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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감정] 43요20;24-31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의 감정



43요20;24-31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의 감정



2010.4.4.주, 주일오전, [3감정]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주님은 2000여년전에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부활을 우리에게 다시 깨닫게 해주십니다. 마치 생일이 과거에 있었던 것이지만 현재에 그 날을 기억하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할 뿐만이 아니라 주님의 살아나심을 기념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날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모든 사람에게는 생일날이 있고 제삿날이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단지 소천일이 될 것입니다. 이는 말하자면 출생일이 있고 사망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부활일이 있지는 않습니다. 죽으면 이 세상에서는 끝이기 때문입니다. 저 세상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되겠지만 이 세상에서는 분명히 끝이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렇게 부활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부활이라는 사건을 대할 때에 반응은 각자 다릅니다. 부활에 대해서 다양한 반응을 여러분은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이미 오늘 아침, 어제, 지난 주에 여러분은 충분히 부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부활이 바로 이 시간 임한 것은 아니니까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부활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졌습니까? 여러분 스스로에게 한번 답해 보십시오.
정말 그 부활을 반기었던 사람도 있고 그 부활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 부활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활절에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서 정말 너무나 감격스러웠던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의 부활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된 사람이 있습니까? 고난주간과 그 뒤에 이어지는 부활절이 이제는 지겨워서 아주 힘들게 느껴진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있지만 부활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부활절 아침에 시름이 가득해서 온 사람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온 사람도 있고 기쁨과 감사로 충만해서 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반응이 우리 가운데 현재 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그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새벽에 무덤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와서 기쁨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었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고 하니까 특별한 감정을 갖지는 못하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한 사람도 있었고 자신은 부활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거부하면서 투덜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부활하신 날 이후 8일째가 되었을 때에 집안에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문은 모두 닫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바로 도마가 있었습니다. 도마는 부활을 인정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직접 예수님의 못자국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으며 자신의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자였습니다. 그의 반응은 부활에 대해서 기뻐하며 감격한 것이 아니었고 그 정도는 아니라도 부활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부활을 부인하고 불신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감정은 약한 수준에서의 ‘분노’같은 것이었습니다.

왜 도마는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이러한 반응을 나타내었을까요? 그는 왜그렇게 삐딱하였을까요? 왜 그렇게 냉소적이었을까요? 다들 부활을 그래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감사하는 분위기였는데 왜 도마는 그렇게 부정적이었을까요?
그가 왜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이유를 알면 그를 도와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부활을 기뻐하지 않는 이유,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부활을 부인하는 이유를 알면 그가 부활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정할 수 있도록 기뻐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자, 다시 한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부활은 일어났습니다. 부활절은 이미 임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은 각자 다 다릅니다. 여러분의 반응이 좋은 것이라면 감사한 일입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런 분들은 계속해서 부활에 대해 기쁨을 유지할 것입니다. 그 다음 부활에 대해서 무덤덤한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무덤덤해진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뭐 크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부활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기뻐하지 않을 수 있어도 다음 번에는 기쁨으로 부활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부활을 부인하며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안좋은 감정으로 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괜히 부활절에 더 화가 나고 부활절에 더 심술이 나며 부활절에 더 냉소적이 됩니다. 그럴 때 그런 분들은 말합니다.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는지 증거를 대보란 말야,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봐야 믿겠어’

