 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가 아플 때에도 그렇고 어머니가 아플 때에도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능력을 다 기울여서 자녀가 다치면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합니다. 또한 어머니가 병이 들어서 치료를 받아야 할 때에도 아버지는 자신의 능력을 다 기울여서 치료를 받게 합니다. 그 모든 비용과 수고와 노력에 대해서 아버지는 전혀 아까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일을 감당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놀다가 머리를 책상모서리에 부딪쳐서 상처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말이었는데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급히 저를 데리고 부대 내에 있는 의무실에 데리고 가셔서 머리의 상처를 실로 꿰맨 적이 있습니다. 그 상처가 아직도 있어서 그 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회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도우시는 능력이나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는 능력은 모두 하나님께서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능력이 많다 하더라도 상관이 없거나 마음이 없다면 그 능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이유는 그 자녀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능력은 예수님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것도 주저하지 않고 아까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그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게 된 이유는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로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세상의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인간의 죄로 인해서 죽으셨습니다. 그 전 세대에서는 자신들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에 대해서 그분의 희생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고 그 후 세대에서도 역시 자신들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에 대해서 그분의 능력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당대에서는 자신들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의 의미는 더욱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위를 가지시고 능력과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셨어도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계속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잡아서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십자가에 걸린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라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으신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 순간 예수님이 그 죽으심을 거부하려고 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죽지 않으려고 하셨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아니라 그들이 죽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고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다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죽이지 않으시고 스스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고 그들은 살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막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살리시고자 인간 대신 죽으시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인간을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 대신 죽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당대에 예수님을 죽이려던 인간들을 위해서 죽으시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그 이전에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후대에 나타나게 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는 그분이 죄를 짓지 않으셨고 죄인이 아니셨기 때문에 다시 살리시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 능력이 인간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던 것입니다. “[엡]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사랑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하심으로 이전에 계셨던 바로 그 자리 하나님 우편에 다시 앉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하심 이후에 이 세상의 창조자요 하나님과 동등되신 그 신성을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우신 십자가 사역 이후에 나타난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이루신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던 예수님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그 은혜의 혜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혜택이 바로 21,22절에 나타납니다. “[엡]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 보다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가장 다스리시며 가장 권세가 있으시고 가장 능력이 많으시며 가장 권위가 있으신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이나 앞으로 오게 될 내세의 세계에서 일컬어질 수 있는 모든 이름보다도 더욱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장 뛰어난 이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영광은 상상만 해도 벅찹니다. 자신을 드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온전히 희생하신 예수님은 통치와 권세, 능력과 주권, 그리고 아름다운 이름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십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높음과 영광을 가지십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한 예수님이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는 모든 만물 위에서 특별히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예수님은 나라라도 세우실 것 같은데 그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실 때 그것은 예수님이 낮아지신 것일까요, 아니면 교회가 높아진 것일까요?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볼 때 해소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가장 위대한 국가의 가장 영광스러운 지도자가 되었다고 해보십시오. 또한 그는 동시에 한 가정에서의 가장이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위대한 국가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는 결코 가장의 자리를 물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국가지도자의 위치에서 그의 가정이 빛이 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 되셨으며 또한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성도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가르치시던 여전한 스승이시고 제자들은 안전하게 보내주고 오직 자신을 붙들어가라고 하시던 희생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 믿는 자들이 모여있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교회를 돌보시며 교회를 통해서 그 자녀들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님에게 넘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만났을 때 무엇이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이 두 가지 모습에서 동일하게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로 집중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까요? 이 둘이 연합되는 장소가 바로 교회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받게 되었는데 그곳은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가장 위대한 이름이 되셨고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러니 이 교회 안에서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합쳐질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 1장의 결론인 23절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에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그리고 그의 몸된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를 사랑하시고 성도를 자녀삼으시고 그 자녀된 성도들에게 날마다 필요한 모든 은혜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들에게 나타나고 예수님의 영광이 성도들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 안에 있는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충만케 하시는 충만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시 가정 이야기로 돌아와 봅니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면 치료하고 누군가 괴로우면 달래주고 누군가 지치고 슬프면 위로를 받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의 충만함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유명한 CCM가수였던 박종호 장로님은 2016년에 간암수술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간 이상으로 간이식 외에는 살아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의 막내딸의 간이 그와 일치했습니다. 막내딸의 간의 3분의 2가 그에게 이식되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회복시간이 지난 다음 그는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말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었고 가족의 도움을 통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정은 그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함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충만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각 사람에게 주시는 도우심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진실로 사랑하시는 영광스러우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머리되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충만함 속에서 살아갑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다스리심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충만하게 합니다. 이러한 충만함을 받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이 이 충만함을 깨닫고 경험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에베소서를 통해 나타난 자녀됨의 중요성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놀랍고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다가오는 고난주간을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우신 희생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묵상하며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전히 지금도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더욱 하나님과 연합하면서 살아가는 주의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주간 이후에 찾아오는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생의 수고 이후에 나타나는 내세에서의 즐거움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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