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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성숙] 43요 5;36-40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된다

43요 5;36-40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된다_2

2010.10.10. 주일오후

10월 한달 동안 우리는 성경읽기대회를 통해 성경을 조금 더 많이 읽어보려고 합니다. 약간의 경쟁과 약간의 보상을 통해서 이전보다도 더 성경에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더욱 맛보고자 합니다. 성경을 읽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책도 별로 안읽는데 성경은 얼마나 더 읽기가 어렵겠습니까? 내용은 또 얼마나 생소하거나 어려우며 성경을 읽는데 들이는 시간은 얼마나 익숙하지 않은 시간입니까?

분명 우리는 성경을 읽는 일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가사를 감당하면서 애들을 키우면서 이것을 하면서 저것을 하면서 그 와중에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매일 매일이 챗바퀴처럼 동일하게 진행되는 삶 속에서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매일 대개 하는 패턴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 하면 몇 시고 저것 하면 몇 시고…우리는 늘 동일한 생활 패턴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성경을 읽기 위해 시간을 30,40분 혹은 1,2시간을 낸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읽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그일에 분명히 어떤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3,40분을 들여서, 하루에 1,2시간을 들여서 이일을 했을 때 틀림없이 신앙적인 유익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읽자고 하는 것이며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단 성경읽기대회를 하는 10월만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11월에도 12월도 계속 성경을 읽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분명한 신앙적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신앙적인 유익은 무엇일까요? 성경읽기를 통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신앙의 열매는 ‘확신’입니다. 이 확신은 우선적으로는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하신 일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분과의 관계에 대한 모든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응답의 확신, 인도의 확신, 승리의 확신 등등 모든 일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내용이 잘 짜여진 하나의 계획서와 설명서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대한 계획과 설명일까요? 바로 예수님에 대한 계획과 설명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믿는 나 자신에 대한 계획과 설명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이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고 또한 예수님을 믿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은 바로 그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경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을 상고할 때 발견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증거입니다. 마치 보물찾기하듯 숨은 그림 찾기하듯 우리는 성경의 구석 구석에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찾습니다. 예수님을 은유적으로 묘사를 하던 예수님을 우회적으로 설명하던 직접적으로 가리키던 성경 전체는 예수님에 관한 책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며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상고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발견하게 됩니다.