그가 분노하고 부인하며 거부하고 있는 이유를 알면 바로 그가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혹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알고 그가 부활에 대해서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부활에 대해서 마음을 열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이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게 됨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이 바뀌어야 할까요? 도마가 부활을 부인하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되지 않습니까? 그냥 자신이 못믿겠다면 못믿는 대로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아는 누군가가 부활을 부인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나요? 부활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면 손쓸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냥 내버려 두다가 나중에 새로운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그래서 나중으로 미루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여러분 자신이 만약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여러분은 그렇게 말할 지 모르겠습니다. ‘날 좀 그냥 내버려 두세요’마음을 변화게 하려는 모든 노력이나 시도가 귀찮게 여겨질 지 모를 일입니다. 물론 그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 또한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냥 포기되어질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 도마가 마음이 변하였을 때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십시오. 그 부정적이며 그 냉소적이었던 도마가 어떻게 변했나 보십시오. 그는 이렇게 예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부활절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진정한 기쁨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기뻐하는 자는 계속 기뻐하고 부인하는 자는 계속 부인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부활을 부인하던 자가 부활을 인정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자신의 주요,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며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왜 시몬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게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왜 시몬이 부활에 대해서 냉소적이고 부정적이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면 그가 변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 모임에 어떤 이유에선지 함께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이 다들 모여 있을 때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날은 안식 후 첫 날 저녁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참여하였지만 오직 도마만이 오지 못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못오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가 정당한 이유였을까요, 정당하지 않은 이유였을까요?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그는 자신이 제자들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보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자기만 오지 않았고 다른 사람은 다 왔고 온 사람은 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보았다고 하였는데도 그는 자신이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인해서 그 부활의 증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잊어버리고 단지 자기가 보지 못했다는 것만을 내세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껴봐야만 부활을 믿겠노라고 오히려 더욱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을 인정하려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에게 자신들이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럴 때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더욱 앞장서고자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자신의 판단을 굽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고지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증언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판단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그가 손가락을 못자국에 집어넣어보며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아야 분명히 믿겠다는 지나친 다짐으로 볼 때 그는 신중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장된 표현과 거친 말투 속에서 우리는 도마가 오히려 사려깊지 못하고 신중하지 못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만났다고 말하는데도 오히려 그 말을 반박하기 위해서 자기가 보아야 믿겠다고 말한다는 것이 너무 심하게 말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신중한 사람인데 이렇게 한번 말하면서 너무 지나친 말을 하는 도마는 부활의 증거에도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이 여러가지 이유를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그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단한 이유로 도마는 부활을 부정하였습니다. 자신의 실수는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말은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오직 자신이 기준이 되고 자신이 잣대가 된 사람이 바로 도마였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감정의 이유와 근거가 자기 자신이 된 사람이 바로 부활을 거부하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활에 기쁨과 감격이 있어도 부활에 대해 냉소와 부정적인 반응만이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에만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기준이 되고 자신이 목표가 되며 자신이 근거가 되는 사람이 부활에 대해서 거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활에 대해서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기준에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쁘고 나는 정신이 없고 나는 일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고 나는 놀아야 되고 놀러가야 하고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부활을 부인하며 정신없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내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하건말건 나는 내 스케줄과 내 계획과 내 일정에 따라 살아 갑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은 내 길과 내 계획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나 자신이 주인이 되고 나 자신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기에 내 손가락과 내 손의 감촉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좌지우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심판관이 되어 부활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부활에 뒤쳐지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서요. 그 모습은 작은 손가락으로 작은 손으로 해를 가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장면이 그 다음에 이어집니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태도를 보여주었던 도마에게 주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불신앙에 그 냉소에 그 부정적인 마음에 다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예수님은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모여있을 때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타나심은 오직 도마를 위해서 였습니다. 오시자마자 예수님이 하신 첫 마디는 ‘평강이 있을찌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평강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두려움 속에 있는 그들에게 주님은 오셔서 평강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곧장 도마에게 향하셨습니다. 그것은 도마가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주님은 친히 오셔서 나타내 보여주심으로 도마의 불신을 없애주셨습니다. 그 거만하고 강퍅하고 냉소적이고 삐딱한 마음에 평강으로 오셔서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인간의 얄팍한 감정을 열고 마음 속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도마라는 그 인간 앞에서 자신의 부활을 판정받으시고자 하십니다. 도마가 무언데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고 말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에게 나아가 자신의 부활을 판단받으시고자 하십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없는 자가 되어서 심판에 이르게 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믿는 자가 되어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를 위해서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주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버리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주의 성령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도마처럼 별로 기뻐하지 않고 부활을 인정하지도 않는 자들을 위해 나아가셔서 내가 여기 있으니 너의 손가락을 내 못자국에 너의 손을 내 옆구리 집어넣어 보라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놀랍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판단받으려고 하신다니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인자하심을 경험하며 도마는 대답합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도마의 주가 되시며 도마의 하나님이 되시는 이유는 도마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나셔서가 아니구요. 단지 부활하셨기 때문이 아니고 부활하신 몸으로 나아오셔서 그를 용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주가 되시며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단지 부활하셨기 때문이 아니고 부활하신 뒤에 여러분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은 이미 예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부활절은 단지 그 부활에 대해서 태도가 어떠한가만을 살필 뿐입니다. 부활절은 엄밀히 말하자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해 주지 않을 때 슬퍼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제삿날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떠났기 때문에 기억하던 안하던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생일날은 다릅니다. 버젓이 살아있기 때문에 생일을 소홀히 하면 섭섭한 법입니다. 주님의 부활절이 주님의 또 하나의 생일이 되시지만 우리는 때로 이 날을 너무 소홀히 지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부활절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고 오히려 그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부활절에 감사헌금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고 해서 기뻐하고 감사하지 않았다고 해서 여러분을 질책하시지 않습니다.
그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닫힌 문을 열고서 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다가오실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삶에 오시거든 꼭 고백하십시오. 주님의 나의 주시라고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부활절 이후에 더욱 주님을 만나고 더욱 주님을 경험하고 더욱 주님과 동행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절 이후에 믿음이 더욱 깊어져서 손으로 해를 가리려고 하지 말고 손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멀리하려고 하지 말고 입으로 주님을 고백하고 받아들여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며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부활절은 은혜 중에 지내었으니 이제 예수의 이름 힘입어 생명얻는 한 주 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목차
1.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뵐 때의 감정은 좋은 것이기도 나쁜 것이기도 하다.
2. 그 감정이 부정적인 이유를 알면 그 마음을 변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3. 그 불신의 이유는 제자들과 동참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신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4. 그럼에도 주님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그가 믿고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5.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바르게 생각하고 새로운 결심을 가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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