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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죄책] 48갈 3; 10-14 저주 아래 있는 자

 
48갈 3; 10-14 저주 아래 있는 자
 
 
날짜: 2007-08-21
본문: 갈라디아서 3:10-14 (신305)
요약: 우리들은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항상 저주아래에 놓여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보다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 더 큰 범죄가 됩니다. 이러한 범죄함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은 죄사함의 기쁨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또 다시 사해주십니다. 이전에 사해 주신 모든 죄사함의 은혜가 다시 임하는 것입니다.
구성: 1. 우리들은 죄의식없이 살아가면서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A2
2. 죄의식이 없는 이유는 행해야할 의무와 규칙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A1
3. 하나님은 이렇게 의식하지 못하고 짓는 죄들을 용서해 주신다. C2
4. 이는 죄사함을 통해 언제든지 주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의무를 이루게 하시기 위함이다. C1
주제: 희생, 용서

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0For as many as are of the works of the law are under a curse: for it is written,1 Cursed is every one who continueth not in all things that are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to do them.1) De 27:26
10οσοι γαρ εξ εργων νομου εισιν υπο καταραν εισιν γεγραπται γαρ οτι επικαταρατος πας ος ουκ εμμενει πασιν τοις γεγραμμενοις εν τω βιβλιω του νομου του ποιησαι αυτα

이번 어느 정당의 대통령 경선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죄와 허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죄와 허물은 사전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행하는 것이 죄이고 해야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허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도 중요하게 본 것은 허물이던 죄이던 해야하는 일이지만 하지 않은 것이던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한 것인데 한 것이던 그것이 무엇이든지 샅샅이 들추어내고 그부분을 검증하려고 했던 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죄와 허물은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나쁜 점입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때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에서 스스로 무죄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측면을 살펴볼 때에 비로소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그 죄를 알고 나면 그제서야 자신의 죄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잘못을 깨닫게 하는 의무나 규칙, 혹은 사실을 알지 못하면 전혀 죄의식도 없고 죄책감도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결코 이상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는 심지어 뺑소니사고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차가 접촉했거나 혹은 사람이 부딪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에게 죄의식이 없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허물인지 죄인지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전혀 알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 그것은 허물이요 죄였지만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죄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 계속해서 그런 일을 하는 행동은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스스로 화를 초래하게 만듭니다. 이는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젓가락을 콘센트에 집어넣거나 동전을 삼키려고 하는 행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는 사람에게는 가슴철렁한 일이지만 당사자는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전에 이런 상태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값으로 죄와 허물을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모든 불이익과 고통들을 다 면하게 하시고 친히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그 죄와 허물의 결과는 사망이지만 우리는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그리스도를 믿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죄와 허물을 저지르고 삽니다. 계속해서 죄와 허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좀더 다른 차원에서 좀더 높은 수준에서 계속적인 죄와 허물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종종 고위 공무원이 뇌물을 받거나 향응을 대접받았을 때 총살형을 받는 사건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처벌의 정도가 훨씬 약하지만 보통 시민이 그런 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를 때 훨씬 더 처벌이 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식입니다. 차라리 믿지 않는 자였을 때보다 오히려 믿는 자일때 저지르는 죄와 허물을 더욱 중하고 강하게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잘못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주십니다. 더 벌을 내리실 수 있는데도 말이지요. 많은 불신자들이 기독교인의 범죄에 대해서 더 열을 올리며 성토하고 비방하는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십니다. 도대체 왜 그러실까요?

서커스 줄타기 연습장에는 아래에 그물이 쳐져 있습니다. 그 그물이 있기 때문에 줄타기를 연습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연습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는 까닭은 다시 그렇게 살지 않고 바르고 의롭게 살아가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여주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령의 약속’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시는 것,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것,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여전히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죄와 허물 가운데 있습니다.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우리는 항상 저주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속에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연습합니다. 노력합니다. 안되더라도 계속 이루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이 줄타기 연습장에 그물이 있는 이유이고 마침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줄타기를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죄사하심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오늘도 노력합시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우리로 하여금 마침내 자녀의 모습을 이루게 만들것입니다.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맙시다.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그리스도의 그물은 우리를 다시 위로 올려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그물은 우리를 결코 놓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확신하며 더욱 담대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로 노력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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