꽃을 가까이 하면 꽃향기가 나고 생선을 가까이 하면 생선냄새가 난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그분에 대한 증거를 열심히 상고하다보면 우리에게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가치와 예수님의 중요성이 우리들에게 배이게 됩니다. 그러니 그 속에서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이 남이 아니게 되고 예수님이 나와 상관없는 분이 아니게 되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바로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에 관한 소설을 읽거나 거기에 관한 위인전을 보더라도 책을 읽다보면 그 사람과 동일시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본받아야지 생각하게 되고 그 책의 주인공을 마음속에 오랫동안 기억하게 됩니다. 하물며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주신 우리 예수님에게라면 얼마나 더욱 감사함과 기쁨이 생겨나겠습니까? 성경은 우리를 위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의 편지인 것입니다.
연인들끼리 편지를 나누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연애시절에 열심히 무엇인가를 적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적힌 것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주고 받다 보면 정이 더욱 커져갑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때로 글로 하는 것이 더 절절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저는 어렸을 때에 아무 생각없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는 그것을 오랫동안 간직하셨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렇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 자신도 저희 딸에게서 편지를 받을 때 그 내용이 참 가상하게 느껴지고 귀하게 생각이 됩니다. 자연스럽게 저도 그 내용을 오래 오래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그 내용을 열어보면서 우리 아이가 그랬었는데 생각하게 되며 예전의 추억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살다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생각대로 욕심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그냥 입에 발린 말같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는 답답함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악감정이 자꾸 커지다 보면 나중에는 확신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예수님이 정말 나를 위해 죽으신 것 같지는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것 같아, 이런 저런 별별 생각이 다 생기면서 점차 구원의 확신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성경을 펴보십시오. 약해지지 않도록 흔들리지 않도록 잊어버리지 않도록 성경말씀을 다시 펼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자세히 묵상해보십시오. 그 약속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생각하십시오. 그 약속은 결코 우리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욱 훌륭하고 놀랍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집니다. 그 계획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좋습니다. 우리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욱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이루신 일 중에 가장 놀라우신 일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입니다. 그일만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 7장에서는 남유다나라가 아람왕과 북이스라엘에 의해서 공격을 받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유다를 도와서 그들이 승리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왕이었던 아하스는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고 그 징조를 받음으로 굳은 확신을 갖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징조를 구하게 되면 정말 믿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확신이 없어서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친히 징조를 주셨습니다. 그 징조는 아하스가 구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욱 훌륭하고 완전한 징조였습니다. 그래서 저 유명한 이사야 7장 14절 말씀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친히 주신 징조였습니다. 그 징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반드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오래전 약속해 주신 것을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렀을 때에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그것을 본다면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을,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우리를 높이 세워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들로 만드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현재의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미래는 어떨까요? 과거도 그렇게 현재도 그랬는데 미래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겠습니까? 역시 미래에도 예수님은 조금도 변함없으시리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확신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합니다. 약속대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으신 주님의 계획과 섭리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그 계획과 섭리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버즈 두바이라는 빌딩이 있습니다. 두바이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입니다. 높이가 512미터이고 141층까지 있습니다. 이 건물을 건축한 주시행사가 바로 삼성물산입니다. 이전에 그렇게 높은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연 이 건물을 초기 계획대로 잘 지을 수 있을까가 의심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확신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시행사가 바로 삼성물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래서 이 회사에 건축을 맡긴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삼성물산에서는 신기술 3가지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3일에 1층씩 올라가는 최단기간 공기 수행기술과 고강도 콘크리트 기술, 그리고 콘크리트를 고층으로 직접 펌프로 쏘아올리는 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삼성물산에 대한 확신때문에 건축은 차질없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 최고층 높이의 빌딩이 2010년 1월에 완공되어 개장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건축물을 완성한 곳이 삼성물산인데 그 곳에서 어떤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면 여러분은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삼성물산에서 우리 교회를 지어준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공사가 잘 이루어질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요.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돈을 주고 공사를 위탁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삼성에서 해준다면 확신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건물을 짓는다 하더라도 다 그 버즈 두바이보다는 낮은 건물이기 때문에 의심한다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 피조물을 위해서 죽으신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일은 이 지구상에서 이 세계에서 이 우주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온전한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결코 즉흥적으로 감상적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닌 것입니다. 약속대로 기약대로 예수님께서는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 위대한 일이 이루어졌는데 그보다 작은 일은 얼마나 확실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일을 온전하게 이루셨는데 그보다 작은 일은 얼마나 확실하게 이루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의 예수님에 대한 계획을 발견할 때에 우리 자신의 삶과 인생과 구원에 대한 가장 확실한 근거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의문을 품을지 모릅니다. 성경 속에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이 있고 미리 계획이 되어 있다고 한다면 과연 성경은 믿을 만 한가, 과연 성경은 우리의 영혼을 걸만큼 신뢰할 만한가 라는 의문을 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성경 자체를 믿을 수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믿지 않고 성경의 증거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최근 순모임에서 저희 순은 창세기 1장을 묵상하였는데 1장을 나누면서 과거에 세상 친구들이 던지던 의문들을 바로 창세기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순원들과 함께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창세기 1장을 믿는다면 모든 것을 믿는 것이라는 아주 예리한 말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면서 그것을 얼마나 믿을 수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창조론과 진화론 중에서 무엇이 더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믿음에 바탕한 신념체계입니다. 창조론이 증거가 없는 것 처럼 진화론도 증거가 없습니다. 증거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증거가 없습니다. 이 둘 다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믿음의 문제가 나옵니다. 믿음의 문제에 있는 한, 모든 인간은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창조론을 믿는 것은 창조론을 믿고 싶기 때문이고 불신자들이 진화론을 믿는 것은 진화론을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고 싶어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 증거를 감추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에 모든 비밀은 밝혀질 것입니다. 그 전까지 밝혀지지 않은 모든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증거가 아니라 선호에 따라서 하나님을 믿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고 싶다면 하나님의 증거를 믿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다면 하나님의 증거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이유때문에 자신에 대한 증거를 아무에게서나 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고 숨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에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 증거만이 허락되어있습니다. 36, 37절을 보십시오.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친히 하신 일들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했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하신 일을 통해 예수님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예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계시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예수님의 증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또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전의 황우석 교수의 진실성 여부와 신정아씨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논쟁을 기억하십니까?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 누가 진실한가에 대해서 공방을 벌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때 누구의 편을 드셨습니까? 또한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어느 편이 내놓는 증거가 더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때의 여러분의 생각은 맞았습니까, 틀렸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진실됨과 여러분에 대한 구원의 증거를 예수님 자신과 하나님의 증거로만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귀신들이 증거하려고 했을 때에는 아무 말도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을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입니다. 성경을 믿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니까 성경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렇게 세상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세상이 원하지 않는 대로 하셨기 때문에 세상은 예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님의 증거와 예수님의 증거로 제한되었습니다. 이렇게 증거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증거만으로 국한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기준에 합하는가, 합하지 않는가의 여부만을 따지려고 했기 때문에 구원과 영생에 대해서 말하시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증거에 대해서는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40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렇게 진실 여부만을 따지면서 정작 예수님께로는 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찌할 것입니까? 우리도 성경이 옳으냐 그르냐, 예수님의 하신 일이 정말 있는 일이냐, 없는 일이냐를 따지면서 성경에 오류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나아가길 거부할 것입니까? 아니면 그러한 논쟁 보다도 영생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주님께 나아오겠습니까?

10월 한달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예배는 한주에 몇번 밖에 드리지 않지 않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늘 여러분 가까이에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성경 속에 증거되어 있는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혹시 가지고 있는 의문이 있다면 예수님 안에서 해결하십시오. 예수님 밖에서 모든 의문을 푸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옥에 들어앉아 아 이건 이랬구나, 저건 저랬구나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책망과 질책 속에서 아 이건 이랬구나, 저건 저랬구나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더욱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 할 때에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우리 속에 든든한 확신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개요  {4서신서} <1적용> [2분류-관계]~[0복음-부활]~[6결심-사랑]
1.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구원의 확신입니다.
2. 예수님은 구원사역을 그냥 즉흥적으로 이루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정확무오하신 계획 속에서 이루셨습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도 감정이나 상황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증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4.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과 관계를 세우기를 원치 않지만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 친밀한 관계를 맺는 자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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