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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관계] 1창 12; 1-3 복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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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1-3 복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_1

  

 

  

2020. 7. 26. . 주일오전.

  

 

  

*개요:  창세기에 나타난 아들의 소원, 2관점해석, 51계획, 25관계, 1역사서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구원의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문제로부터의 구원을 생각했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고 인생 자체가 심판이기 때문에 구원은 인간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구원없는 인생은 절망이고 좌절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도 결국은 죄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에는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필수적이고 절박한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런 구원의 심각함을 자각해서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구원이 주는 소망과 목표에 대해 사모함으로 가지고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원이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부터 가장 만족한 상태에까지 모두 적용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비참함을 자각하지 않고 만족함 속에서 있다 하더라도 구원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에 올라갈 때에는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공항에서 하늘에 올라갈 수도 있고 해발 고도가 가장 낮은 곳에서 하늘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구원에 대해서도 정말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구원을 사모하며 나아갈 수 있고 기쁘고 즐겁거나 편안하고 안락한 상황 속에서도 구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형편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믿느냐 입니다. 그가 믿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일 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제 진정한 믿음의 문제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본질상 노아나 에녹이나 아벨이나 아담의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부 죄인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믿었고 나름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따라갔습니다. 믿음으로 인해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는 노아의 방주 사건 이후에 세상 속에서 믿음을 따라는 민족을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그를 통해서 믿음의 민족이 나타나고 믿음의 백성이 나타났습니다. 그 모든 믿는 사람들의 시작이 바로 아브라함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믿은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축복을 믿거나 만사형통을 믿거나 성공을 믿거나 행복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구체적인 정황과 내용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방주사건 이후에 많은 민족과 족속으로 세상에 널리 퍼진 사람들 중에서 셈의 자손이자 10대손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시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가 큰 민족을 새롭게 이루게 하신다고 하셨고 그에게 복을 주셔서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구원은 놀라운 축복과 약속의 구원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원은 그 이전에 노아에게 주신 구원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구원이었습니다. 아담의 10대손인 노아에게 주셨던 구원은 모두가 심판 받을 때 그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와 함께 하는 가족들과 그와 함께 했던 동물들은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에 방주를 통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달리 아브라함은 대홍수 이후에 많은 민족 중에서 새로운 민족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믿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 중의 하나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처럼 심판을 피하여 구원으로 나아가면서 믿음을 갖게 되거나 아니면 아브라함처럼 축복을 사모하여 구원으로 나아가면서 믿음을 갖게 되는 경우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불러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 말씀도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따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그의 아내와 조카와 자기의 모든 소유와 속한 모든 사람들을 다 이끌고 가나안에 갔습니다. 그는 일부만 보낸 것이 아닙니다. 전부를 데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그것이 믿음이었고 그 믿음은 그냥 보고만 있거나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믿을 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러면 그가 믿은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하나 하나 다시 되짚어봅니다.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조건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이 있고 그 땅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땅이 가나안인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해당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꼭 그 땅이 가나안이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땅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믿음으로 따를 수 있었던 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신다면 이러면 저렇게 하고 저러면 이렇게 한다고 하실 것 같은데 그걸 물어보신 것이 아니라 해야할 하나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부르시는 영광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를 부르실 때에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지 나를 따라오면 어떻게 되고 따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 테니 결정은 네가 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식의 조건과 협상과 타협의 형식은 오직 사탄만이 쓰는 방식입니다. 사탄 만이 조건을 달고 유혹하고 시험할 때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또한 그런 조건 속에서 악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4: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가 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왜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을까요? 왜냐하면 그것이 진짜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얻고자 하는 것은 마귀를 경배하고 섬기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악을 경배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게 하면서 더욱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마귀의 영향력이 커지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이겨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의 시험과 전혀 다릅니다. 2절을 보십시오.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무작정 아무런 뜻이 없이 땅을 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는 분명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계획은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에게 복을 주어서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런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요? 다음 3절을 보십시오.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를 저주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복은 누구의 복입니까? 누가 우리와 함께 하셔서 복을 주시기도 하고 저주를 주시기도 하십니까? 그 복과 저주를 내리시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영광스러우신 분이시고 그 영광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자들이고 이 세계는 바로 하나님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 세계에 살면서 그 영광을 거부하고 이 세계를 하나님의 것이 아닌 어떤 중립적이고 자율적인 것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그들은 더 큰 욕심과 더 큰 탐욕에 빠져서 살게 됩니다. 그 결과가 바로 불순종이고 죄악입니다. 그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 모든 것의 창조자요 소유자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알고 구원을 사모하는 것이 바로 목표를 사모하면서 구원을 받는 성도입니다. 단순한 기복주의가 아닙니다. 사탄과 거래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거래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의 구원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구원으로 부르십니다. 조건을 내세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강요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믿어드리는 것도 아니고 믿음이 하나의 거래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를 사랑하셔서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 구원을 믿고 따라갈 때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로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문제가 아닌 목표를 통해서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

  

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나아갔다.

  

3. 하나님은 조건과 전제가 아닌 명령과 부르심으로 구원을 이루신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을 때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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