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직장] 40마 2; 1-3 예수님께 경배하고자 하는 박사들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크게보기]
40마 2; 1-3 예수님께 경배하고자 하는 박사들_1
2019. 12. 1. 주. 주일오전.
*개요: ‘직장에 대한 성령님의 동행’, 15직장-55동행, 1적용, 5복음서 [마]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12월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예수님을 섬겼던 사람들에게는 각기 다양한 직업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박사였고 선지자였으며 제사장이었고 목자들이었으며 선생들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직업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으며 생업에 종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직업들이 있었고 그들은 각자 자기 직업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직업은 다양하였지만 동일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직업 속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삶 속에서 적용해야 할 때 정말 나아가야 하는 분야가 바로 이 직업 속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교회 속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직업 속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연결되어서 살아가는 시간은 직업과 연결되어서 살아가는 시간에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장 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시간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직장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전도를 할 수 없고 성경을 읽을 수 없고 기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직업의 영역 속에서 과연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주님께 경배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고 있는 것이 어떤 일이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그 일을 하면서 주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은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전도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떠한 종교적인 행위가 아닌 마음가짐에 해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 속에서 주님을 경배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주님을 따르려는 마음이 아니라면 직업 속에서 주님을 경배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차라리 종교행위를 하는 것이 더 쉽고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종교행위는 행하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주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주님을 따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놀라울 정도로 주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진실하게 예수님을 경배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멀리 동방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마]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그들은 동방의 박사들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실 때 그에 맞추어서 예루살렘에 왔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움직이고 이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예수님께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렇게 먼 길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직업을 가지고 직장을 다니면서 예수님을 경배하는 방법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그의 직장이 어디이든지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나아온다면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주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끄셔서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십니다. 그럴 때 인도하시고 이끄시는 은혜를 동행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 동행하시는 은혜를 힘입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시지 않는다면 인간의 힘만으로 주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하고도 필수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또한 하나님께 만나기 위해서 준비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동행의 은혜를 따를 때에 얻게 되는 놀라운 결실입니다.
인간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한다면 그 속에 죄와 욕심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죄와 욕심을 해결해 주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모할 때 비로소 성령님의 동행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바쁠 때 주님께 나아올 수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을 쉴 때 주님께 나아올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나 어떤 책임이 주어져 있을 때 잠시 틈을 내어서 주님께 나아올 수 있습니다. 일요일에 쉴 수 없어서 주일에 나아오지 못한다면 다른 공예배 시간에 주님께 나아올 수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항상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세상의 어떤 직업이라도 주님께 나아오는 것이 항상 쉽기 만한 직업은 없습니다. 정확히 그 반대로 주님께 경배드리러 나올 수가 없습니다. 바빠서, 피곤해서, 일을 해야 해서, 쉴 수 없어서 나아오지 못합니다. 이 세상 자체가 죄와 욕심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그 죄와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 대한 사모함과 경외함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와 욕심을 버리고 나아가기 위해서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예수님께로 나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만이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 본질적으로 예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자신의 직업의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동방박사들은 바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그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기한 별을 보았습니다. 그 별은 바로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별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실 실제 별이라기 보다는 영광의 빛 그 자체였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빛이 세상에 비추어져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의 별을 보는 직업 속에서 예수님의 영광의 빛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수없이 많은 예수님의 별을 봅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그 만드신 모든 것에 새겨져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인간적으로 해석하고 세속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모르는 것 뿐입니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서 이 세상에 지혜를 주시고 창조를 이루시며 역사를 이루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찾고자 할 때 자신의 직업은 바로 그것을 찾는 현장이 됩니다. 그가 하는 모든 직업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며 그분의 축복의 원리를 발견해 보십시오. 직장생활을 하며 그분이 주시는 지혜의 요소를 깨달아 보십시오. 할 일과 책임 속에서 순간 순간의 상황과 판단 속에서 예수님의 별을 찾아 보십시오. 직장 생활이 놀라운 경배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파스칼이라는 유명한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계산기를 발명해 내었고 ‘팡세’라는 책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가 제안한 의미있는 주장이 있는데 그것은 ‘파스칼의 게임이론’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와 신이 존재할 경우 두 가지 중, 후자의 확률이 아무리 희박하더라도 신이 실제로 존재할 경우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낫다> 그는 수학적 계산과 분석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의 길을 예수님 안에서 찾았고 그래서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이러한 게임이론은 예수님께 나아갈 것인가 나아가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할 때 활용되었고 그 이후에는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많은 은혜를 통해서 더욱 그 믿음을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업과 직장과 분야와 영역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영혼과 인생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 속에서 비로소 예수님의 별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인생의 끝은 커다란 괴로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가 직업 속에서 열심히 예수님의 흔적을 찾고자 할 때에 그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주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분명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로 나아오고자 하는 직업인들이 있었지만 그 반대의 직업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마]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역사가 있고 예수님의 삶이 있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헤롯이 왕으로서 추구했던 것은 자신의 안정이었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각자 추구했던 것은 그들 자신의 편안함이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고자 하던 동방박사들의 존재는 너무나 불편하고 성가시며 귀찮은 존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다른 직장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있는 환경과 상황 속에서 다른 세상 사람들과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 경배하고자 하는 삶은 여러 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가져다 주고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의 목적에 반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들이 직장에서 직업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찾고 경배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그럴 만한 영광과 권세와 위엄이 있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온 것은 예수님의 영광이 너무나 아름답고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고자 하는 것도 예수님의 영광이 너무나 크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영광에 대해서 서기관들이 발견한 성경의 증거는 이러하였습니다. “[마]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하셨던 미가서의 예언처럼 예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직업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직업을 평생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렇게 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주님은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직장 속에서 성령님의 동행의 은혜를 생각하고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 동행의 은혜 속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직업 속에서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모습은 주님의 사람들이 되고 그럴 때 주님은 우리가 있는 그 직업의 영역 속에서 놀라운 영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 영광을 잊지 말고 성령님의 동행의 은혜를 의지하여 예수님을 더욱 따라 나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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